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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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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아주 자주 찾은 카페 이름이 "섬에서 부르는 自由詩"였어,
그 詩의 주인공이 바로 이 정현종 시인이야.
언어를 유희의 대상으로 한껏 부풀려 그 터질 듯한 욕망 사이에 숨어
끊임없이 아찔한 곡예를 하던 사내야.
늘 부러운 재기, 늘 현란했던 수사, 늘 비판을 감수해야만 했던 고독.
수십년이 더 지난 그의 시들을 읽고 있노라니 나조차 신파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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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
나는 별아저씨
나는 별아저씨
별아 나를 삼촌이라 불러다오
별아 나는 너의 삼촌
나는 별아저씨
나는 바람남편
바람아 나를 서방이라고 불러다오
너와 나는 마음이 아주 잘 맞아
나는 바람남편이지
나는 그리고 침묵의 아들
어머니이신 침묵
언어의 하느님이신 침묵의
돔(Dome) 아래서
나는 예배한다
우리의 생(生)은 침묵
우리의 죽음은 말의 시작
이 천하(天下) 못된 사랑을 보아라
나는 별아저씨
바람남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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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산문]
시는 하나의 나라이다. 우리가 우리나라, 꿈나라, 자유의 나라 할 때의 뜻과 같은 뜻에서 시는 나라이다. 말하자면 시는 우리의 나라요, 꿈나라요, 자유의 나라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시는 그런 나라들의 이미지이며, 이 이미지의 현실 속에 현실적인 나라를 수렴한다.
……이렇게 의식의 촉수(볼티지)가 광명의 정3점에 있고 감정의 공간에 사랑의 창이 열려 있는 상태, 모든 게 다 있으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없는 미친 듯이 풍부한 상태-그 역동적 고요의 상태에 이르기 전에는 단 한 편의 시도 쓸 수 없다. 한 편의 시는 그것이 씌어지기 전에 결정되는 것이다.
나와 이 세계는 언제나 새롭게 마주서 있으며, 이 세계는 나로부터 새로 출발하고 전개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빌건대 만날 맨손으로……’라는 다짐이나 의식조차 없이 끊임없이 새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치 가도가도 오직 배가 고플 따름인 거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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