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동사니/뉴스레터

2015년 12월 30일 (수)

단테, 2015. 12. 30. 19:41

글 / 연말   


- 오늘의 편지,   

   

  

           

그해 여름은 이렇게 끝나버리고 

   

   

태풍이 무질서하게 지나갔다

사람들 하나둘 긴 소매를 입기 시작했고

저마다 푸르른 그늘을 안고 나선다

이곳 인적이 드문 광장엔 여름부터

장마를 견뎌오던 플랭카드만 남아 있어

그 때묻은 천마다 피로가 역력하고

여대생이란 팻말을 든 아가씨들이

멀찌감치 彼岸의 저녁으로 사라지는 동안

내게선 가뭄 한번 제대로 일지 않았었다

그 부우연 얼굴 언저리엔 소나기도 잦아 

언제고 한번 그을린 적 없는 상처 

밤마다 모기와 싸우는 옆집 부부와

자가용마다 매단 접촉사고만큼

눅눅한 습관에 젖어버린 내 방안엔

오늘도 무사태평해야 할 그리움만 남는데

언제고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 머릿수만큼

마음 속 상처들은 깊게 멍을 그리고

멍자국을 따라 푸르게 패인 손금 

손금들이 忘却의 철교 위에 또렷하고 

그 철교 너머 쏜살같이 달리는 여름은

이제 막 차양막을 내려버리는 모양이다

아, 길지도 않았던 무더운 저녁이

점점 수그러들고 목숨을 잃어가고

그 잔혹한 운명 앞에 진치고 앉은

내 허기진 추억들이 비를 맞는다

이런 비는 처음이야

하면서도 저마다 안주하지 못하는만큼

낡은 수첩에서 하나씩 이름을 지우고

다시 사람들 우산을 털며 바삐 떠나가면

그 물묻은 자리마다 반사되는 석양

공중전화박스마다 견고한 고독을 쌓아가고

불쑥불쑥 자라는 그 그림자처럼

그해 여름도 너무 쉽게 저물었다 

  

   

- 1994년 8월 -

             

     


                        

                                                                                                                        

                   


- 편집하는 말,   

   

세밑에 버금갈만한 시간을 자유롭게 얻지 못할 까닭은 또 무엇인가. 아무튼 그 작은 '배려'로나마, 연말에 관한 글쓰기를 해두고자 하는 저녁. 정의는 늘 호사롭지 못하였고 역사는 늘 배반인 까닭도 진리가 오로지 빛을 추구하지 못한 채 권력 주변을 맴돌 뿐인 현실과 맞닿아 있구나. 이 형이상학적 사유 역시 오로지 '의미'만을 좇아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겠지만. 

한해가 저무는 동안 참 많은 생각들을 두루두루 해보게 된다. 머지 않은 미래, 각고의 노력일 뿐인 현재, 또 미덥지 못한 약속들 따위...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정진'한다는 것은 일종의 신념. 때때로 일종의 판타지 따위를 더러 믿기도 하였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유희'였을 뿐이며, 실제 마땅한 해답은 늘 진지한 모색 속에 또 노력 속에 존재할 거라고 믿는다. (아니, 믿어왔다) 

또 한해가 다가오고, 2016년. 첫 소설을 쓰던 그해 여름은 선풍기 한대만으로도 탈고가 가능했던 기백? 그 어떤 게 있었지. 지금 내게 남은 건 과연 무얼까... 의지, 각성, 투혼, 자비, 그리고 침묵. 

다시 또 공부를 하련다. 더 늦지 않게 또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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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http://blog.daum.net/dant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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