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시집] 그리움의 촉수, 생채기의 흔적들

 

- 심보선, "눈앞에 없는 사람" (문학과지성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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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의 시집을 읽는다. 대놓게 말하진 않아도 이 시집이 말하고자 하는 몇 가지들을 쉬이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사랑해"라는 말, 그리고 "그리움"이라는 낱말 따위가 그 대부분이려나?... 한껏 신파를 풍부한 은유와 상징, 또 칭얼대듯이 소년의 감수성만큼 여린 단어들로 엮은 시들을 아침 내내 읽으며 마치 대학생 같은 풋풋함마저 느껴졌다. '피터팬 컴플렉스' 내지는 이 시대 대다수 남자들의 희망사항인 '젊음'에 관해서만큼은 가장 젊은 축에 끼일 법도 한 감각이다. 다만 성숙함과 유장한 멋을 부릴 줄 아는 고은의 시작들과 견주어 보면 그 깊이는 한참 더 남은 시인의 수학(修學)을 요구할 수도 있겠다.

 

'용산' 때 쓴 시를 읽었다. 당대 최고의 비극 중 하나인 이 사건 앞에서 시인의 퀭한 눈이 먼저 연상되는 것 또한 앞에서 말한 그것과 크게 다른 맥락이 아니겠지. 원래 시인의 눈이 사슴을 닮아야 옳다고 주장한 한 선배의 말도 불쑥 꺼내본다. 하지만, 어찌 도도한 감수성만으로 시를 쓸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시대에, 이 시대에는 오히려 분노 또 철학 같은 것들이 더더욱 시를 아프게도 찬연하게도 만든다. - 지금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그 '그리움' 또한 어쩌면 이것들로부터 비롯되었을까? 

시인의 대답이 한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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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절

 

 

그때는 좋았다

모두들 가난하게 태어났으나

사람들의 말 하나하나가

풍요로운 국부(國富)를 이루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무엇이든 아무렇게나 말할 권리를 뜻했다

그때는 좋았다

사소한 감탄에도 은빛 구두점이 찍혔고

엉터리 비유도 운율의 비단옷을 걸쳤다

오로지 말과 말로 빚은

무수하고 무구한 위대함들

난쟁이의 호기심처럼 반짝이는 별빛

왕관인 척 둥글게 잠든 고양이

희미한 웃음의 분명한 의미

어렴풋한 생각의 짙은 향기

그때는 좋았다

격렬한 낮은 기어이

평화로운 밤으로 이어졌고

산산이 ㅂ서진 미래의 조각들이

오늘의 탑을 높이높이 쌓아 올렸다

그때는 좋았다

잠이 든다는 것은 정말이지

사람이 사람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사람이 사람의 여린 눈꺼풀을

고이 감겨준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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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경숙 소설을 둘러싼 여러 '표절' 시비와 관련한 그의 언사도 주목해 읽은 적이 있다. 어찌 보면 이제 문단에서 중견급? 정도로 올라선 그도 일말의 책임감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 연배다. 물론 나이를 먹어감이 때때로 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또 그것을 스스로 극복해낸다는 용기를 비단 치기 정도로만 치부할 일도 아닌 것만은 분명하니까.  

  

 

- 모처럼 '시화'라는 테마로 이미지를 하나 얼기설기 조합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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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들

 

나는 즐긴다

장례식장의 커피처럼 무겁고 은은한 의문들을:

누군가를 정성 들여 쓰다듬을 때

그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서글플까

언제나 누군가를 환영할 준비가 된 고독은 가짜 고독일까

일촉즉발의 순간들로 이루어진 삶은

전체적으로는 왜 지루할까

몸은 마음을 산 채로 염(殮)한 상태를 뜻할까

내 몸이 자주 아픈 것은 내 마음이 원하기 때문일까

누군가 서랍을 열어 그 안의 물건을 꺼내면

서랍은 토하는 기분이 들까

내가 하나의 사물이라면 누가 나의 내면을 들여다봐줄까

층계를 오를 때마다 왜 층계를 먹고 싶은 생각이 들까

숨이 차오를 때마다 왜 숨을 멎고 싶은 생각이 들까

오늘이 왔다

내일이 올까

바람이 분다

바람이여 광포해져라

하면 바람은 아니어도 누군가 광포해질까

말하자면 혁명은 아니어도

혁명적인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또 어떤 의문들이 남았을까

어떤 의문들이 이 세계를 장례식장의 커피처럼

무겁고 은은하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또 어떤 의문들이 남았기에

아이들의 붉은 입술은 아직도 어리둥절하고 끝없이 옹알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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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없는 사람

저자

심보선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11-08-09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당신의 전언 ‘기쁨과 슬픔 사이의 빈 공간...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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