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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12 대선 즈음, 詩들의 풍경

단테, 2015. 4. 8. 23:19


- "2013 신춘문예 당선시집" (문학세계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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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멘붕'이라는 걸 가장 크고 길게 겪었던 지난 대선이 있은 2012년, 

그해 겨울도 어김없이 이 신춘문예는 열렸구나... 경향의 이해존이 가장 기억에 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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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당선작 : 

 

 

녹번동    / 이해존 

 

 

1

햇살은 오래전부터 내 몸을 기어다녔다 문 걸어 잠근 며칠, 산이 가까워 지네가 나온다고 집주인이 약을 치고 갔다 씽크대 구멍도 막아 놓았다 네모를 그려 놓은 곳에 약 냄새 진동하는 방문이 있다 타오르는 동심원을 통과하는 차력사처럼 냄새의 불똥을 넘는다 어둠 속의 지네 한 마리, 조정 경기처럼 방바닥을 저어간다 오늘은 평일인데 나는 百足으로도 밖을 나서지 않는다


2

산이 슬퍼 보일 때가 있다 희끗한 뼈마디를 드러낸 절개지, 자귀나무는 뿌리로 낭떠러지를 버틴다 앞발이 잘리고도 언제 다시 발톱을 세울지 몰라 사람들이 그물로 가둬 놓았다 아물지 않은 상처가 곪아가는지 파헤쳐진 흙점에서 벌레가 기어나온다 바람이 신음소리 뱉어낼 때마다 마른 피 같은 황토가 쏟아져 내린다 무릎 꺾인 사자처럼 그물 찢으며 포효한다


3

저마다 지붕을 내다 넌다 한때 담수의 흔적을 기억하는 산속의 염전, 소금꽃을 피운다 옷가지와 이불이 만장처럼 펄럭이며 한때 이곳이 물바다였음을 알린다 흘러내리지 못한 빗줄기를 받아내는 그릇들,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방안에 고인 물을 양동이로 퍼낼 때 땀방울이 빗물에 섞였다 오랫동안 산속에 갇혀 있던 바다가 제 흔적을 짜디짠 결정으로 남긴다 장마 끝 폭염이다 살리나스*처럼 계단을 이룬 집들을 지나 더 올라서면 산봉우리다 계단 끝에 내다 넌 내 몸 위로 햇살이 기어다닌다



* 페루 고산의 계단식 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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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유명한 달동네 중 하나인 녹번동, 그 이름만으로도 이미 '서민적' 풍모를 충분히 갖춘 이 시는 "햇살은 오래 전부터 내 몸을 기어다녔다"로 시작한다. 시작부터 특유의 문체를 끄집어낸 작품에서도 여전히 당대 최고의 플롯이 산문적 형태임을 직감케 한다. 

웬만한 독립영화 한컷에 등장할 법한 '찌질한' 방구석에서의 묘사로 1연이 펼쳐진다면, 2연은 좀 더 외연적 풍경으로 확대된다. "산"과 "절개지", 또 "자귀나무"와 "뿌리" 그리고 "낭떠러지"까지 이어지는 모습들은 '상처'의 은유적 형태다. 시인 스스로 "앞발이 잘리고도 언제 다시 발톱을 세울지 몰라" 사람들이 그물로 가둬 놓았지만, "아물지 않은 상처가 곪아가는지" 시인은 여전히 아프다. 아프다는 말보다 그 '거리'를 둔 시선이 느끼고 있는 잔임함과 흉칙함은 이윽고 "황토가 쏟아져" 또 "그물 찢으며 포효한다". 

3연에 이르러서는 이제 결론에 도달할 필요가 생긴다. 2연이 고통의 구체적 형상화라면, 3연은 '기다림'에 관한 과정과 현상을 담아낸다. 그것들이 "만장처럼 펄럭이며" 또는 "부글부글 끓어올랐다"가도 이내 "짜디짠 결정으로 남긴다"는 것들은 아마도 유추와 해석의 기묘한 차이가 빚는 상징들의 스펙트럼이거나 혹은 이미 오래 전부터 몸을 기어다녔던 햇살이 가져다주는 그 무엇인가로 보인다. 가장 궁금해할 법한 내용은 사실 이거다. 

쉽게 고착화될 수 있는 작은 따옴표들의 낱말들이 단 한차례도 기록되지 않은 작품에서 어거지로 그 단어들을 다시 호출해낸다면 누가 보건대 "지나치게 도식적인" 해석과 비평으로 비난받아 마땅할 수 있겠지만, 특정 독자가 유추하고 해석해낸 이 추리들이 설령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다 할지라도, 적어도 지난 2012년의 겨울은 그런 단어들의 기억조차 잊혀지진 않을 것 같다. 

어찌 보면 그해 신춘문예 당선작들 중에 가장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낸 작품이 이 시였던 것도 같고, 또 더구나 경향신문이다. 제법 그럴듯한 넘겨짚음이 또 하나의 과장에 불과하더라도, 적어도 그해의 겨울이 빚던 '레미제라블'의 열풍과 그것을 통한 '힐링'의 대유행이던 시절을 조금이라도 기억해내고 또 그 시대정신을 통해 무리한 해석을 남발한 것일지라도, 적어도 그 시대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시대가 곧 지금 이 순간이기도 해서. 여전히 시는 메마르고 차갑고 냉정하며 현실도 또한 그것에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까. 불과 한해를 넘기지 못해 벌어진 세월호의 이야기들도 곧 이어질 텐데... 이 나라 대한민국의 이야기는 참 이렇다. 

 

또 혹시 알랴, 세월호를 이야기한 시들도 그리고 미래와 전망을 이야기해야 하는 시들도 어쩌면 다 제각각인 레토릭으로 결국 똑같은 대상과 시간에 대한 독백 내지 고백을 읊조리고 있는 것일 수도. 

적어도 내 주관적 해석은 이 맥락에서 귀결되곤 한다. 

- 그만큼이나 또 '자유롭지도 못하다'는 방증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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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로 검색해본 다른 블로그에서의 한컷, http://wlsekthf0703.blog.me/90165187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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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 

  

 

시 

김기주 ┃ 한국경제
 
《당선작》 화병ㆍ12 
《신작시》 내가 내 속의 나보다 겉에 있다ㆍ14/ 나머지 말의 기록ㆍ16/ 라쇼카사무ㆍ18/ 옥수수마을ㆍ20/ 단단하지 않고, 무거운, 그리운, J양ㆍ22 
《당선소감》 시는 결코 대단하지 않다… 대단한 것 또한 아무것도 없다ㆍ24 
《심사평》 여백과 침묵으로 상상력 확장한 수작ㆍ25 

김재현 ┃ 조선일보 
《당선작》 손톱 깎는 날ㆍ28 
《신작시》 설일ㆍ30/ 오래 된 부호들ㆍ32/ 몰식자ㆍ33/ 싱크홀ㆍ35/ 골목 끝, 철물점ㆍ37 
《당선소감》 아이처럼 울었습니다, 자꾸만 새로워지겠습니다ㆍ39 
《심사평》 삶의 구체성을 통한 사유… 언어화하는 능력 돋보여ㆍ41 

김준현 ┃ 서울신문 
《당선작》 이끼의 시간ㆍ44 
《신작시》 수묵, 겨울ㆍ46/ 기린 생태 보고서ㆍ47/ 봉화ㆍ49/ 민달팽이ㆍ51/ 현악기의 구조ㆍ52 
《당선소감》 더 정갈한 글로 보답하겠습니다.ㆍ53 
《심사평》 ‘따로 없는 詩 쓰는 법’ 모험에 박수를ㆍ54 

김지명 ┃ 매일신문 
《당선작》 쇼펜하우어 필경사ㆍ58 
《신작시》 구리가 나팔이 되기 시작할 때ㆍ59/ 웰위치아ㆍ61/ 생활의 달인ㆍ63/ 스리썸(Threesome)ㆍ65/ 냉장고의 기술ㆍ67 
《당선소감》 시의 영토에 첫 발자국을 만들며ㆍ69 
《심사평》 해마다 시 쓰기 열정 많아… 발전 가능성에 무게ㆍ70 

신은숙 ┃ 세계일보 
《당선작》 히말라야시다ㆍ74 
《신작시》 코스모스라는 별ㆍ76/ 바리스타ㆍ77/ 절정ㆍ78/ 아버지의 엑셀ㆍ79/ 도서관 가는 길ㆍ80 
《당선소감》 낮은 자세로 이름 없는 사물들을 사랑하며ㆍ82 
《심사평》 신선한 상상력ㆍ미학적 논리 통해 세계 재해석ㆍ83 

이병국 ┃ 동아일보 
《당선작》 가난한 오늘ㆍ86 
《신작시》 안녕, 가족ㆍ87/ 나는ㆍ88/ 바지 위에 쪼그려 앉아ㆍ90/ 아침ㆍ92/ 그림자 기차ㆍ94 
《당선소감》 신문에 제 시가 놓이게 된다니 마음에 창 하나 빛나게 되네요ㆍ95 
《심사평》 가난에 형상을 부여하는 힘… 최고 작품에 대한 설레는 기대ㆍ96 

이정훈 ┃ 한국일보 
《당선작》 쏘가리, 호랑이ㆍ100 
《신작시》 봄ㆍ102/ 십삭코ㆍ103/ 복숭아나무 아래ㆍ104/ 내용증명― 大韓民國 貴下ㆍ106/ 해와 물고기ㆍ107 
《당선소감》 세 번 도리질했는데… 또 밤길을 줄여갑니다ㆍ109 
《심사평》 독특한 개성의 탄생… 신화적 상상력의 눈부신 질주 보는 듯ㆍ111 

이해존 ┃ 경향신문 
《당선작》 녹번동ㆍ114 
《신작시》 간질에 대한 오해ㆍ116/ 옆구리ㆍ118/ 안락한 변화ㆍ119/ 정글짐ㆍ121/ 조명 점술가ㆍ122 
《당선소감》 지치지 않고 열심히 쓰겠습니다ㆍ123 
《심사평》 시는 자신을 비워줄 때 조금씩 다가오는 것ㆍ124 

정와연 ┃ 부산일보 
《당선작》 네팔상회ㆍ128 
《신작시》 낙과ㆍ130/ 한 되들이 술주전자ㆍ132/ 의태 계절ㆍ133/ 샌들의 감정ㆍ135/ 찬 음식을 먹는 날ㆍ137 
《당선소감》 마음을 비운 자리에 긍정의 힘이 솟아ㆍ139 
《심사평》 세상의 관절염 어루만지는 숙련된 직녀ㆍ141 

정지우 ┃ 문화일보 
《당선작》 오늘의 의상ㆍ144 
《신작시》 불통不通을 어루만지다ㆍ146/ 납작한 모자ㆍ148/ 지평선 꼬리ㆍ150/ 꽃들의 시차ㆍ152/ 걱정인형ㆍ154 
《당선소감》 시름의 골목 지나는 어린 나에게 돌아가고 싶어ㆍ156 
《심사평》 풍성한 비유로 우리 시대의 삶에 화두 제시ㆍ158 

황은주 ┃ 중앙일보 
《당선작》 삼만 광년을 풋사과의 속도로ㆍ162 
《신작시》 말랑말랑한 외면ㆍ164/ 연두의 대답ㆍ166/ 비슈뉴의 옷자락ㆍ168/ 등고선 재배ㆍ170/ 되돌이표 비명ㆍ172 
《당선소감》 습관처럼 혼자 서 있던 모퉁이, 그 그늘이 고맙다…ㆍ174 
《심사평》 발랄한 상상력, 풋풋한 사유, 오랜 시적 내공을 느꼈다ㆍ175 

시조 

김재길 ┃ 조선일보
 
《당선작》 극야極夜의 새벽ㆍ180 
《신작시》 포구나무 있는 풍경ㆍ182/ 저녁 공양ㆍ183/ 새벼리 연가戀歌ㆍ184/ 블라디보스토크 중앙역ㆍ185/ 불타는 책ㆍ187 
《당선소감》 시조를 향한 도전… 최전방으로 날아온 당선의 기쁨ㆍ188 
《심사평》 거침없는 상상력과 활달한 호흡으로 시적 지평 넓혀ㆍ190 

김태형 ┃ 중앙일보 
《당선작》 바람의 각도ㆍ194 
《신작시》 그 겨울 피아니시모ㆍ195/ 新과거시대ㆍ196/ 버킷리스트ㆍ198/ 벚꽃 지는 봄날ㆍ199/ 까막눈 편지ㆍ200 
《당선소감》 쿵쾅거리는 심장 같은 시 쓰기 위해 내달리겠다ㆍ201 
《심사평》 패기 넘치는 ‘바람의 각도’에 몰표 쏟아져ㆍ203 

송승원 ┃ 매일신문 
《당선작》 새는 날개가 있다ㆍ206 
《신작시》 별빛 양은냄비ㆍ207/ 뱀딸기 알레고리ㆍ208/ 기호학 개론ㆍ209/ 나의 하울링ㆍ210/ 개나리꽃, 독후감ㆍ211 
《당선소감》 부단한 담금질… 새는 날개가 있다ㆍ212 
《심사평》 멸종한 새 통해 활달한 상상력ㆍ역동적 이미지로 삶 성찰ㆍ213 

송필국 ┃ 서울신문 
《당선작》 번지점프ㆍ216 
《신작시》 노래하는 돌ㆍ218/ 붉은머리오목눈이ㆍ220/ 빈 들녘ㆍ221/ 면류관을 쓰다ㆍ223/ U턴ㆍ224 
《당선소감》 시조 속에 더 넓은 세상 담고 싶어ㆍ225 
《심사평》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표현 돋보여ㆍ227 

조은덕 ┃ 동아일보 
《당선작》 꽃씨, 날아가다ㆍ230 
《신작시》 날아라, 엑스트라ㆍ231/ 배우 수업ㆍ232/ 실레네 스테노필라에게ㆍ233/ 안녕, 내 사랑 페가수스ㆍ234/ 자막 없는 풍경ㆍ235 
《당선소감》 기쁨도 감당하기 힘들면 울음이 되는가 봅니다ㆍ236 
《심사평》 반성적 성찰, 공감의 진폭 이끌어내는 데 성공ㆍ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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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당선시집(2013)

저자
김기주, 김재현, 김준현, 김지명, 신은숙 지음
출판사
문학세계사 | 2013-01-1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유행과 시류를 넘고자 하는 새로운 도전, 개성 넘치는 가능성의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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