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저녁 없는 삶
- 오늘의 편지,
무조건 저녁이 있는 삶
[한겨레21] [강명구 교수의 반쪽 시골생활] 원칙으로 삼은 공립학교 보내기와 식구들과 저녁 먹기
"아빠, 선생님이 나보고 어제 저녁 잘 먹었냐고 물어보셨어!"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가 둘째 단비가 저녁 밥상머리에서 내게 던진 한마디에 모든 가족이 '빵 터져'버렸다. 대한민국의 많은 고등학교가 대체로 그러했듯 둘째 단비가 다니던 고등학교도 무조건 '야간자율학습'을 해야만 했다. 6·25 때 월남해 철공소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이사장의 부인이 교장이던 이 학교는 서울 소재 대학 입학 인원을 늘리기 위해 내 눈에는 '안달'이 나 보였다. 그런 학교에 애비라는 자가 찾아가 "아이랑 저녁 같이 먹는 것이 대학 진학보다 더 중요하니 야간타율학습 못 보내겠다"고 했으니 교장에게 닦달당한 선생님 심사가 꼬일 만도 했다. 나의 이와 같은 언행은 5년 터울로 위아래 오빠와 동생에게도 꼭 같이 적용돼 우리 집 삼남매는 자기들 입으로 고교 시절 "남부럽지 않은" 높은 행복지수를 즐겼다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연구년 1년을 외국에서 보낸 것을 계기로 서울 생활을 접고 15년 전 이곳에 터전을 잡았을 때 우리 부부도 남들과 진배없이 당시 초등학교 1학년과 6학년 그리고 고교 2학년 삼남매 교육 때문에 고심했다. 오래전 일이라 당시의 심사가 어땠는지 어렴풋하지만 하여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세 아이 모두에게 꼭 같이 적용된 방식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1순위가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일반 공립학교 보내기였고, 2순위가 되도록 저녁 같이 먹기였고, 3순위가 집안일 서로 돕기였다.
우리 부부는 의도에는 공감하면서도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보내기 꺼렸다. 공교육이 먼저 살아야 한다는 희미한 신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인생 뭐 길다고 어린 나이 행복한 시절을 따로 떨어져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압도적 이유였다. 미래를 생각해 국내외로 유학을 보내고 '멀리서 아끼는' 마음도 나름 의미가 있겠으나 '가까이서 주고받는' 매일매일의 사소함이 더욱 행복한 유년의 기억으로 남으리라는 다소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보내보니 전교생이 100여 명이었던 초등학교는 시설이며 교육이며 그야말로 '짱'이었다. 학원도 없이 매일 놀아대니 애들 천국이었다. 통학버스에서 내리면 고갯마루까지 마중 나간 강아지 하늘이와 같이 집으로 걸어오던 막내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이뿐이 아니었다. 중·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니 아무래도 서울 한복판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힘든 이웃과 친구들이 적잖음을 금세 알게 되었다. 도시 한복판에서 사교육과 특목고로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는 곳으로부터 1시간 안팎의 거리에 친구 중에 전기요금 못 내 촛불 켜고 지내는 '마이너리그'가 있음을 알게 된 뒤 아이들은 속이 깊어진 눈치다. 알아서 봉사도 다니고 길 가다 봇짐을 들고 힘겹게 장터로 향하시는 할머니를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게 되었다. 지나고 보니 우리 부부가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이같은 교육적 가외소득은 아이들이 대학 졸업 뒤 택한 길이나 행동거지를 보건대 그들의 삶에 간단치만은 않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가장 가까운 일반 공립학교라도 외진 집에서는 만만찮은 거리고 학원도 안 보내니 어둡기 전 집에 오는 것이 당연지사가 된 결과 우리 집 식구들은 어느 정치인의 매력적 구호였던 '저녁이 있는 삶'을 전혀 힘들이지 않고 실행하게 되었다. "밥 식(食)자와 입 구(口)자로 이뤄진 식구라는 단어는 원래 한집에 살며 끼니를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준 어느 칼럼 말마따나 우리는 밥을 같이 먹으며 히히덕대고 도란거리고 가끔씩은 어색한 충고도 에둘러 나누며 한 저녁을 보내왔다. 하여간 저녁 덕분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은 모두 잘 숙성한 퇴비처럼 비옥하고 맑은 아침 공기처럼 반듯하게 커 부모 도움 없이 제 앞가림을 잘하고 있다. 지나고 보니 단비 수학 점수 보고 몇 마디 하던 나에 비해 등수 가리고 무조건 성적표 도장 찍어주던 아내가 참으로 후덕했다. 아무래도 무신론자에 가까운 나도 아내의 종교인 '내비도'에 귀의해야만 할 것 같다.
추신: 아무리 서민 코스프레를 해도 우리 집 아이들이 누린 유·무형의 '가족자본'을 고려하건대 참으로 망설이며 택한 주제임을 고백한다. 다만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그래도 조금은 덜 부끄럽도록 노력했다는 점만 해량(海諒) 바랄 뿐이다.
아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 한겨레, http://media.daum.net/culture/newsview?newsid=20150209152009091
- 편집하는 말,
언제부턴가 '저녁'이란 단어는 '개인'을 뜻하게 됐다.
서울특별시가 아닌, 경기도 언저리에 살면서부터 통근시간은 제법 큰 부담이다. 출퇴근만 하더라도 하루에 세시간 가량 걸리는 (또 거의 대부분은 전철 안에서 내내 서있어야 하는 시간들이니) 사실 노동시간의 일부로까지 볼 수도 있겠는데, 이를 인정해줄 회사는 지구상에 존재치 않는다. 부득불 이른 새벽부터 출근을 해 늦은 밤에야 귀가하는 풍경들이 자연스레 익숙한 모습이다. '저녁'이라는 단어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질 법한 일상들... 그래서 이는 곧 '개인'과 동격으로 간주된다.
사회에서나 직장에서나 가끔씩 '참 존경스럽다'고 느낄만한 인물들의 공통점이 있다. 스스로의 안위조차 연연치 않는, 놀라운 신념에의 집착. 또는 그것의 현실적 구현을 위한 정열적 모습 등이 그 특징인데 오늘 올려놓는 글 한편 역시 그 범주에 속한다. 대부분의 꿈과 목표들은 대부분 무언가의 포기를 통해 얻게 되는 가치들이다. 즉 그 가치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의 문제다. 돈 때문에, 명예 때문에 또는 가족과 이웃들 때문에 자신의 꿈과 목표를 포기한 채 살아가는 게 대다수 사람들의 암묵적 질서인데 이를 초월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한편으로 부럽고 또 한편으로는 경외심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만큼은 딱 내 용기 내지 신념의 부족 탓일까?...
HR에서 "Work-Life Balance"를 논한 적이 있다. 어쩌면 이는 지극히 선진국만의 개념인 것을 괜히 현실과도 유리된 채 우리나라 형편에 기계적으로 대입하려 한 오류였는지도 모르지... "GWP" 등을 논하기도 전에 당장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몇달씩 또는 몇년씩마다 회사 형편이 어렵다며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다가 또 언제인지도 모를 구조조정의 회오리 속에 몇년씩 전전긍긍하며 연연한다거나 또는 아예 자리마저 잃어버린 채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또 헤매야 하는 신세들이다. 과연, 이 노동시장에서 "GWP" 같은 얘기를 누가 함부로 꺼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어렵다.
주말에 도서관을 다녀왔다. 내가 원하는 책들을 고르면서도, 내심 회사에서 최근 현안이 된 몇몇의 책들을 아예 신경쓰지 않을 수는 없었던 터라 일부 서가에서 그들을 둘러보곤 했지... 심지어 주말 출근까지 고심한 것 또한 부인하기 힘들다. 주말의 일상이 이럴진대, 평일에 그것도 "칼퇴근"까지 가능한 직장이라고? 그런 '꿈의 직장'에 다닌다면 정말 많이 부럽겠다. 하지만 거의 절대다수는 결코 그런 생활을 영위하지도, 꿈꾸지도 못한 채 마치 중세시대 노예마냥 그저 월급에 얽매여 산다는 건 실로 슬픈 일이다. 아니, 그런 몇 안되는 '꿈의 직장'과 비교된다는 것 자체가 더 큰 비극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꿈'이란 건 존재하기 마련인 법. 나 역시 마찬가지로 내 꿈을 내 이상을 위해 무언가를 스스로 실천해야 하는 것이며, 또 이는 전적으로 개인의 삶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회사가 내 월급을 보장해줄지언정 내 미래를 보장해주진 않는다. 이 점을 명심하자. 어차피 내 인생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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