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동사니/뉴스레터

2015년 2월 4일 (수)

단테, 2015. 2. 4. 22:28

글 / 인문학이나 예술 공부에 속성은 없다    


- 오늘의 편지, 

  

      

     

[김종락의 마포스캔들] 시인이여 그림을 그리라, 철학자여 춤을 추라

        

소설가나 시인이 되기 위해 문예창작과에 갈 필요가 있을까. 그림이나 조각을 하기 위해 반드시 미술대학에 가야 하는 것일까. 혹시 문창과나 미술대학 등에서의 공부가 빼어난 예술가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그보다,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문학을 공부하고, 훌륭한 소설을 쓰기 위해 철학을 공부해 보는 건 어떨까.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피아노부터 배우는 것은….

예술이건 학문이건 관계없이 중요한 것은 지적 감수성과 상상력이라며 이를 강하게 자극하는 프로그램을 공동체에 제안한 이가 있다. 문학 철학 텍스트와 시각, 청각, 영상 텍스트를 한꺼번에 공부하며 소설가(지망생)는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고, 화가(지망생)는 글을 쓰며, 철학 연구자는 춤을 추고 작곡을 하는 식의 프로그램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 해보기, 엉뚱한 짓 하기, 자신과 멀어지기….
  

 

실험을 제안한 이는 뜻밖에도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공동체에서 아도르노, 하이데거, 벤야민 등의 철학 강의와 세미나에 참여하고 고급 독일어와 프랑스어, 일본어, 라틴어 등을 공부하는 학자다. 본업인 경제학자 못지않게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한 시각 예술가이기도 한 그는 문학과 역사, 예술비평 등과 관련한 글을 쓰고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대학교수인 그가 대학 밖 인문학 공동체에서 이런 실험을 하는 것은 제도권 학교에서는 이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가에게 전공은 무의미하고 문학과 철학, 역사와 언어와 예술의 가로지르기가 필요한데 학과와 전공 사이에 엄존하는 칸막이가 이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믿는다. 이 프로그램으로 철학과 대학원생을 집중적으로 교육하면 미술 전공자보다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현대 미술은 시각 예술이 아니라 시각 철학이 된 까닭이다.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이가 더 깊은 철학적 사유를 하고 음악을 공부한 이가 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이르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학문이나 예술은 더 깊고 넓어지리라 확신한다. 그동안 생각지도 않았던 공부를 하며 자신과 멀어지는 것만으로도 지적 감수성과 상상력의 우물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대학 밖 인문학 공동체에서 하는 실험은 하나 더 있다.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시작한 독일어 원서 읽기가 그것이다. 이 실험의 목표는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몇 주 만에 독일어를 익혀 발터 벤야민의 독일어판 <역사철학테제>를 강독하는 것. 단시일에 독일어를 배우는 이 실험은 엉뚱하게도 영어를 읽으며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어와 비교하면서 이탈리아어를 먼저 익힌 뒤, 이탈리아어와 영어판 <역사철학테제>를 독일어 텍스트와 비교해 가며 독해를 하는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두 외국어를 익히는 만큼 이 모임의 공부는 다소 과격하다. 단테의 <신곡>을 이탈리아어로 읽으면서 그 일부를 통째로 암송한다. 실제로 이 모임에서 공부하는 한 청년은 단 두 번의 강의로 이탈리아어를 술술 읽어 내더니 세 번째 강의를 듣고 난 뒤에는 <신곡> 지옥편 일부를 이탈리아어로 유창하게 암송했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산스크리트어를 8차례 정도의 세미나로 익히는 실험도 제도권 밖 인문학 공동체에서만 가능한 실험 중 하나다. 이 실험은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다 한국어와 산스크리트어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그 학습법을 거칠게나마 체계화한 이공계 연구원 출신 한 독학자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어찌 보면 황당해 보이는 <산스크리트어 금강경 직독직해> 세미나에 동참한 이는 모두 15명 안팎. 세미나가 끝날 즈음, 당초 참여자의 절반 이상이 중도 탈락했으나 남은 5, 6명은 산스크리트어로 <금강경>을 읽어냈다.

길담서원서 진행하는 <맨땅 일본어>도 제도권에서는 쉽지 않은 실험이다. 일본어와 한국어의 유사성에 착안한 실험은 일본어 철자만 익힌 뒤 사전을 찾아가며 일본어로 된 인문학 책을 읽는 것이다. 텍스트를 통째로 암송해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익히는 공동체의 실험도 여러 단계와 방식으로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방식의 외국어 공부는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분명한 건 이 방법으로 외국어를 익히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이나 예술 공부에 속성은 없다. 산을 오르는 것처럼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느리게, 그러나 꾸준히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게, 그리고 빨리 이르는 길이다. 공동체에서 철학 고전 한 권을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공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산을 오르는 데 안전한 길만 있는 게 아니다. 절벽을 기어오르는 방법도 있다. 암벽 타기는 위험하고 쉽지 않지만, 길 걷기보다 큰 즐거움과 짜릿함을 선사한다. 어쩌면 공동체에서 진행 중인 여러 실험들도 인문학에서의 암벽 타기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김종락 |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 경향신문, http://media.daum.net/editorial/column/newsview?newsid=20150204210206872  

               


- 편집하는 말,   

     

입춘이다. 

출근해서도 내내 모르고 있다가 점심 무렵에서야 오늘이 입춘이라는 걸 알았다. 

대뜸 '벌써!' 하는 생각부터 들었구나... 시간은 정말로 화살이고, 

  

공부를 계속하는 중, 또 회사에서도 이것저것 배워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막상 어떻게 공부를 시작할까를 놓고는 아직 마땅한 방법론조차 없다. 하지만, 공부라는 게 

늘 그래왔듯이 결국 노력과 성과/결과는 정비례한다는 속설은 언제나 타당하기만 하다. 

  

신문에서 내 "주전공"? 또는 취미? 아니면, 일종의 '꿈'과도 같을 이야기들을 듣는다... 

내 개인적 일상에서도 늘 이 지침은 투영되고 적용될 일이겠지, 물론 이는 회사 같은 곳에서도 

항시 타당할 법. 

   

일주일의 절반을 관통하며 나름대로는 정해놓은 룰도 생겨난다. 대뜸 첫번째는, 일과시간 중에 

어떻게 해서든 "Early Catch-up" 전략을 실행하고 또 실천해야 한다는 부분인데... 정작 이는 

상당 부분의 내 '사생활'을 저해하고 또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테니, 일정 부분은 감수해야 할 

또 일정 부분은 어떻게든 극복해내야 할 과제이기도 하고. 

   

어쨌든 입춘이다. 봄, 새로운 생명과 생성의 계절.  

내게도 또 다른 일상이 생겨나는만큼 또 다른 결과들도 목표를 잡고 꾀해볼 참, 

   

- 그리고, 여전히 자산은 "사람"이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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