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동사니/뉴스레터

2014년 8월 28일 (목)

단테, 2014. 8. 28. 22:27

글 / 마종하의 詩를 읽으며,                       


- 오늘의 편지, 

     

   

       

어느 시인의 죽음   

          

마종하 시인이 세상을 뜬지 어느새 1주기가 되었다. 어디에도 마종하 시인을 기리는 모임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어느 시인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던져 주는 질문이 여기에 있다. 시인은 세상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유언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게, 자연으로나 빨리 보내주게"라고 해서 장례식도 가족장으로만 치뤘다는 후문이다. 

필자에게 '마종하 시인'보다 '마종하 선생님'이라는 것이 익숙하다. 마종하 시인은 필자의 중학교 때 선생님이기도 하다. 마포중학교 때 어느 나른한 오후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시를 한 줄 읽어주시면서 우리들에게 말했었다. '돌맹이'라는 소재를 주면서 다음 시간까지 시를 써오라는 숙제였다. 많은 학생들은 웅성거렸지만 그렇게 한 주가 지나버렸다. 숙제를 내라고 말씀하셨고, 자습을 시킨 후 많은 작품을 꼼꼼이 읽으셨는지 몇 작품을 읽어주시면서 조목조목 잘 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때 필자는 세상에 태어나서 글을 써서 처음 칭찬을 받았고 학교 교지에 발표할 기회를 얻었고, 나중에 문예 장학생으로 대학교를 다니던 계기가 되었다.

  등교길 아이들의 발걸음이
  의외로 느리다. 
  공원의 노인들 발걸음이 
  상당히 느리다. 
  아이들과 노인들은 공간에 살고
  그 중간에 끼여 사는 자들은 
  공연히 바쁘게 뛰어다닌다. 
  쓸데없는 이유를 
  무성한 그림자로 거느리면서. 
  시간의 고무줄 위에서 
  아이들은 천지를 수직으로 날고
  노인들은, 길 없는 길 위에서
  빗자루로 시간을 지우고 있다.

-마종하 시인의 <그림자의 모습>

선생님이자 시인은 바쁜 중에도 느리게 사는 노인의 발걸음에 시선이 걸린다. 
어릴 적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꿈은 키우는데 누군가의 손이 필요하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는가

마종하 시인, 그는 어떤 사람이었고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가? 목소리가 성량이 큰 시인은 의외로 뛰어난 관찰력을 갖고 있었다.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마종하 시인의 <딸을 위한 시>

같은 동네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되어 마종하 선생님을 가끔 만나게 되었다. 마종하 선생님이 작고하시기 전에 '마중물'이라는 말을 꺼내셨다. 누군가는 우물물을 넘치게 하려면 마중물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기일에 바쁘게 살기 쉬운 세상에 마중물의 역할이 마음에 오래 남는 말씀이었다. 이건청 시인은 마종하 선생님을 이렇게 평했다. "1960년대 한국시의 빛나는 부분이었으며, 세사에 초연하게 중후한 시편들을 써낸 진정한 시인 마종하는 가족들 품에서 외롭게 적멸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세상살이가 녹록치 않거든, 시를 읽은 것은 어떨까. 그 시인들이 바라본 시선을 기억하면서말이다.
이 글을 쓰는 내내 하영목 박사의 블로그에 걸려 있는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떠난 후에라도 누군가의 가슴속에 기억된다면, 우린 떠난 것이 아니다."

  상 따위를 받는다는 건 
  참으로 염치없는 일이다.
  상대적으로 제 일을 한 것인데
  거짓 겸손으로 나서서 나대다니.
  사양하거나 환원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진정한 이름은 아니다.
  아무리 헤아려보아도
  스님이나 신부가 불쑥 나서서
  상이나 받는다는 건 이상한 노릇.
  그렇기에 나도 다 치우고
  '스님도 시인도'아닌
  '스치는 인간' '스인'이 된 것이다.
  최소한의 위안으로 쓸 뿐인 시.
  정명주의나 무명주의는 같은 것.
  식자우환의 소동파나
  '외눈박이 신사'를 그린 고흐도
  어쩔 수 없이 동사무소에
  등재된 이름일 뿐,
  섞어 먹어 한 몸이 된
  한 몸의 되풀이가 온 몸인 것을. 

마종하의 <일러 이름-수상 사양 소감> 

- 마종하 시인 약력 _



마종하(馬鍾河.1943.12.25∼2009.1.10)
1943년 12월 25일 강원 원주 출생. 
원주고등학교 졸업
서라벌예대 문창과 졸업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68년 동아일보<겨울행진>와 경향신문 <귀가>신춘문예에 함께 당선됨(이후 중복 투고 금지)

[현대시] 동인
[월간 스포츠] 편집원
남산공업전문학교 교사, 
마포중고 교사 역임.
2006년 36년간의 교직에서 정년 퇴임.
1990년부터 2008년까지 다수의 모든 문학상 거부.

주요 저서
시집 <노래하는 바다>    민족문화사  1983 
시집 <파냄새 속에서>    나남  1988 
시집 <한 바이올린 주자의 절망> 세계사 1995
시집 <활주로가 있는 밤> 문학동네 2000
장편소설 <하늘의 발자국> 창우사 1988

    

       

* 한경닷컴, http://w.hankyung.com/board/view.php?id=_column_245_1&no=68&ch=comm2 

                                                                       


- 편집하는 말,   

    

아무 생각없이 문득 마종하 詩人을 떠올렸다. 

구글을 검색하니, 그가 작고한지 1주기가 되던 지난 2010년의 글 한편이 눈에 띈다. 

'詩人이 세상 밖으로 밀려나는 시대'는 비단 이 에피소드 뿐만이 아니다. 대학교마다 문학동아리, 

또는 문예동아리들은 이미 지난 세기부터 "입시학원" 분위기에 밀려 고사상태가 된 게 오래다.  

어쩌면 文靑은커녕 룸펜들만 양성하는 곳이 돼버린 건 아닐까... 괴로운 자문 중 하나다. 

류근 시인 말대로 "詩人 2만명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은 도통 실감이 나지 않는다. 

  

작고한 詩人이 마포에서 교사생활을 한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마포...  

오늘 현장에서 본사로 오는 길목에서 이미 포구의 정경은 다 잊혀진 채 삐까번쩍한 빌딩들 뿐인 

상암동과 또 그옆에 난곡을 방불케 할만한 망원동 일대를 지나쳤다. 

오늘 만난 임원 역시 그 동네가 댁이다. 마포... 어쩌면 나한테도 소위 "in 서울"의 종착역이 될, 

  

그렇게 마포 생각을 잠시 하려니 또 금세 한밤이구나, 뉴스레터도 많이 늦었다. 

왕복 약 120km를 내달린 오늘 하루도 역시 피곤감은 제대로다... 내일은 또 '빅 이벤트' 관계로 

더 바쁠 전망,  

                                                                                                                            


- 블로그의 글,     

- 인터넷의 글,     

- 그밖의 말들,   


* 글, http://blog.daum.net/dante21                                                 

'- 잡동사니 > 뉴스레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년 8월 31일 (일)   (0) 2014.08.31
2014년 8월 29일 (금)   (0) 2014.08.29
2014년 8월 27일 (수)   (0) 2014.08.27
2014년 8월 26일 (화)   (0) 2014.08.26
2014년 8월 25일 (월)   (0) 2014.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