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W.F. 헤겔, '정신현상학' (동서문화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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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 : 학문적 인식에 관하여
서문에서는 흔히 저자의 목적은 무엇이고 동기는 무엇이며 또 그가 다루고 있는 대상에 관하여 자기 이전이나 동시대에 쓰인 작품은 그의 저작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사실 그런 설명은 철학서에서는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문제의 성질상 부적절하고 취지에 어긋난다고도 하겠다. 왜냐하면 철학에 관하여 서문에 쓰일 법한 이야기 방식, 이를테면 역사적인 사실로부터 스스로의 경향이나 처지 또는 일반적인 내용이나 결론을 이끌어 내고는 거기에 진리에 대한 갖가지 주장이나 단언을 연관시키는 그런 방식은 철학적 진리가 표현되기에 적합한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철학이란 그 본질상 특수한 것을 내포하는 보편성을 토대로 삼고 있으므로, 다른 어떤 학문보다도 목적이나 최종 결론 속에서 사태 자체가 완전히 본질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비해 실제적인 전개 과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예컨대 해부학의 경우라면 신체의 각 부분을 생명 없는 물체 다루듯 해서는 학문의 내용이 되는 문제의 핵심을 파악했다고는 할 수 없으므로, 이보다 더 나아가 특수한 각 부분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더구나 학문이라고 칭할 자격도 없는 해부학처럼 잡다한 지식의 집합체의 경우에는 목적과 같은 보편적인 논의와, 신경이나 근육 따위와 같은 내용 자체에 관한 기술적이고 무사사상적인 논의가 서로 조금도 구별되어 있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철학에서는 총론과 각론 사이에 차이가 있으므로 물론 각론도 제시되어야 하지만, 이것으로 진리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은 철학 자체에 의해서 명시된다... 자기를 형성하고 교양을 쌓아 의식주와 같은 실생활을 벗어나려면 언제나 무엇보다 먼저 보편적인 원칙이나 관점에 대한 지식을 마음속으로 깨닫고 그로써 사태 전반을 사유하기 위해 노력한 다음 이에 갖가지 근거를 제시하여 찬성할지 반대할지 정해서, 구체적이고 내용이 충만한 대상의 성질을 상정하고 명확히 파악하여 이에 대한 정통적인 결정과 진지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렇듯 자기를 형성해 가는 초기 단계에는 충실한 생활의 진지한 모습을 향해 나아가며 사태 자체와 진지하게 겨루어 나가는 쪽으로 경험이 쌓여 간다. 설령 여기서 더 나아가 문제의 심층에 깃들어 있는 개념으로 진지하게 파고드는 경우라도 지금 이야기한 지식을 가지고 평가를 내리는 것은 역시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그에 알맞은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생동하는 실체는 참으로 주체적인, 다시 말하면 참으로 현실적인 존재이다. 그것은 실체가 자기 자신을 정립하는 운동이며 나아가서는 스스로 자기를 타자화하는 가운데 자기와의 매개를 행하기 때문이다. 실체는 주체로서는 순수하고도 단일한 부정성(否定性)이다. 바로 그렇기에 이는 단일한 것이 둘로 분열됨을 뜻한다. 그러나 이렇듯 분열되는 데서 오는 대립은 이중화됨으로써, 분열된 양자가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이 차이와 대립을 빚는 그런 상태를 부정한다. 이렇게 해서 스스로 회복된 동일성, 다시 말하면 밖으로 향하면서 곧 다시 자기 자신을 향해 반성·복귀하는 움직임, 즉 최초의 직접적인 통일 자체와는 다른 이 두 번째 동일성이 바로 진리이다. 진리는 자체적으로 생성된다. 이는 자기 종착점을 사전에 목적으로 설정하고 이 지점을 출발점으로 하여 실현 과정을 통해서 종착점에 다다를 때 비로소 현실적인 것이 되는 둥근 고리와 같은 것이다... 지금까지 서술한 바에서 도출되는 갖가지 귀결 중에서 특히 강조되어야 할 것은 다음과 같다. 지는 오직 학문 또는 체계로서만 현실적이고 또 현실적으로 서술될 수 있다는 것, 나아가 이른바 철학의 원칙이나 원리라는 것은 참일 경우에도 원칙이나 원리인 이상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잘못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칙이나 원리를 반박하기란 쉬운 일이다. 반박하려면 그 대상의 결함을 지적하면 되는데, 지금 본 바로는 그 원칙이 일반적인 원리이자 시초라는 점에서 이미 결함을 안고 있으니까 말이다. 철저하고 완벽한 반박이 행해지려면 그 논거가 원리 자체에서 도출되고 전개되어야만 한다. 원리와 대립되는 명제나 착상을 밖으로부터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고로 근본적인 반박은 본디 원리를 발전시켜 나가면서 원리의 결함을 보완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상의 부정적인 면만 바라보는 폐단에서 벗어나 논지의 진행과 결론이 갖는 긍정적인 면도 의식해야만 한다... 따라서 학문은 자기확신에 젖어 있는 의식의 세계와 스스로를 결합시켜야만 한다. 아니, 더 분명히 말하면 자기의식의 세계가 학문에 귀속되는 것과 그 귀속 형태를 드러내 보여야만 한다. 그 이전의 현실성을 결여한 학문은 아직 그 자체에 지나지 않고 단지 내면에 잠겨 있는 목적만 지릴 뿐이어서 활동하는 정신이 아닌 정신의 실체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실체는 밖으로 드러나 자각적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이는 곧 학문이 자기의식과 하나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학문이 현존할 수 있는 토대는 개념의 자기운동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까닭에 지금까지 얘기됐거나 아직 얘기되지 않은 외면적 측면을 포함한 진리의 본성과 형태에 관한 현대인의 견해는 내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정면으로 배치되기도 한다. 따라서 학문체계를 개념의 자기운동으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사람들에게는 탐탁치 않게 여겨지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플라톤 철학의 진수가 아무런 학문적 가치도 없는 신화에 있다고 여겨졌던 시기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몽상의 시대라고까지 불렸던 시기도 있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그 심오한 사변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존경받기도 하고, 또한 고대 변증법이 낳은 최대의 예술작품이라고 할 플라톤의 <파르메니데스>가 신의 생명을 참ㄹ으로 드러내준 긍정적인 표현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우리 시대 철학의 탁월한 점은 철학의 가치를 학문성에 둠으로써 누가 어떤 생각을 하건간에 오직 학문성을 통해 실질적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끝으로 한마디 덧붙인다면, 정신의 보편성이 너무나 증진된 나머지 이와 반대되는 정신의 개별성에는 그만큼 관심이 덜 쏠리고 또 보편정신이 전폭적인 범위에서 풍부한 교양을 지니고 이를 요구하기도 하는 시대에는, 정신이 행하는 작업 전체에서 개인의 활동이 차지하는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학문의 성격상 그럴 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아무튼 개인의 존재는 더욱더 잊힌다. 물론 그래도 개인은 자기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지만, 개인을 필요로 하는 정도는 필연적으로 축소되어 결국 개인 자신으로서도 자기에 대한 기대나 요구를 낮출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서론
철학에서 주제 그 자체에, 곧 참으로 존재하는 것의 현실적인 인식에 손대기 전에, 절대자를 손안에 넣을 수 있는 도구나 절대자를 포착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여겨지는 인식작용에 관해서 미리 이해해 둘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사람들은 한편으로 인식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서 절대적인 것의 인식이라는 궁극 목적을 이루는 데 좀 더 적당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을 수 있으므로 자칫 선택을 잘못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다른 한편으로 인식은 일정한 양식과 범위를 지니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그 본성과 한계를 면밀히 규정짓지 않고서는 진리의 맑은 하늘 대신 허위의 구름을 붙들게 될까봐 근심하는데, 이런 우려는 언뜻 당연해 보인다. 더욱이 그러한 우려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을 인식작용에 의해서 의식이 획득하도록 한다는 것이 애초에 그 개념상 모순된 처사이며, 인식과 절대적인 것 사이에 확연한 경계선이 그어져 있다는 확신으로까지 변질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인식이 절대존재를 손에 넣기 위한 도구라고 한다면, 이 인식이라는 도구를 머언가에 적용할 경우 그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놔두지 않고 거기에 형태를 부여해서 변화를 가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들일까?... 중략) ;
의식
곧바로 우리의 대상이 되는 최초의 지는 직접적인 지로서, 이는 직접적인 것 또는 존재하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를 우리는 직접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고, 거기서 나타나는 지를 조금이라도 바꿔선 안되며 개념적으로 파악해서도 안된다... ;
자기의식
지금까지 의식이 확신한 바에 따르면 그 진리는 의식과는 다른 어떤 것이었다. 그러나 진리를 경험하는 가운데 이러한 진리의 개념은 사라져 버린다. 의식의 대상은 직접적인 대상 그 자체였고, 이를테면 감각적 확신이 획득하는 존재나 지각이 알아내는 구체적인 사물 그리고 오성이 파악해내는 힘 등이었다. 한데 그것은 그 스스로 증명하듯이 사실은 그렇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그 자체로, 즉자적으로 있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그것을 파악하는 타자, 즉 의식이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그렇게 있는 것이다. 대상 그 자체에 대한 개념이 현실의 대상 앞에선 폐기되어 버린다. 다시 말해 경험 속에 직접 나타난 최초의 표상은 폐기되고, 그로써 확신은 사실상 의미를 잃고만다. 그 대신에 등장하는 것이 지금까지는 나타난 일이 없는, 그 자신의 진리와 일치한다는 확신이다... ;
이성
자기의식이 이성으로 고양됨에 따라 이제껏 의식이 지녀 왔던 타자존재와의 부정적인 관계는 긍정적인 관계로 뒤바뀐다... 이성이란 곧 '온갖 실재이다'라는 의식의 확산이다. 관념론은 이성의 개념을 이렇게 표현한다. 이성으로서 등장하는 의식이 곧 온갖 실재라는 확신을 그대로 자기 것으로 삼고 있듯이, 관념론도 이 확신을 그대로 말로 나타내서 '자아는 자아이다'라고 한다... ;
정신
이성은 온갖 실재라는 그의 확신이 진리로 북돋워지고 자기 자신을 세계로, 그리고 세계를 자기 자신으로 의식하기에 이르렀을 때, 이성은 곧 정신이 된다... 정신의 생성 운동에서는 의식의 대상인 순수한 범주가 이성의 개념으로 고양되었다. 관찰하는 이성에서는 자아와 존재, 자기를 자각하는 대자존재와 그 자체로 있는 즉자존재의 순수한 통일체가 자체적인 존재로 규정되었는데, 여기서 이서으이 의식은 자기를 발견하는 형태로 존재한다... 이렇게 해서 정신은 스스로가 자기를 짊어지는 절대적인 실재적 본질이 된다... ;
- "우리에게 잘못의 책임이 있기에 가책이 있음을 인정한다."
- 교양세계의 정신은 자기의식이 스며든 정신적 실재이다.
- 순수한 통찰이 개념의 힘을 기울이는 독자적인 대상은 순수한 통찰과 같은 장에 위치하면서 그와 대립하는 순수의식의 형식인 신앙이다. 그러나 순수한 통찰은 신앙과 마찬가지로 현실세계에서 출발해 순수한 의식으로 돌아온 것이므로 역시 현실세계와도 관계를 맺는다.
- 양심이 행동에 나설 때의 대립은 의식의 내면에서는 이상과 같이 나타난다.
- 이와 함께 정신의 생성을 나타내는 또 다른 측면인 '역사'는 자기를 매개하는 지적인 생성이다.
- 정신의 완성은 자기의 참모습인 스스로의 실체를 완전히 아는 데 있으므로, 이때 지는 정신이 내향화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정신은 자기의 현실존재를 떨쳐버리고 자기의 형태를 기억에 맡겨버린다. 내향화 과정에서 정신은 자기의식의 밤에 침잠해 들어가는데, 거기에는 사라져간 현실존재가 보존되어 있다. 이렇게 폐기된 존재, 즉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 지의 경지에서 새로 태어난 것이야말로 새로운 존재이고 새로운 세계이며, 새로운 정신의 형태이다. 이제 새로운 형태를 직접적으로 갖춘 정신은 다시 한번 처음부터 순수하게 전진을 시작하여 거기서부터 다시금 성장해 나간다. 마치 이전의 모든 것은 정신 속에서 사라져 버리고, 정신은 이제까지 축적해온 그의 온갖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나간 모든 것은 기억 속에 보존되고 내면화되어 실제로는 더욱 고차적인 실체의 형식을 이루고 있다. 그리하여 이 정신이 오직 자기 내면만을 출발점으로 하여 처음부터 다시 자기를 형성해 나가려고 할 때는 이미 출발점 그 자체가 높은 단계에 정립되어 있다. 이런 방식으로 현실계에 형성되는 정신의 왕국은 하나의 정신이 다른 정신을 대체하면서 자마다 기존의 정신세계를 인수하는 가운데 잇달아 탄생한다. 이렇게 이어지는 탄생에서 목표가 되는 것은 정신의 깊은 심연을 계시하는 것이니, 바로 이 심연이야말로 절대개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계시는 이 정신의 심연을 폐기하여 밖으로 확장하는 것이고 또 이 자기의 내면에 있는 자아를 부정하는 것인데, 이런 부정성은 그 개념의 외화인 실체를 나타낸다. 여기서 계시는 외화가 자기 내부에서 스스로를 외화하여, 확장된 공간 속에 있으면서 또한 정신의 심연에 자리하여 자기에 머물러 있는 그 개념을 시간적으로 나타낸다. 목표가 되는 절대지, 즉 스스로가 정신임을 아는 정신은 그의 도정에서 온갖 정신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어떻게 그의 왕국을 완성해 왔는지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그런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것은 일단 우연의 형식을 띠고 나타나는 자유로운 정신적 존재의 측면에서 보면 '역사'이고 개념적인 체계의 측면에서 보면 '현상하는 지의 학문'이다. 이 양자를 종합하면 개념적으로 파악된 역사가 된다. 그리고 이 역사야말로 절대정신의 기억이자 골고다의 언덕이며, 생명없는 고독한 정신을 절대정신으로서 왕좌에 받들어 놓은 현실이자 진리이며 확신이다.
오직 이 정신 왕국의 술잔으로부터
정신의 무한함이 부풀어 오르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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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독일 고전철학의 마지막이자, 철학사에서 가장 난해하기 짝이 없을 이 헤겔의 책 앞에 섰다. '정신현상학'은 그의 기념비적 저작이자 이후의 또 다른 걸작들인 '대논리학' 그리고 '법철학'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교두보다. (이렇게 배웠다.) 하지만, 시간관계상 또 내게 더 큰 관심사인 현대철학 공부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의 측면이란 의미 하나만으로도 충분하기에, 헤겔에 대해서는 이 책 한권만으로 터득해보고자 한다... 해도, 여전히 난독증에 걸린 사람마냥 헤매는 내 모습은 어쩔 수가 없겠다. (기실 이는 예전 그때 그 시절 동안의 소쉬르나 푸코, 또 움베르토 에코의 책들 앞에서 느꼈던 그 절망감들과도 엇비슷한) 내 천학의 소치일 뿐임을,
오월의 주말, 어느덧 자정이 임박한 시각... 그의 책을 서둘러 덮는다. 머리가 어지럽다, 봄날의 밤은 깊어만 가고 세상은 조용하구나... 철학의 끝은 어디일까? 문득 그런 질문이 떠오른다.
- 이번은 별점을 좀 후하게 주고자 한다. 전번에 칸트 책에 너무 박한 별점을 준 탓?
그때도 말했지만, 칸트와 헤겔은 결국 같은 뜻의 별점이다. 별 다섯은 영화 별 다섯과 같고,
오늘 매기는 별점 여섯 역시 별점 만점과 같은 의미이거나 또는 칸트의 다섯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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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헤겔은 독일 철학의 3대 거장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정신현상학'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 철학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불후의 명작이다.
그는 1770년 슈투가르트에서 궁정관리의 장남으로 태어나 프로테스탄트 가정에서 자라났다.
일곱 살에 김나지움에 입학한 헤겔은 책이나 신문 기사 등의 자료를 꾸준히 발췌하여 정리하는 데 정성을 기울인다. 이것은 훌륭한 개인 자료가 되었으며 이때 익힌 습관은 그의 과학적인 비판 방법의 토대가 된다. 열여덟에 김나지움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1788년 튀빙겐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였는데 그곳에서 J.C.F 횔덜린, F.W 셸링 등과 만난다. 처음에는 베른, 프랑크푸르트 등에서 가정교사를 하다 1801년 예나대학의 강사직에 임명된다. 이때 그는 1806년 나폴레옹 점령 하에서 그의 최초의 저서 『정신현상학(精神現象學) Ph?nomenologie desGeistes』을 출간한다. 1812년 두번째 저서 『논리학Wissenschaft der Logik』이 출간된 이후 181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수로 임명되는데, 이곳에서 그의 학생들에게 강의에 참석한 학생들을 위해 자신의 철학을 정리한 『철학강요』등을 발표한다. 1818년 피히테의 뒤를 이어 베를린 대학에 임명되고 마지막 주저『법철학 강요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1821)를 내놓았다. 베를린 시절은 헤겔의 가장 화려한 시절로서 헤겔학파가 형성되면서 국내외에 그의 철학이 널리 전파되었으나 1831년 콜레라에 걸려 사망하였다.
헤겔은 스피노자와 칸트, 루소, 그리고 괴테의 영향을 받았으며, 당대에 발생한 프랑스 혁명에 매혹당했다. 열아홉에 목도한 프랑스 혁명은 그가 이성과 자유에 대한 굳건한 믿음에 바탕을 둔 철학을 자신의 과제로 삼는 데 하나의 단초가 된다. 또 루소의 사상과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예술, 나아가 칸트, 피히테 등 당대의 주요 철학들을 깊이 탐구하면서, 근대의 온갖 분열된 상황에 맞서 삶의 근원적인 총체성을 되살리려는 이상을 세운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그를 계몽주의 한계를 역사주의적 관점을 통해 한 단계 넘어선 철학자로 평가하고 있다.
헤겔에게 근대철학과 문화, 그리고 사회는 주체와 지식의 대상, 그리고 정신과 자연, 자아와 타자, 권위와 자유, 지식과 신념,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의 긴장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헤겔의 주요 철학적 프로젝트는 그가 "절대정신" 또는 "절대자"라고 부르는 합리적이고, 진화하고 있으며, 포괄적인 단일체의 일부로 앞서 말한 모순과 긴장들을 취급하고 해석하는 것이었다.
헤겔에 따르면 이러한 단일체의 주요한 성격은 그것이 진화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모순과 부정 내에서 그것이 나타나고 그것들을 통해 진화하는 것이다. 모순과 부정은 어떤 역동적인 성질을 갖는데, 그것은 현실의 모든 영역 내의 매순간 합리적 단일체에 도달할 때까지 더 심화된 발전을 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헤겔 철학의 난해함은 정평이 나있는데, 철학자 러셀은 그를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자'로 꼽았다. 헤겔은 현실과 사고 사이의 철학적인 관계와 문제들을 파악하는데 있어 전통적 철학자들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사고와 논리의 형태로 '변증법'을 발전시켰다. 그 영향은 세계로 이어져 헤겔학파를 이룩하였으나 P.J.A. 포이어바흐로부터 시작되는 헤겔좌파에 의하여 정반대의 논리인 유물변증법을 만들어 내게 되었고, 그의 존재론은 원자론과 환원주의를 비판, 생명적 존재의 일원론을 주장함으로써 현대 전체론의 효시를 이루었다.
:: 목차 ::
서설:학문적 인식에 관하여 … 11
서론 … 60
의식
Ⅰ 감각적 확신, ‘이것’과 ‘사념’ … 72
Ⅱ 지각, ‘사물’과 ‘착각’ … 82
Ⅲ 힘과 오성, ‘현상’과 ‘초감각적 세계’ … 95
자기의식
Ⅳ 자기확신의 진리 … 121
1. 자기의식의 자립성과 비자립성, 주인과 노예 … 128
2. 자기의식의 자유, 스토아주의와 회의주의와 불행한 의식 … 138
이성
Ⅴ 이성의 확신과 진리 … 158
1. 관찰하는 이성 … 165
1) 자연의 관찰 … 167
2) 순수한 상태에서 외적 현실과 관계하는 자기의식의 관찰?논리학적 법칙과 심리학적 법칙 … 200
3) 자기의식이 자신의 직접적인 현실과 맺는 관계, 인상학과 골상학 … 206
2. 이성적인 자기의식의 자기실현 … 233
1) 쾌락과 필연성 … 239
2) 마음의 법칙과 자만의 광기(狂氣) … 244
3) 덕성과 세계행로 … 252
3. 절대적으로 실재하는 개인 … 260
1) 정신적인 동물의 왕국과 기만, 또는 ‘사태 그 자체’ … 261
2) 법칙을 제정하는 이성 … 277
3) 법칙을 음미하는 이성 … 282
정신
Ⅵ 정신 … 290
1. 참다운 정신, 인륜 … 293
1)인륜의 세계, 인간의 법칙과 신의 법칙, 남성과 여성 … 294
2) 인륜적 행위, 인간의 지와 신의 지, 죄책과 운명 … 306
3) 법적인 상태 … 317
2. 자기에게서 소외된 정신, 교양 … 322
1) 자기에게서 소외된 정신의 세계 … 325
⑴ 교양과 현실의 교양세계 … 325
⑵ 신앙과 순수한 통찰 … 351
2) 계몽사상 … 358
⑴ 계몽과 미신의 싸움 … 359
⑵ 계몽의 진리 … 382
3) 절대적 자유와 공포 … 388
3. 자기를 확신하는 정신, 도덕성 … 397
1) 도덕적 세계관 … 398
2) 치환 … 407
3) 양심, 아름다운 혼, 악과 악의 사면 … 417
Ⅶ 종교 … 444
1. 자연종교 … 451
1) 빛 … 453
2) 식물과 동물 … 454
3) 공작인 … 455
2. 예술종교 … 459
1) 추상적인 예술작품 … 461
2) 살아 있는 예술작품 … 470
3) 정신적인 예술작품 … 474
3. 계시종교 … 487
Ⅷ 절대지 … 514
헤겔의 사상과 《정신현상학》 … 530
게오르크 헤겔 연보 … 560
...
...
정신현상학
- 저자
- G. W. E. 헤겔 지음
- 출판사
- 동서문화사 | 2011-08-01 출간
- 카테고리
- 인문
- 책소개
- 이 책의 제목 '정신현상학'이란 일차적으로 '의식의 경험학'인 ...
...
'- 단테노트 > 철학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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