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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성과 전통적 시학, 그 <교과서>에 대한 태클

단테, 2009. 1. 19. 23:25

 

 

 

 

    부레옥잠 

 

 

     신미나  /  shinminari@naver.com

 

 

 

  몸때가 오면 열 손톱마다  비린 낮달이 선명했다.

 

  물가를  찿는  것은  내 오랜  지병이라,  꿈속에서도  너를 탐하여

위에 공방空房  하나 부풀렸으니 알을 슬어  몸엣것  비우고 나면 귓불

에 실바람 스쳐도 잔뿌리솜털 뻗는  거라  가만  숨 고 르면  몸물 오르

는   소리 한 시절 너의 몸에 신전을 들였으니

 

  참 오랫만에 당신

 

  오실 적에는 불   밝은  들창  열어두고  부러 오래 살을 씻겠네 문 밖

에서 이름 불러도 바로 꽃잎  벙글지 않으매  다가오는 걸음소리에 

를 적셔가매 당신 정수리에 위에 뒷물하는 소리로나 참방이는 뭇별들

다 품고서야 저 달의 맨낯을 보겠네

 

 

  

-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서정주가 쌓은 문학의 전통이 고금을 통틀어 가장 대표적인 문단의 질서라면 다소 과장일까?

가끔 평론가들이 내뱉는 "전통적 시예술에서의 미학"에 대해 왜 나는 자꾸 딴지를 걸고 싶은 걸까?

혹시 내 정치적/문학적 편향이 지나치게 서정주와는 상극인, 내지는 김수영류에의 천착 따위를 굳게

믿고만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

 

정서와 형상화는 언제까지고 시예술에 있어 최대의 덕목 중 하나일 텐데, 문제는 탈이데올로기 시대를 사는 한 방편이 비단 개인적 정서로의 회귀 따위나 보편적인 상식 차원이라면, 굳이 문학이 떠안아야 할 사회적인 책임 수준이란 게 과연 있을까 하는 반문.

 

그래서 언제나 나는 일탈의 시학을 꿈꾼다. 비록 그것이 경거망동이거나 예술 이하의 차원으로 비하된다면, 굳이 시도할 까닭도 없는 일일 테지만... - 그래서 모든 시대적 작가들의 <파격>은 위대하다. 어떻게들 비판자들의 날카로운 서슬을 극복해냈는지부터가 도대체 궁금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