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테노트/문학노트

담대한 상상력, 공포 뿐인 현실의 반증

단테, 2009. 1. 19. 23:18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

                

 

김 륭  /  kluung@hanmail.net     

 

 

 

    1.

  실직 한 달만에 알았지 구름이 콜택시처럼 집 앞에 와 기다리고 있다는 걸

 

 

    2.

  구름을 몰아본 적 있나, 당신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내 머리에 총구멍을

낼 거라는 확신만 선다면 얼마든지 운전이 가능하지

  총각이나 처녀 딱지를 떼지 않은 초보들은 오줌부터 지릴지 몰라

  해와 달, 새떼들과 충돌할지 모른다며 추락할지 모른다며 울상을 짓겠지만

  당신과 당신 애인의 배꼽이 하나인 것처럼 하늘과 땅의 경계를 가위질하는 것은

주차딱지를 끊는 말단공무원이나 할 짓이지

  하늘에 뜬 새들은 나무들이 가래침처럼 뱉어놓은 거추장스런 문장일 뿐이야

  쉼표가 너무 많아 탈이지 브레이크만 살짝, 밟아주면 물고기로 변하지

 

 

    3.

  구름을 몇 번 몰아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해나 달을 로터리로 낀 사거리에서

마음내키는 대로 핸들만 꺾으면 집이 나오지

  붉은 신호등에 걸린 당신의 내일과 고층아파트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보다 깊은

어머니 한숨소리에 눈과 귀를 깜빡거리거나 성냥불을 긋진 마 

  운전 중에 담배는 금물이야

  차라리 손목과 발목 몇 개 더 피우는 건 어때? 당신

  꽃 피우지 않고도 살아남는 건 세상에 단 하나, 사람뿐이지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건 새가 아니라 벌레야

  구름이란 눈이나 귀가 아니라 발가락을 담아내는 그릇이란 얘기지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말이야 그걸 아는 나무들은 새를 신발로 사용하지

  종종 물구나무도 서고 말이야 생각만 해도 끔찍해

  구름이 없으면 세상이 얼마나 소란스러울까

 

 

    4.

  아주 드문 일이지만 콜택시처럼 와 있는 구름의 트렁크를 열어보면

  죽은 애인의 머리통이나 쩍, 금간 수박이 발견되기도 해

  초보들은 그걸 태양이라고 난리법석을 떨지 

 

 

 

-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옛 신춘문예 당선작품집을 읽다 보면 가끔씩 그 시절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를 되짚어 보게 된다. 그럼에도 이번에 꾸역꾸역 이 작업을 해보려는 시도는 다름아닌, <시대적 감각>을 되살려보자는 의도, 그리고 그런 복원이나 회복 내지 따라잡기를 통한 <현대적 글쓰기>에의 일조를 꾸며보려는 시도일 터.

 

   문화일보가 꼽은 이 작품을 통해 실직이 낳는 과대한 절망, 그럼에도 마치 웃음을 쥐어짜듯 핑계삼아 희망을 얘기하고 노래하며 살아야 하는 현대인의 한 초상을 보게 된다. 그것이 비록 훌륭한 상상력이라 할지라도 행간에 숨은 진실은 결국, <절망>일 뿐이다. 개인의 상상력이 차마 극복해내기 힘든 현실이기 때문에 작품을 독해하는 소감은 슬픔 그 자체다. 왜 연기나 도로에서의 여정이 아닌 구름을 선택했을까 따위, 또는 죽은 애인의 머리통을 태양으로까지 소급해내는 과도한 극단은 어쩜 그만큼 <절망의 깊이>는 아닐까 하는 추측 따위, 그래서 이 시를 읽는 현대인은 위로보다도 <공포>에 대해 정서적으로 공감하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