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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작의 일상성, 키치와 민주주의를 생각함

단테, 2009. 1. 19. 23:27

 

 

 

 

 

근엄한 모자

 

 

    이기홍  /  khlee8-@hanmail.net

 

 

 

오늘 예식장에 그를 데려가기로 합니다

그는 내 가슴속에 살면서도

맨 위에 올라가 군림하기를 좋아합니다

어쩌면 그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끔, 내 든든한 밑바탕이 되어주는 그가

차갑고 근엄한 얼굴을 치켜들면

사람들은 그에게 다가가

다소곳이 머리를 조아립니다

예식장에 초대받아 온 사람들도

나보다는 그에게

더 깊은 관심을 표하기도 해 속이 몹시 상합니다

이제 그가 없으면 나는

사람들의 괄호 밖으로 밀려날지 모릅니다

그래서 난 외려 그의 보디가드가 됐습니다

그의 뾰족한 코가 땅바닥에 곤두박질치진 않을까

낯선 바람에라도 끌려가 낭패를 당하지 않을까

조금도 맘놓지 못하고 그를 지켜봐야 합니다

슬그머니 내 위까지 올라와 상전이 된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나 나는 이렇게

나와 다르게 살아야 하나요

그를 몰아내고 청바지 입기를 좋아하는

나를 데려올 수는 없나요

 

 

 

- (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그 어떤 비판에도 꿋꿋하게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꼽은 심사위원들이 궁금하다.

놀랍도록 범작인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한 새로운 감수성은 과연 무엇일까?

혹은, 시의 죽음 따위를 논해야만 할 일종의 방어적 기제였던가? 혹은,

<기본>으로 회귀하고픈 최신 유행담들에 대한 한줄기 방어의 빛일까? 따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