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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리즘과 내러티브의 상관관계

단테, 2008. 12. 9. 17:08

 

 

 

 

드라마가 갈수록 내러티브보단 아포리즘에 경도되는 까닭은 짧은 분량에 대한 조바심으로

작가가 너무 많은 얘기들을 풀어놓고자 함에 기인한다고들 한다. (맞는 말인진 몰라도)

 

요즘 TV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보면 짐짓 초반부의 그 놀라운 대사들과 이야기의

재미 등과 같은 요소들이 크나큰 상승작용을 했었고 또 그래서 한편의 "저주받은 걸작"을

논하게 되는 화두였었는데, 당장 요즘의 스토리들은 다소 산만하다거나 혹은 재미가 없다,

작가의 과욕이 지나치다 등과 같은 억울한(?) 비판들을 듣게 되기도 한다.

 

실제로 아포리즘의 역할이 전체 내러티브 상의 특출한 요소로 주목받기 위해선 무언가의

끈끈한 집중력 내지 필연귀결성 따위가 관객의 동의를 이끌어냈을 때다. 그렇지 않은 경우,

예전의 시토론 기억을 더듬자면 일종의 <파편화> 내지 <지나친 무게> 등으로 금세 눈길이

돌려지게 됨 역시 자연스런 현상일 텐데 말이야...

 

 

이별 뒤의 혼돈을 다룬 이번주 방영분에서도 그런 대목들을 심심찮게 발견케 되는데, 이건

전적으로 작가의 과잉 내지 독자의 우매함이 빚는 앙상블이라고도 보여진다. 실제로 암만

집중력이 뛰어난 주제의식이라 해도 독자가 정작 그것엔 별 관심이 없을 때 그 지나친 강조

내지 주장들은 모두 불필요한 악세서리가 되거나 혹은 지루한 동어반복으로 비춰진다.

 

작가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봤다. 그렇다고 연인관계 하나만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스토리

전개의 스피드만으로 시청률을 붙잡아두자는 전략은 과연? 그게 작가의 역할일까? 아니면,

드라마 기획자나 PD의 몫만으로 돌려세울 일은 혹시 아닐까 하는 물음도 자연스레 생긴다.

 

솔직히 노희경 작가의 시나리오를 보며 그 주제의식이랄까 (주제의식이라면 이렇게까지 또

아포리즘들을 거창하고도 다양하기 짝이 없을만큼 쏟아내진 않았을 터) 내지 그 어떤 집중,

혹은 귀결점 제시의 노력 따위에 대해 특징있는 색깔이라고 추켜세울만도 할 법한데... 또

그게 잘 안되는 가장 큰 연유가 바로 요즘 들어 줄거리가 점점 밋밋하고 "재미없어졌다"는

거다. 긴장감이 떨어진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그때 문득 아포리즘이 떠올랐다. 그 활용,

 

이야기 전개상에서의 그 역할 내지 책임의 정도랄까... 말이다. 아니라면, 거꾸로 그렇게나

많은 의미있을 법한 얘기들의 유일한 귀결점이 결국 지오와 준영의 사랑 뿐이란 말인가?...

그 얘기가 오히려 더 관객을 배신하는 내러티브가 될 것임은 너무도 자명하다. 연애소설을

경멸하게 되는 가장 큰 연유 또한 자고로 그래왔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건 걱정스럽다.

- 그렇다면, 적어도 작가가 이 대목쯤에서 한번 "내 얘긴 연애가 아니고 현대인의 자화상"

   이라거나 "사랑이 아닌 이별과 그것을 통한 인간이란 존재의 실존적 내면 내지 상처의

   성장과정에 대한 한 고찰" 정도라고까지 좀 거창하게 떠들며 쇼라도 한판 벌여주는 게

   되레 마케팅 측면에서도 더 안전하다. (지오와 준영 얘길 꺼내는 순간, 곧 망할 테므로)

 

 

주제의식이 아포리즘 하나로도 귀결될 수만 있다면, 작가가 줄곧 그 얘기를 꺼내게 되도록

밀어붙이는 게 하나도 이상할 리 만무하다. 오히려 그 속도조절 따위가 역량이 될 텐데...

이 드라마에서 제시하고자 했던 숱한 아포리즘들은 도대체 그 결론이 뭐냐? 라는... 좀 더

짜증스러운 질문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너무 많이 썼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겠는데,

 

아포리즘의 제시, 그리고 그 설명으로서의 내러티브냐... 혹은 내러티브의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귀결점으로서의 아포리즘 제시냐에 따라 그 작품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건 다소

생뚱맞고도 억지스런 주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저 내 짧은 시간의 단편적인 파편일 뿐.

혹은 그래도 이만큼 훌륭한 얘깃거리를 지어냈단 것만으로도의 내 속맘의 부러움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