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감옥으로 가는 부처
- 오늘의 편지,
부처님의 자비의 품에 이 땅 이천만 노동자의 처지를 의탁한 25일 동안 고통과 불편을 감내하여 주신 조계종과 조계사 스님, 신도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이천만 노동자들이 생존이 걸린 노동개악을 막기 위한 활동에 함께 하겠다 하신 조계종과 조계사에 감사드립니다.
어제는 종단의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각의 망설임도 없이 청정도량이자 성소인 경내에까지 경찰 공권력이 난입하였습니다.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12월 9일은 대한민국 권력의 광기를 여과 없이 보여준 치욕의 날로 기록될 것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저를 체포하기 위해 수천 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하였습니다.
저는 살인범도 파렴치범도, 강도범죄, 폭동을 일으킨 사람도 아닙니다.
저는 해고 노동자입니다.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해고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아이들은 꿈을 포기해야 하고, 단란했던 가정은 파탄 났습니다.
불나방처럼 떠돌다 때로는 생과 사의 결단을 강요받고 실제 생을 포기한 동료가 많았습니까? 누구의 잘못입니까?
정부는 저임금 체계를 만들고 해고를 쉽게 할 수 있어야 기업과 경제를 살리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죽어야 기업이 사는 정책이 제대로 된 법이고 정책입니까?
저는 해고를 쉽게 하는 노동개악을 막겠다며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1급 수배자 한상균의 실질적인 죄명입니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나라입니까?
저는 민주노총 위원장입니다.
여기 계신 많은 언론들이 민주노총을 못 잡아먹어 안달을 내는 기사를 연일 쏟아 내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변하지 않는 귀족 노동자들의 조직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진실입니까?
980만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정글의 세상에서 생존경쟁을 벌이며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와 새누리당의 비정규 악법은 그나마 2년 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소박한 꿈과 기회마저 없애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규제 없는 파견확대로 합법적인 사람장사인 파견노동으로 좋은 일자리를 뺏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나이 50이 넘으면 당연히 파견노동을 해야 하는 법안이기도 합니다.
민주노총이 귀족노동자 조직에 불과하다면 왜 비정규직악법을 막기 위해 온갖 탄압과 피해를 감수하며 총궐기 총파업을 하는지 물어보기라도 해야 할 것입니다.
11월 14일 폭력시위를 이야기 합니다.
국가 공권력의 폭력진압은 왜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살인 물대포에 69세 백남기 농민이 병원에 사경을 헤매고 누워 계신데 왜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까? 이 분이 쇠파이프를 들었습니까? 이 분이 경찰에게 폭력을 휘둘렀습니까?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까? 왜 사과 한마디 하지 않습니까?
민주노총을 폭력집단으로 낙인찍고, 한상균을 폭력집단의 괴수로 몰고, 소요죄를 들먹거리며 단 한 번의 집회로 수백 명을 소환, 체포, 구속시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권의 살인폭력을 덮으려는 것입니까?
이 시대의 가장 큰 죄인은 1차, 2차 총궐기로 표출된 이대로는 못살겠다는 민심을 확인했듯이 민생파탄의 책임을 져야 할 박근혜정권입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껍데기뿐이었던 민주주의마저 죽어가고 있는데 왜 아무도, 어떤 언론도 말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자진출두 합니다.
저에게는 도로교통법과 집시법위반으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있습니다.
정권이 짜놓은 각본에 따라 구속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니 피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법정에서 광기어린 공안탄압의 불법적 실체를 낱낱이 밝힐 것입니다. IS, 복면 불법시위, 소요죄 협박으로 공안 몰이를 하려다 꽃과 가면으로 조롱을 당하니까 혼돈에 빠진 불의한 정권의 민낯을 까발릴 것입니다.
정권에 경고합니다!
위원장을 구속시키고, 민주노총에 대한 사상 유래 없는 탄압을 한다 하더라도 노동개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재벌들이 공식 요청한, 저임금, 비정규직 확대, 자유로운 해고, 노조무력화를 완수하기 위한 노동개악을 경제를 살리는 법이라며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습니다.
재벌들에게 주는 선물상자를 노동개혁 포장지를 씌웠다 해서 노동개악이 개혁이 되지 않습니다.
노동자 서민을 다 죽이고 재벌과 한편임을 선언한 반노동·반민생·새누리당 정권을 총대선에서 전 민중과 함께 심판 할 것입니다.
민주노총은 노동재앙, 국민대재앙을 불러 올 노동개악을 막기 위해 이천만 노동자의 생존을 걸고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총파업에 나설 것입니다.
이것이 이천만 노동자의 바람이고 민주노총에 주어진 역사적 책임입니다.
노동개악을 막기 위한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전 국민이 지지하고, 전 민중이 함께 하는 투쟁으로 번져 나갈 것입니다.
야당에 요구합니다!
대통령이 진두지휘를 하며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있는 지금, 언제까지 협상 테이블에 앉아 저울질 할 것인가?
재벌자본을 살릴 것인지, 노동자를 살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단 말입니까?
당 대표 원내대표가 수차례 당론이라 밝히고 있지만 국민은 여전히 당신들의 입장이 무엇이냐 묻고 있습니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노동개악법안 처리 중단을 선언해야 합니다.
당리당략으로 또다시 정부여당과 야합하려 한다면 국민이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민주노총 조합원 동지들!
죄송합니다. 동지들이 저에게 부여한 노동개악저지 총파업투쟁을 완수하지 못하고 공권력에 의해 잠시 현장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구속된다 하더라도 노동개악이 저지될 때까지 투쟁을 이어갈 것입니다.
감옥과 법정에서도 투쟁을 계속 할 것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12월16일 총파업을 시작으로 노동개악 저지를 위한 총파업 총궐기 투쟁을 위력적으로 해 냅시다.
감옥 안에서라도 노동개악 저지 총파업 투쟁 승리 소식만은 꼭 듣고 싶습니다.
승리할 수 있고 승리 해야만 하는 역사적인 투쟁입니다.
저는 누구보다 조합원동지들을 믿습니다.
현장에서 민주노총을 지키고 있는 자랑찬 민주노총 조합원동지들! 사랑합니다!
총파업 투쟁 승리로 이천만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켜냅시다. 투쟁!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한상균
- 편집하는 말,
아침부터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조계사 자진퇴거 및 즉시에 체포된 소식을 접하면서 다시금 이 시대의 '절망'을 논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제 '정치적 꿈'을 이야기할 자리라면 대통령 따위가 아닌 차라리 민주노총 위원장이 되겠노라 선언하는 편이 더 건강하다고, 그래야 역사를 논할 수 있고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희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노동에 대한 탄압의 실질적 속내는 연말을 목표로 못박은 대통령 지시에 발맞춰 일사불란하게도 어떻게든 입법화하려는 집권세력의 '노동개악' 음모다. 전국 이천만 노동자의 비정규직화, 이토록 거대한 음모가 국가적 차원에서 살인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은 또 모든 제도권 언론이 이에 발맞춰 일체의 논평조차 꺼내지 않는 이 희대적 사기극은 한마디로 쿠테타에 더 가깝다. (최근에 가장 큰 문제로 불거진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못지 않을만큼)
야당이 당 명칭을 곧 바꿀 심산인가 보다. 이름 못지 않게 중요한 건 그 내용일 테며, 내홍으로 잔뜩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의 모습 또한 부끄러워해야 마땅할 노릇. 정의당 역시 어쩌면 "이제는 정의 따위를 논할 게 아니고 투쟁의 전선에 임하라"는 구호를 들고 나설 차례는 혹시 아닐까 자문해볼 차례다. 야권이 총단결을 한다 해도 내년 총선에서의 승리 또한 보장되기 어렵다는 비정한 현실... 이를 어떻게 극복해낼 것이냐가 야권의 진짜 '리더십'이기도 하고.
그런 차원에서, 차라리 오늘 아침 총동원된 공권력에 붙잡혀 감옥으로 향한 부처야말로 이 시대의 또는 야권의 진짜 '리더'는 아닐까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 사회의 가장 정확한 시각은 가장 소외된 자들의 시각"이라는 사르트르의 말... 정치적 암흑기에 결연히 무크지 형태로 책을 펴낸 "실천문학" 창간호에서 읽던 글귀다. (그래서 오늘 또 다시 예전의 단병호 전 의장을 떠올리게 된 건, 그가 진정 위대한 한 인물이었음을 새삼 깨닫는 건, 순전한 우연이 아니다.)
한상균 위원장의 지난하고도 오래된 투쟁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또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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