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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미학] 창조와 모방의 변증법, 예술과 정치의 통일

단테, 2015. 5. 20. 00:31


-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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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기는 심경의 일상, 그 와중에 책을 '주마간산'만큼 건너뛰며 대충 읽게 된다. 

마음만 조급해지고 성의는 부족해지고 결과는 딱 뻔해진다. 조잡함의 과정... 

 

'아우라' 

이 고도의 전문용어를 깨우치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미학의 문외한이며 '천학'의 주제임을 먼저 

깨닫는 편이 더 유익하겠다. (기실 이 용어가 발터 벤야민의 창조물인지조차도 잘 모르는데다) 

- 다만 적어도 현 시대에, 이 용어의 발명가로 그의 이름이 유명해진 건 충분한 사숙의 댓가다. 

 

주제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오역일 수도)  

- "아우라의 위기, 곧 예술의 정치화"를 뜻한다. 

  

졸업반 때 읽었던 "키치"를 문득 떠올렸다. 

'저급하고도 조잡한 예술작품의 모방' 차원을 벗어나 어쩌면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긍정적 양상, 

예를 들면 예술의 대중화 측면에 있어서 획기적 차원의 트렌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했었다. 

(어찌된 일인지 그 이후론 이에 대한 저작물을 구경해보기 힘들 게 된 탓은 잘 모르지만서도) 

- 아마도 또 다른 '신조류'가 등장해 퇴색한 감이 있었겠는데, 그 이후의 흐름은 더더욱 모르고, 

    

'예술'의 실천적 의미, 즉 '정치'는 두고두고 곱씹어볼 문제인 것만은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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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6년, 2판을 중심으로 #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대한 분석을 기도하려고 했을 때 자본주의는 아직 초기 단계에 있었다... 상부구조의 변혁은 하부구조(토대)의 변혁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되어 그것이 문화의 제반 영역에서 생산 조건의 변화를 관철시키는 데 반세기 이상이 소요되었다... 아래에서 예술이론에 새로이 도입될 개념들은 이들이 파시즘의 목적을 위해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는 점에서 통상적으로 유통되는 개념들과 다르다. 그 대신 그 개념들은 예술의 정치학에서 혁명적 요구들을 표명하는 데는 쓸모가 있다. 

 

예술작품은 원칙적으로 항상 복제가 가능했다... 1900년 전후에 기술적 복제는 그것이 전승된 예술작품 전체를 대상으로 만들고 예술작품의 영향력에 심대한 변화를 끼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의 작업방식에서 독자적인 자리를 점유하게 될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다... 

 

가장 완벽한 복제에서도 한 가지만은 빠져 있다. 그것은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으로서, 곧 예술작품이 있는 장소에서 그것이 갖는 일회적인 현존재이다... 원작 (Original)이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사실이 원작의 진품성(眞品性)이라는 개념의 내용을 이루며, 이 진품성에 바로 그 대상이 오늘날까지 그것 자체이자 다른 어떤 것일 수 없는 정체성을 면면히 전해준 어떤 전통에 대한 관념이 기반을 둔다. 진품성의 영역 전체는 기술적 복제의 가능성에서 벗어나 있고, 물론 기술적 복제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복제의 가능성에서도 벗어나 있다... // (편집자 주 : 기술복제가 갖는 1) '편집'의 가능성, 2) '모사'를 통한 수용자의 요구에 부응 등에 관한 기술...) // 이렇게 변화된 상황은 그밖에도 예술작품의 존속 자체에 아무런 손상도 입히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은 어쨌든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우리는 이러한 특징들을 아루라 [Aura, 독특한 분위기]라는 개념 속에 요약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즉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이다. 이러한 과정 자체는 징후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지니는 의미는 예술의 영역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일반화해 말하자면, 복제기술은 복제된 것을 전통의 영역에서 떼낸다. 복제기술은 복제를 대량화함으로써 복제 대상이 일회적으로 나타나는 대신 대량으로 나타나게 한다. 또한 복제기술은 수용자로 하여금 그때그때의 개별적 상황 속에서 복제품을 쉽게 접하게 함으로써 그 복제품을 현재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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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큰 규모의 역사적 시공간 내부에서 인간 집단들의 전 존재방식과 더불어 그들의 지각의 종류와 방식도 변화한다... 다시 말해 사물을 자신에게 보다 더 "가까이 끌어 오려고" 하는 것은 오늘날 대중이 지닌 열렬한 관심사이며, 모든 주어진 것의 일회성을 그것의 복제를 수용함으로써 극복하려고 하는 경향이 바로 그 관심을 나타낸다... 

 

예술작품의 유일성은 그 작품이 전통의 연관에 편입되어 있다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가장 오래된 예술작품들은 의식(儀式, Ritual)에 쓰이기 위해 생겨났는데, 처음에는 주술적 의식에 쓰이다가 나중에 종교적 의식에 쓰였다. 그런데 예술작품의 아우라적 존재방식은 결코 그것의 의식적 기능에서 떨어져 나온 적이 없다는 사실이 결정적 의미를 갖는다. 달리 말해, "진정한"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가치는 의식에 근거를 둔다... // (중략) // 이러한 제반 상관관계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고찰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건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매우 중요한 인식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즉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은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예술작품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의식에 기대어 살아온 기생적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도록 하였다. 복제된 예술작품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복제를 겨냥해서 제작되는 예술작품의 복제품이 되어가고 있다. 예를 들면 사진의 원판으로는 다량의 인화가 가능하다. 어느 것이 진짜 인화냐고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술 생산에서 진품성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그 효력을 잃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예술의 모든 사회적 기능 또한 변혁을 겪게 된다. 예술이 의식에 바탕을 두었었는데, 이제 예술은 다른 실천, 즉 정치에 바탕을 두게 된다. 

 

... 여러 예술 활동이 제각기 의식의 모태에서 해방됨에 따라 예술 활동의 산물들이 전시될 기회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영화는 그 역할이 생활에서 거의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어떤 도구를 다루는 일이 조건 짓는 지각과 반응약식에 인간을 적응시키는 데 기여한다... 

 

사진에서는 전시가치가 제의가치를 전면적으로 밀어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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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개선 가능성이 가장 큰 예술작품이다. 이러한 개선 가능성은 영화가 영원한 가치를 극단적으로 포기하는 것과 연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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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찍이 사람들은 사진이 예술이냐는 물음에 많은 통찰력을 쓸데없이 쏟아 부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이에 선행되어야 할 물음, 즉 사진의 발명으로 인해 예술의 성격 자체가 바뀐 것이 아닐까 하는 물음은 제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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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성과의 전시 가능성 자체에서 일종의 테스트를 만들어냄으로써 테스트 성과를 전시 가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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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특징지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인간은 처음으로 - 그리고 이것이 영화의 작용인데 -, 비록 자신의 생생한 인격 전부를 바치면서도 그 인격의 아우라는 포기한 채 연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우라란 사람의 여기와 지금에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우라의 모사란 있을 수가 없다. 무대 위에서 맥베스를 둘러싸고 있는 아우라는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맥베스 역을 해내는 배우의 주위를 감돌고 있는 아우라와 떼어놓을 수 없다. 그러나 영화 제작소에서 행해지는 촬영의 특징은 관객의 자리에 카메라가 대신 들어선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연기자를 감싸고 있는 아우라는 사라지기 마련이고, 동시에 그가 연출하는 인물의 아우라 또한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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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는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동안 자기가 결국에는 이 대중과 관계한다는 사실을 안다. 이 대중이 바로 그를 컨트롤할 존재이다... 물론 이 컨트롤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영화가 자본주의적 착취의 사슬에서 해방될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영화 자본을 통해 이 컨프롤의 혁명적 기회들이 반혁명적인 기회로 변형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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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기술과도 관련되고 스포츠의 기술과도 관련된 점으로서 주목할 사실은 누구나 그 기술들이 전시하는 성과들에 반쯤 전문가로 참여한다는 점이다... 영화산업은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생각들과 애매한 투기로써 대중의 관심을 자극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목적에서 영화산업은 엄청난 홍보장치를 동원하였다... 이 모든 것은 대중이 영화에 대해 갖는 원초적이고 정당한 관심, 즉 자기인식과 더불어 계급인식을 얻는 데 대한 관심을 부패한 방식으로 왜곡하는 데 쓰인다. 따라서 파시즘 일반에 통용되는 것이 특히 영화 자본에 대해서 통용된다. 즉 새로운 사회적 상태에 대한 물리칠 수 없는 욕구가 은연중에 소수의 유산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착취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자본의 몰수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시급한 요구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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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제작소에서 기계장치는 현실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감으로써 기계장치라는 이물질이 제거된 순수한 현실의 모습은 어떤 특수한 처리 과정의 결과, 즉 특별히 설치한 카메라장치를 통해 촬영한 결과, 그리고 그렇게 촬영된 것을 그와 동일한 종류의 다른 촬영 장면과 함께 조립한 결과로서 생겨난다. 기계장치에서 벗어난 현실의 모습은 여기서 그 현실의 가장 인위적 모습이 되었고, 직접적 현실의 광경은 기술 나라의 푸른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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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은 예술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를 변화시켰다. 이를테면 피카소와 같은 회화에 대해서 가졌던 가장 낙후된 태도가 채플린과 같은 영화에 대해 갖는 가장 진보적 태도로 바뀐 것이다. 여기서 진보적 태도의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바라보고 체험하는 데 대한 즐거움이 전문적인 비평가의 태도와 직접적이고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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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사회적 기능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능은 사람과 기계장치 사이의 균형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우리가 기술적 발전이 얼마나 위험한 긴장관계들을 - 이 긴장관계들은 위기의 단계에서는 정신병적 성격을 띠는데 - 대중에게 몰고 왔는지를 고려한다면, 우리는 똑같은 기술화가 영화를 통해 그러한 대중적 정신이상에 대해 정신적 예방접종의 가능성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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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예술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아직 충족되기에는 때 이른 어떤 수요를 창출해내는 일이었다. 모든 예술형식의 역사를 살펴보면 위기의 시기가 있는데,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 이들 예술형식은 변화된 기술 수준, 다시 말해 새로운 예술형식을 통해서만 비로소 아무런 무리 없이 생겨날 수 있는 효과를 앞질러 억지로 획득하려고 한다. 따라서 위기의 시기, 특히 이른바 퇴폐기에 생겨나는 예술의 괴상하고 조야한 형식들은 실제로는 그 시기의 가장 풍부한 역사적 에너지의 중심부에서 나온다... 영화는 다다이즘이 아직도 도덕적 충격 속에 포장해서 감싸고 있던 육체적 충격을 그 포장으로부터 해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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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예술작품을 대하는 일체의 전통적 태도가 새로운 모습을 하고 다시 태어나는 모태(matrix)이다. 양은 질로 바뀌었다. 예술에 참여하는 대중의 수적 증가는 참여하는 방식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역사의 전환기에 인간의 지각기관에 부과된 과제는 단순히 시각, 다시 말해 관조를 통해서는 전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제는 촉각적 수용의 주도하에, 즉 습관을 통해 점차적으로 극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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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람들의 점진적인 무산계급화와 대중의 점전직인 형성은 동일한 사건의 양면이다... 제국주의 전쟁은 일종의 기술의 반란이다. 다시 말해 제국주의 전쟁에서 기술은 사회가 평소 자연적 재료를 통해 기술에 부여하지 못했던 권리들을 "인간재료"에서 거두어들이고 있다. 여기서 기술은 발전소 대신 인력을 군대의 형태로 나라 안에 투입한다. 기술은 항공운항 대신 폭탄을 운반하고, 아우라를 새로운 방식으로 없앨 수단을 가스전(戰)에서 발견하였다. 

파시즘은 "세상은 무너져도 예술은 살리라"고 말하면서 기술에 위해 변화된 지각의 예술적 만족을, 마리네티가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전쟁에서 기대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예술지상주의의 마지마 완성이다... 일찍이 호메로스의 시대에 올림푸스 신들의 구경거리였던 인류가 이제 그 스스로 구경의 대상이 되었다. 인류의 자기소외는 인류 스스로의 파괴를 최고의 미적 쾌락으로 체험하도록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이 파시즘의 행하는 정치의 심미화의 상황이다. 공산주의는 예술의 정치화로써 파시즘에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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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외

저자
발터 벤야민 지음
출판사
| 2014-02-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는 철학, 미...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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