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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9일 (일)

단테, 2015. 3. 29. 13:46

글 / 우환 속의 삶, 학습 그리고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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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연구자] 0. 대중문화의 개념과 이론적 연구 

  

   

문화 연구자

대중문화의 개념과 이론적 연구

문화 연구의 출현

1950년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처한 특수한 시대적 상황 아래 리처드 호가트(Richard Hoggart), E. P. 톰슨(E. P. Thompson),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를 중심으로 한 일군의 학자들에 의해 영국의 문화 연구가 태동한 이래 점차 전 세계적으로 문화 연구가 확대되면서, 많은 학자들(Sparks, 1996; Story, 1996; Grossberg, 1997)이 문화 연구의 정의를 규정하거나 혹은 문화 연구의 정체성을 규명하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문화 연구(Cultural Studies)라는 말이 영어에서 복수로 쓰이고 있는 데서 암시하듯이 문화 연구는 이론이나 연구 방법, 연구 지역 등에서 여러 갈래로 진행되고 있고, 문화 연구에서 문화 혹은 대중문화라는 말의 의미 자체가 고정되어 사용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문화 연구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데에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사실상, 문화에 관련된 비판적 담론으로서 문화 연구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화 산업론에서부터 해석학적 전통의 문화 연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문화 연구는 1950년대 영국의 버밍엄 대학에서 시작된 현대의 문화 연구 전통을 뜻한다. 그렇다고 해서 문화 연구를 영국의 문화 연구로 한정짓는 것은 아니다. 영국에서 발전되었기는 하지만 문화 연구는 현재 프랑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미국, 한국 등에서도 나라마다 개별적인 맥락에 따라 독자적인 연구 주제와 특징을 갖고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말하는 문화 연구는 영국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들에서 행하는 현대의 비판적 문화 담론(contemporary critical discourse)으로서 문화 연구를 지칭한다. 사실상 오늘날 문화 연구는 하나의 운동이면서 네트워크로 성장해 왔으며, 세계 각국의 여러 대학에서 문화 연구에 관한 학위를 수여하고 있으며, 저널을 발간하거나 정기적인 모임을 개최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문화 연구는 인종·성·계급·정체성과 같은 변화하는 역사적인 연구과제와 이슈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새로운 이론적 명제나 방법론을 만들어내기보다는 마르크스주의, 구조주의, 후기 구조주의, 정신 분석학, 민속지학 등의 지적인 자원과 문학 비평, 사회학, 역사학, 미디어 연구 등으로부터 연구 관심과 방법, 그리고 기본적인 아이디어들을 필요에 따라 채택해 왔다. 그리고 때로는 그들을 재구성해 사용하면서 문화 연구는 분과·전통·계보 면에서 연구 대상과 방법과 이론들을 다양하게 받아들여 왔고 항상 개방적인 자세를 취해 왔다. 이것은 문화 연구가 완료되거나 단일한 이론적인 입장으로 자신의 연구 전통을 구성하는 것을 거부하고 문화 연구의 역사 그 자체를 재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 연구의 정체성

문화 연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문화 연구가 학제적(interdisciplinary)이라는 것이다. 스튜어트 홀(Stuart Hall, 1980)이 지적하는 것처럼, 문화 연구에서 학제적이란 ‘새로운 문제와 새로운 모델, 그리고 새로운 연구 방법’을 추구하는 ‘지적 삶의 개척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통은 영국에서 문화 연구가 출범할 당시부터 기존의 학문 분과나 학과에 편입되어 제도화되기보다는 현대 사회와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 의식을 가지고, 앞서 지적했듯이 이론적 개방성을 강조해 왔다는 데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영국 문화 연구의 산파 역할을 했던 버밍엄(Birmingham)대학의 ‘현대문화연구소(The Center for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가 기존 학문 분과 간의 학제적 연구 형태로 출발하였고, 문화 연구가 이 연구소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사실상, 1980년대 후반 현대문화연구소는 영문학과에 병합되는 것을 거부하고 문화 연구의 학부 학위를 수여하는 문화 연구 학과가 되었다. 현대문화연구소에서 다루었던 주제는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등에서 형성된 제도화된 여러 조직들이 다양하게 변형된 형태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문화 연구가 무엇인가를 성급히 규정지으려는 시도는 변화하는 시기의 연구 문제들과 여러 지역의 연구 전통을 통괄해서 문화 연구를 자칫 한 가지 유일한 분과나 이론으로 제한하도록 독자들을 오도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문화 연구의 중심적인 특징이나 문화 연구가 수행되는 맥락과 가정들에 대한 정리를 통해 문화 연구의 정체성을 포괄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오코너(A. O’Connor, 1990)에 의하면, 문화 연구의 중심적인 연구 과제는 ① 대중문화(popular culture)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② 커뮤니케이션 연구는 정치적․경제적․문화적인 맥락에서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는 인정 ③ 비판적인 입장의 견지라고 지적한다.

비록 지나치게 함축적이면서 간략하긴 하지만, 문화 연구에 대한 오코너의 전체적인 통찰은 중요한 핵심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지적처럼, 문화 연구를 수행하는 학자들은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인종·성·세대와 계급 등으로 불평등하게 분열되어 있다는 비판적인 인식에 동의한다. 이것은 문화 연구가 기본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부연할 점은, 문화 연구는 계급을 축으로 하는 경제주의적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의존하기보다는 비환원론적 마르크스주의를 모색한다. 따라서 문화 연구의 전통에서는 문화가 특정한 역사와 함께 특정한 사회 구조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문화가 구조나 역사에 대한 반영으로서, 혹은 사회 구성체 안에서 토대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문화 연구는 다만 문화가 구조를 구성하고 역사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로부터 문화의 중요성을 도출한다(Story, 1996).

문화 연구와 대중문화

문화 연구가 다른 사회 비판적인 이론이나 연구 전통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문화를 자율적(autonomous)인 것으로 간주하거나 혹은 정치권력이나 경제 요인들에 의해 외부적으로 결정된 현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화 자체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분열과 투쟁이 일어나는 주요한 현장으로 지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에서 대중문화(popular culture)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사실상, 대중문화에 대한 정의 역시 연구 영역에 따라 다양하게 내려진다. 대중문화는 대량 문화(mass culture)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폭넓게 좋아하는 문화로서, 혹은 고급 문화 이외의 문화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문화 연구 전통에서 대중문화는 무엇보다 의미에 대한 연속적인 투쟁이 발생하는 갈등과 논쟁의 지형으로 간주되며, 이러한 문화의 장을 통해 사회관계(social relation)의 생산과 재생산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회관계는 계급 관계다. 그 밖에 남성과 여성의 분할, 인종의 사회적인 구조화(차별 구조) 역시 사회관계가 발생하는 대표적인 예다.

문화 연구의 시야에서 매스 미디어와 대중문화를 분석하는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첫째, 사회는 사회 권력에 다른 접근을 갖는 지배 집단들과 종속 집단들로 나누어지며 둘째, 지배 집단들은 정치․경제 영역뿐만 아니라 문화 영역에서도 그들 집단의 권력을 행사하며 셋째, 문화적인 의미(cultural meanings)들은 사회 구조, 결과적으로는 권력 관계에 연결되어 있고, 그러한 의미들은 사회 구조와 권력 관계의 역사가 명백해질 때에만 이해될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한다. 또한 주로 1970년대 이래 수행되어 온 민속지학적 수용자 연구 경향과 연구 결과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대중문화 연구자들은 매스 미디어의 제도적 생산의 결과인 미디어 내용물(혹은 텍스트)과 그것의 사용자(혹은 수용자)들이 창조하는 문화적 의미의 관계는 비교적 독립적이며, 이러한 독립은 반대 정치(oppositional politics)를 위한 하나의 기초로서 활동할 수 있다고 본다(Lembo, R. & K. Tucker, 1990).

그로스버그(L. Grossberg) 역시 문화의 장은, 문화 연구로서는 이념적인 투쟁의 주요한 현장이며, 합병과 저항이 일어나는 지역이며, 헤게모니가 획득되거나 상실되는 현장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문화 연구는 문화 자체를 권력을 둘러싼 생산과 투쟁의 지점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권력은 필연적으로 지배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구성원의 특정 분파들을 위하는 불평등한 힘의 관계로 이해된다(Grossberg, 1995).

이러한 문화 연구의 관점은 문화는 권력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개인이나 시회 집단들 속에 불평등이 창출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보는 것이다. 즉, 문화의 장에서 의미(meanings)와 의미의 생산은 사회 구조와 분리될 수 없게 연결되어 있으며, 의미의 생산·재생산과 사회 구조 내에서 나타나는 지배(dominance)의 관계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영국의 대표적인 문화 연구 이론가인 홀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가정을 문화 연구에 첨가함으로써 문화 연구의 연구 영역을 확대시켰다.

첫째, 일련의 사회적 관계들은 그것들을 떠받치고, 제자리에 유지시켜 주는 의미와 기초 구조들을 분명히 필요로 한다. 둘째, 자본주의 사회들은 분열된 사회이다. 계급, 인종, 국가, 나이, 종교, 직업, 교육, 정치적 충성 등의 차원에서 분열되어 있다. 따라서 사회는 하나의 유기적 전체가 아니라 각기 다른 이익을 가지고 지배 계급들과 권력 관계를 갖는다는 측면에서 서로 연결되는 집단들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그물망이다.

따라서 문화는 의미의 투쟁 장소가 되고, 다른 실천들의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문화 자체가 실천이 되며, 독자적 산물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 간주된다(Hall, 1980). 이에 따라 주로 영국의 초기 문화 연구 전통에서는 문화적 실천이라는 텍스트에 나타난 의미를 분석하기 위해 이데올로기 분석을 주요한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문화적 실천이란 물질적 생산 수단을 사용하여 특정한 의미와 가치를 생산해 내는 사회적 실천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가부장제의 내용이 담긴 남성 중심적 드라마라든지 혹은 동성애자들이나 여성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내용이 담긴 드라마들의 제작과 방영, 그리고 이러한 드라마들이 수용자들에게 텍스트로서 읽히는 소비 행위는 특정한 의미와 가치를 생산해 낸다는 점에서 문화적 실천에 속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문화가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다는 의미에서 이데올로기 분석은 의의를 갖게 되고, 문화 분석으로서 의미 분석은 중요한 작업으로 간주된다.

문화와 권력

문화 연구의 전통 속에서 ‘문화’ 개념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기 쉬운 고급 예술 작품과 같이 미학적으로 정의된다기보다는 정치적으로 정의되며 이데올로기적이다. 젠크스(Jenks, 1993)는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문화’ 개념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① 인식 범주의 문화: 정신의 일반적 상태로 이해된다. ② 보다 구체적이고 집합적인 개념의 문화:사회의 지적·도덕적 발달 상태를 의미한다. ③ 기술적, 구체적 범주의 문화: 한 사회의 예술 및 지적 작업의 총체로 간주된다. ④ 사회적 범주의 문화: 한 종족의 전체 생활 방식으로 간주된다.

또한 원용진(1996)의 경우 문화를 ① 마음을 가꾸는 것 ② 사회의 발전 과정을 의미하는 것 ③ 특정 집단에 의해서 공유되는 의미 가치와 삶의 방식으로 나누고, 마지막으로 ④ 문화란 “의미를 만들어 내는 의미화의 실천”이라는 점을 추가하면서 현대 문화 연구에서는 ③항과 ④항의 정의에 치중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문화 연구에서 연구의 대상은 협의의 의미로 정의된, 고급 예술과 같이 미학적으로 탁월한 대상으로서 문화이거나 또는 미학적·지적·정신적인 발전 과정으로서 문화라기보다는 특정한 삶의 방식이나 특정한 문화에 내재되거나 표출된 의미와 가치들이 되는 문화다. 또한 문화가 의미와 가치들에 대한 갈등과 타협의 현장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문화 연구는 문화적 실천들로서 텍스트와 담론들(특히 성·인종·세대·계층·지역 등에 관련된)이 인간의 일상적인 삶과 사회 구성체 안에서 어떻게 생산되고 작동하는지, 또한 일상적인 삶과 사회 구성체 안에 어떻게 삽입되고 있는지를 기술(description)함과 동시에 그러한 기술을 통해 발견된 문제들을 중재하고 조정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일들이 현존하는 권력 구조를 재생산하거나 변형시키고, 때로는 기존 권력 구조에 투쟁하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 홀이 지적하는 것처럼, 이데올로기적 연쇄의 의미 작용이 일어나는 의미의 장에서 이데올로기적 투쟁이 일어날 수 있다. 사람들이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의미의 연쇄를 완전히 새로운 대안적 용어들로 대체하거나 거부하려 할 때, 혹은 사람들이 이데올로기의 장을 중단시키고 그것이 연상시키는 것을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의미를 변화시키려 할 때에도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의미의 연쇄는 투쟁의 장소가 된다. 예를 들어, 흑인이란 용어는 미개하고 무능함을 함축한다는 이유 때문에 이 의미는 변형될 수 있고, 긍정적인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부여하는 의미를 갖기 위한 투쟁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Hall, 1985).

따라서 문화 연구는 무엇보다 문화적 텍스트나 문화적 실천의 의미들을 이해하려고 하며, 그러한 이해는 문화적 텍스트나 문화적 실천의 생산과 소비가 일어나는 사회적이며 역사적인 조건의 분석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본다. 이것은 다름 아닌 문화적 실천이 행해지는 맥락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라고 할 수 있다. 그로스버그는 문화 연구의 특징은 문화적 실천이 급진적으로 맥락주의적이며, 따라서 문화 연구는 맥락성의 분과로 명명될 수 있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맥락은 특정 시점의 이웃 관계, 또는 도시 지역처럼 좁을 수도 있고, 냉전 후의 전 지구적 자본주의처럼 넓을 수도 있다. 이 맥락은 사전에 경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종, 성별, 계급, 종족, 세대 등과 같이 권력이 구조화되는 차원에서 제기되는 정치적 질문에 의해 정의된다. 따라서 문화 연구에서 모든 것은 맥락적이다. …. 문화와 사회의 관계 자체가 맥락적으로 특정한 것이며 권력의 산물이고, 특정한 맥락들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따라서 문화 연구는 맥락이 권력 구조로 이해되는 곳에서 맥락을 다시 만들 가능성에 관심을 갖고 맥락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깨어지고 다시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이론이며, 바로 이것이 문화 연구가 개입하고자 하는 것이다.

Grossberg, 1995, 마동훈 외 역, 186쪽

요약해 본다면, 문화 연구는 학제적인 특징을 갖고 있으며, 문화 특히 대중문화(popular culture)는 무엇보다 의미에 대한 연속적인 투쟁이 발생하는 갈등과 논쟁의 지형으로 간주되며, 이러한 문화의 장을 통해 사회관계(social relation)의 생산과 재생산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또한 문화 연구는 차별과 소외를 창출하는 사회적·문화적 세력이 위치하고 있는 맥락에 관심을 갖고 있고, 의미화 실천(signifying practice)을 통해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유지시키는 사회적·정치적·이념적 맥락을 변화시키기 위해 실천하는 지적(intellectual)이며 정치적인 연구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 연구의 형성 과정

영국 문화 연구는 소위 문화주의로 불리는 연구 전통에서 시작했다. 특히 문화주의 학맥의 주류를 이루는 학자들을 꼽는다면 호가트, 톰슨, 윌리엄스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문화에 대한 입장은 다르지만 선행 연구로서 호가트, 윌리엄스, 톰슨에게 영향을 미친 매튜 아널드(Mattew Arnold)와 리비스(F. R. Leavis)의 문화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호가트, 톰슨, 윌리엄스는 문화에 대한 개념과 입장들을 아널드와 그에게 영향 받은 리비스를 이어 연속적으로 정립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윌리엄스는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헤게모니 개념을 확장시켜 헤게모니가 전반적인 사회적 과정으로서 문화 개념을 담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즉, 헤게모니란 언제나 하나의 전체적인 과정으로서, 포괄적이고 사회적·문화적인 형성물로서 이것이 실제로 효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 범위가 실제 사람들이 체험하는 모든 영역 전체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헤게모니 개념을 통하여 윌리엄스는 삶의 전체 방식이 되는 문화를 설명하려 했다.

이상과 같이 문화주의로 명명되는 초기 영국 문화 연구의 특징은 경험이 중시되고 창조적·역사적 행위가 강조되는 인간주의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문화주의는 구조보다는 인간에, 지배 계급보다는 피지배 계급의 전략에, 이데올로기보다는 인간의 경험에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화주의는 특정 집단이나 계급, 혹은 전체 사회가 지닌 경험이나 가치 등을 재구성하려고 했다.

영국에서 인간의 경험과 역사적 행위를 강조하는 문화주의가 정착되는 동안 프랑스에서는 루이 알튀세르(L. Althusser) 같은 구조주의자에 의해 마르크스주의와 구조주의가 결합하여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가 정착하게 된다. 이것은 전반적으로 문화 연구의 형성에 특별한 공헌을 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 사실상,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회 권력에 대한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자들의 이론이 문화적 경험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에 중요한 공헌을 한다. 특히 알튀세르와 바르트(R. Barthes), 푸코(M. Foucault)와 같은 이론가들이 발전시킨 문화적 대상에 대한 언어학적 구조주의는 문화 연구의 영역을 문화와 구조를 결합시키는 전기를 만들게 한다.

무엇보다 문화 연구에서 이데올로기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1970년대 알튀세르부터인데 그가 이론화한 이데올로기는 문화 연구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쳤다. 마르크스적 구조주의자인 알튀세르는 인간이 역사의 주체나 역사 발전의 주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기존의 인간주의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항하여 인간의 행위가 얼마나 구조적으로 제한되어 있는지 설명하고자 했다. 그는 인간이 주체가 되고, 인간의 경험과 실천이 소중하다고 믿는 경험주의와 역사주의를 배격했으며, 사회를 형성하는 구조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주목했다(Clarke, S. et al., 1980).

이와 같은 맥락에서 구조주의 혹은 후기 구조주의는 문학 작품이나 문화 혹은 대중매체 텍스트 분석의 이론과 연구 방법으로 응용되었다. 동시에, 특히 1970년대 이래 소위 문화 연구 전통의 대중문화 텍스트의 이데올로기 분석에 응용되면서 문화 연구자나 대중매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와 야콥슨(Roman Jakobson)의 구조 언어학을 기반으로 레비스트로스(ClaudeLevi-Strauss)나 바르트 등에 의해 문화 분석과 비평의 다양한 형식으로 이론화한 구조 언어학은 대중문화 비평 방법론의 지적 자원으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사실상, 소쉬르의 언어학 이론을 기반으로 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관계되는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사상 운동으로 자리매김한 구조주의와, 소쉬르의 언어학 이론과 구조주의의 가정을 공유하면서 문화와 같은 기호 체계를 연구한 기호학이 동전의 양면과 같이 맞물려 발전함으로써 기호학적 전통의 문화 분석 및 비평 방법은 보다 뚜렷한 하나의 이론적·방법론적 연구 전통으로서 자리매김되고 있다.

이와 같은 지적 자산을 바탕으로, 홀이 1969년 호가트에 이어 현대문화연구소의 제2대 소장에 취임하면서 문화 연구는 중요한 이론적 발전을 이룩한다. 정치적인 입장에서 볼 때 홀은 마르크스주의자였지만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현실 문제의 파악과 실천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마르크스의 재해석이나 재구성을 통해 비환원론적 마르크스주의를 모색한다. 무엇보다 홀의 공헌은 현대 문화와 이데올로기에 관한 이론의 정립이다. 문화 연구가 확대되면서 홀은 알튀세르처럼 자본주의 사회가 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심급들이 접합된 “복합적이면서도 통일을 이룬 구조”라고 보았지만, 문화·언어·이데올로기를 단순히 생산 관계의 사회적 관계를 재생산하는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럴 경우, 이데올로기적 지배 체제는 너무나 완벽해져 투쟁과 변화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홀은 구조주의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도 초기 문화 연구 전통의 본질적인 측면인 문화에 대한 투쟁, 변화, 과정의 이해는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받아들여 문화 연구의 역사적·구체적·국면적인 분석을 강조하게 된다. 즉,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은 지배 현상을 고정된 상태로 보지 않고 특정한 투쟁 현장의 일시적인 정복 상태로 보았기 때문에 지배성과 저항의 가능성을 동시에 남겨 놓았는데, 홀은 그람시의 이러한 입장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홀은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과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그러나 홀의 연구들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났던 이데올로기, 재현, 의미 작용에 강조점을 두는 영국의 문화 연구 경향은 1980년대에 들어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으면서 다양하게 발전하기 시작한다. 본(Born, 1987)은 문화 연구에 포스트모던 관점이 접목된 새로운 연구 경향을 포스트모던 문화 연구라고 칭하면서 포스트모던 문화 연구는 대중문화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시작되고 있으며, 그 특징으로는 대중문화에 대해 상당히 낙관적이며 대중이 행하는 즐거움과 욕망의 소비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고 지적한다. 특히 포스트모던 문화 연구는 폐쇄되고, 단일한 목소리로 전하며, 미학적으로는 무기력한 것으로 간주하는 상업적 문화 상품에 대한 견해를 개방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포스트모던 관점은 후기 구조주의의 영향으로 저자의 사라짐, 비결정된 해독, 파편화된 능동적인 주체, 다의적인 문화 상품 개념을 받아들인다고 본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문화 연구가 결합된 포스트모던 문화 연구로서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데올로기의 작동에 반대되는 세력으로 즐거움의 개념이 발전한다. 아울러 의미에 대해 감각을 우선시하는 포스트모던 이론이 등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데올로기는 1970년대식의 막강한 결정적인 세력의 위상에서 후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데올로기적 지배에 대한 저항에 관한 연구는 1980년대 후반에 활발히 이루어짐으로써 사회적 결정의 실패, 주체 호명의 실패, 선호 해독의 실패를 입증하고 있다.

문화 연구의 연구 전통에서는 수용자의 능동적 해독 문제를 다루며, 텍스트보다 수용자의 위치를 더 중요시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문화 연구는 능동적인 수용자의 해석적 역할과 의미 생산의 요소로서 맥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텍스트의 의미는 구조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의 능동적 해독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으로 정의된다. 문화 연구는 수용자의 실천적 해독과 사회관계를 분석하면서 수용자는 텍스트보다 강력한 능력을 갖고 있고 저항적 즐거움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능동적이며, 텍스트의 의미는 열려 있다. 이에 따라 수용자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적 위치는 사회적 관계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이와 함께, 이제 새로운 문화 연구의 연구 조류는 문화 연구 내 프로그램이 그동안 공식화했던 추상적인 행렬로서 계급, 인종, 성에 관한 강조 대신에 이들의 더욱 특정한 접합에 주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예를 들어, 유색인종이면서 하위 계급에 속한 여성의 삶의 문화), 지금까지 주변화된 다른 집단들(예를 들어, 게이·레즈비언·양성애자들과 여러 인종의 하위 문화들)의 주체성에 대한 문화적 구성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국 문화 연구 역시 후기 구조주의자와 포스트모던 담론에 의해 제공된 패러다임을 문화 연구의 폭넓은 틀 속에 수용하는 추세에 있다.

이 책은 이와 같은 문화 연구의 형성 과정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10인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문화 연구에 미친 이론적 공헌과 업적 그리고 비판점들을 정리했다.

참고문헌

  • 김연종 옮김(1996). 『문화 연구 입문』 . 서울: 한나래.
  • Born, G.(1987). Modern Music Culture: on Shock. Pop and Synthesis. New Formations 1. 5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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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ll, S.(1980). Cultural Studies and the Centre: Some Problematics and Problems. in Hall, S. et al.(eds.). Culture, Media, Language. London: Hutchinson.
  • Jenks, C.(1993). Culture. New York: Routledge. 김윤용 옮김(1996). 『문화란 무엇인가』 . 서울: 현대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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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ory, J.(1993). An Introductory Guide to Cultural Theory and Popular Culture. Georgia: University of Georgia Press. 박모 옮김(1994). 『문화 연구와 문화 이론』 . 서울: 현실문화 연구.

    [네이버 지식백과] 대중문화의 개념과 이론적 연구 (문화 연구자, 2013.02.25.,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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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하는 말,   

      

이른바 '학생'이라는 타이틀은 평생 지녀도 좋을만한 매력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평생학습"을 운운할만큼 대단한 지력도 노력도 끈기도 갖추지 못한 현실에서는 그저 공염불에 불과할 수 있다. 또 더구나 그 '학생'이라는 타이틀이 갖는 일련의 <책임> 문제를 놓고 볼 때에, 결국 일정한 나이가 되면 스스로가 원하든 원치 않든간에 이미 '학생'은 아닌 게 된다. 한때 이를 놓고 거창히 '삶'이라는 표현은 가급적 기피해온 적 있었지... 그만큼 덜 배웠고 모자라고 또 더 배움을 필요로 한단 뜻이지만, 실제로 나이가 그 <책임>을 물을 때는 더 이상 이미 '학생'이 아닌 하나의 '성인'인 게 된다. 

 

강제되는 <책임>은 결국 매사에 무조건 아는 척을 하게 만들며, 심지어 하나도 제대로 모르면서 많은 중대한 의사결정을 해야만 하는 처지들도 더러 있다. (가장 대표적인 건 국민투표 같은 것이랄까?) - 이쯤이 되면 강제로라도 학습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역시 본의가 아니더라도 말이지... 

  

대표적인 게 일상적 삶에서 가장 두드러진 여러 '우환'들이 있겠다. 결혼도 취업도, 또 그 이후부터는 육아와 교육 또 자산관리나 노후 문제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인생에서 학교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지혜, 처세술이란 이 얼마나 많은 것이더냐... 게다가 그 모든 행동들에 대한 책임 역시 고스란히 내 몫이니, 가끔은 억울해할만한 일들도 생기게 마련인 법. 그래서, 늙어 죽을 때까지 공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평생학습"? 그건 단지 경제적 삶의 여유가 어느 정도 허락한 다음에 마치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듯 그렇게 쉽게 떠들만한 표현이 아니고, 오히려 가장 팍팍한 삶의 현실 속에서 학교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하지만 훨씬 더 일상적 삶에서 긴요할 법한 여러 학문 내지 기술들을 배워야 한다는 뜻. 

 

고로 '평생학습'은 권리이긴커녕 일종의 한 의무이자 필수다.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간에... 

- 개인적으로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아카데미 같은 곳보다 직장 또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커리큘럼 또는 동아리 활동 등등에 훨씬 더 관심이 많은 까닭 역시 이러한 맥락이기도 하여, 

  

개인의 '학습' 차원과는 또 별개로 집단의 '세미나' 성격에 대한 관심 역시 크다. 특히 이는 최근에 주로 관심을 갖는 "지식경영" 측면에서도 매우 강조될 법한 장치 내지 제도인데, 개별적 고독보다 상호간의 유대 및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물론 '세미나' 만능론자가 단 한번 성공적인 세미나 경험과 실적을 쌓지 못한다면 그만한 비극 또한 없으리라... "눈 먼 돈" 같은 경우? 

  

바람직한 세미나 풍토를 조성하고 진정 쓸모있는 커리큘럼을 동반해낸다면, 여전히 이는 가장 유력한 대안이자 기회로도 자리매김할 공산이 크다. /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영역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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