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화요일... 처음처럼
- 오늘의 편지,
[한기호의 다독다독] 테크놀로지 실업과 인간의 존엄성
요즘 학부모들은 자식 걱정이 태산인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목표가 뚜렷했습니다. 일류 대학에 입학만 하면 그래도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고 보았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일류대에 입학한 사람들이 더 고민한다고 합니다. 해외 유명 대학 졸업이라는 스펙으로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세상이니까요.
지금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세상은 엄청난 규모와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 100년에 걸쳐 일어났던 변화가 단 1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래학자 최윤식은 김건주와 함께 쓴 <2030 기회의 대이동>(김영사)에서 "변화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변화를 바라보는 제대로 된 시선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는 1학년 학생이 4학년이 되었을 때 1학년 때 배운 것의 대부분은 낡은 지식이 되어"버리는 세상, "현장 근로자들은 2~3년 단위로 새로운 기술 지식을 배우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 "10년 후 현재 지식 근로자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은 인공지능 컴퓨터가 해결해줄" 세상에서 제대로 된 '시선'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그동안 잘나가던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은 큰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10년 후에는 현재의 직업 80%가 소멸하거나 다른 형태로 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결혼 적령기 여성의 상대가 교수라는 것을 알고 온 가족이 결혼을 반대했다는 얘기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닙니다. 전문화 시대에서 융합 시대로 바뀐 마당에 한 '구멍'만 파는 대학교수가 인기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더구나 대학에는 겸임, 연구, 특임, 강의 등의 형용어가 붙은 임시직의 '워킹푸어'마저 넘치니 전문성이라는 것을 찾아보기도 어려운 형편입니다.
변화를 만드는 거대한 힘은 무엇일까요? 바로 기술 혁명입니다. 기술 혁명이 불러온 변화는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것이지요. 그야말로 '테크놀로지 실업'의 시대입니다. 타일러 코웬은 <averageIs Over>에서 기계의 지능이 인간의 일과 소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책의 일본어판(<대격차>) 서문에서 중산층이 사라지는 이유가 '오토메이션(자동화)'이라고 말합니다. 코웬이 말하는 오토메이션은 로봇 기술만이 아니라 고성능의 소프트웨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등의 테크놀로지를 모두 포함합니다.
코웬은 "지금까지 중산층이 주로 일했던 직업은 피가 흐르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나 소프트웨어가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공장노동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로봇이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노인을 보살피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병을 진단하는 소프트웨어, 짐을 문 앞까지 배달하는 무인 항공기 등이 곧 등장할 것입니다.
미래를 주도하는 신부유층은 누구일까요? 코웬은 "기계와 함께 일할 수 있고, 기계를 발명할 수 있고, 기계에 관한 지적 재산을 소유하고, 기계의 산물을 세계의 소비자들에게 배달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부유해질 것"이지만 저임금의 서비스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젊은 남성들은 만족스러운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미래가 부정적이기만 할까요? 코웬은 "테크놀로지가 진화해서 많은 분야에서 인간의 노동이 필요없어진다면 우리들이 창조성과 시간을 보다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면도 있다. 억압적인 상사에게 착취당하며 일할 필요가 없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그 변화의 덕을 볼 수 있을까? 앞으로 다가오는 것은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일까, 아니면 빈곤에 허덕이는 시대일까? 어쩌면 그 양면 모두가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특이점이 온다>(김영사)의 저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컴퓨터가 인류를 초월하는 일이 2045년에 온다고 예측한 바 있습니다. 미국 국방부와 유럽연합(EU)이 인공지능 개발에 거액을 투입하고 있으니 '2045년 문제'는 더 빨리 실현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2045년은 영국의 투자은행인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가 세계 최고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평균 연령이 50세가 되어 세계 최고령 국가로 등극할 것이라고 예측한 해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로봇과 차별화되는 인간의 능력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본원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문학, 역사, 철학, 인류학, 고고학 등 인문학입니다. 이런 학문을 기술과 결합해 사유할 수 있어야 하니 과학도 절대 필요합니다. 지금은 인간의 뇌(머리)만 움직이면 되는 이성의 시대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감성의 시대입니다. 그러니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도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지금 당장은 기계와 차별화되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철학적 담론에 대한 천착부터 필요한 것 같습니다. 페터 비에리는 <삶의 격>(은행나무)에서 인간이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그가 말하는 한 인간의 존엄성이란 "주체로서의 자립성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런 능력을 제대로 찾아내려면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남을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가?"의 세 가지 물음에 대한 답변부터 찾아내야 합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 미디어다음, http://media.daum.net/editorial/newsview?newsid=20141110211708078
- 편집하는 말,
그래... 디스토피아라고 해서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니까,
어떻게든 그 '희망'을 '현실'로 치환시켜내는 일은 스스로의 몫일 뿐이므로,
첫 출발점에서의 생각 그대로 앞으로의 나날들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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