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월요일... 알 수 없는 미래
- 오늘의 편지,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사랑의 발명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문에 대한 현답을 얻기 위해, 다시 알랭 바디우의 <사랑예찬>을 읽어본다. 그는 나에게 "진정한 사랑이란 공간과 세계와 시간이 사랑에 부과하는 장애물들을 지속적으로, 간혹은 매몰차게 극복해나가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해준다. 그렇다. 사랑이란 공간, 시간, 세계가 부과하는 장애물들을 극복해나가는 것, 바로 그것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종말의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최종적이며 근원적인 해결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새 작품 <인터스텔라>는 지구의 종말 부근에서 시작된다. 아니 고쳐 말하자. 지구의 종말이 아니라 인류의 종말이다. 언제인지 명시되지 않은 미래, 인류는 고난에 처해 있다. 식량이 고갈되어가는 중이며 무시로 덮치는 먼지 태풍은 인류의 호흡과 식량 자원 모두를 위협한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종말의 도래,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흥미롭게도 크리스토퍼 놀란은 인류의 종말 시점, 다른 종의 형편은 어떤지 정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심지어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인류'라고 부르는 영장류의 지속 가능성이며 이 문제의 심각성은 한 가족을 중심으로 구체화된다. 여기서 <인터스텔라>는 지구의 종말과 재앙 속 인류의 위기를 그려냈던 다른 종말 서사와 구분된다.
종말이 서사문학의 주요 소재가 된 지는 이미 꽤 시간이 흘렀다. 코맥 매카시의 <로드>나 맥스 브룩스의 <세계 대전 Z>, 영화 <컨테이전>, <멜랑콜리아>, <테이크 셸터> 등과 같은 작품들만 보더라도 최근 얼마나 많은 재앙, 종말 서사들이 등장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재앙 서사에서 재앙의 원인은 불분명하다. 다만, 재앙과 함께 종말을 맞게 될 인류의 그 마지막에 대한 응시가 재앙의 심각성과 위력을 증명할 뿐이다.
<인터스텔라>에서 재앙과 종말의 징후는 결말이 아니라 전제이다. <인터스텔라>는 말하자면 우주여행의 여정을 담은 스페이스 오딧세이이다. 그런데, <인터스텔라>는 여정을 떠나기 전 그 필연성을 마련하는 과정에, 즉 지상의 삶에 영화 상영 시간의 3분의 1을 할애한다. 마치 체홉이 "총이 등장했으면 꼭 발사되어야 한다"라고 믿듯이 크리스토퍼 놀란은 주인공이 지구를 떠나야 한다면 거기엔 반드시 필연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영화의 또 다른 키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을 딸의 이름이 "머피(Murph)"인 것도 이쯤 되면 매우 전략적인 호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머피의 법칙으로 놀림받는 이름을 지어주었다며 투덜대자, 아버지는 설명해준다. "머피의 법칙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재수 없는 일들의 연속적 발생을 말하는 게 아니야. 일어나야 할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 만다는 뜻이지." 그렇다면, 주인공 쿠퍼(매튜 매커너히)에게 그 필연적 전제,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말하자면 최초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브랜든 박사는 쿠퍼에게 "아마도 지구에서 마지막으로 생존할 수 있는 세대는 자네의 자식 세대 정도일 거네, 그도 분명치 않지만"이라고 말해준다. 쿠퍼는 이 말을 듣고 망설이던 우주 개척 여행을 결심한다. 곁에 "머물러줘(Stay)"라고 딸이 애원하지만 그는 더 긴 머묾을 위해 자식들 곁을 떠난다.
쿠퍼가 지구를 떠났던 최초의 동기가 사랑이었음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기적적 입체의 재현으로 마감된다. 마지막에 이르러, 그의 선택 하나하나가 반드시 일어나야 할 일들의 연속적 발생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론상으로는 증명할 수 없지만 그 추동력은 바로 사랑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기적의 원동력은 바로 사랑이었던 것이다.
놀란 감독의 신작 '인터스텔라'
우주만큼 미스터리한 사랑
이기적의 원동력임을 일깨워
어쩌면 사랑은 블랙홀이나 상대성 이론, 웜홀과 같은 과학의 정반대편에 놓인 것일지도 모른다. 블랙홀이나 웜홀, 시간의 상대성은 이론상으로는 정합하지만 경험할 수는 없다. 반대로, 사랑은 누구나 체험 가능하지만 보편적 이론으로 규명할 수는 없다. 사랑은 아직 채 밝혀지지 않은 인간의 정신이 지닌 놀라움 중 하나이다.
긴 상영 시간 동안 관객의 감각을 사로잡는 것은 물론 과학이다. 조너선 놀란 감독이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무려 4년이나 수학하며 써냈다는 시나리오는 천체물리학자들의 동의를 이끌어낼 만큼 정합하다. 웜홀을 통한 우주여행이나 이미지로 체험되는 시간의 상대성 이론은 영화가 보여주는 스펙터클의 정수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알게 해준다.
하지만 영화관을 나오고 나서까지 머릿속에 남는 것은 과학의 언어로 거의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의 영역이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서 언제든 유령이 될 수 있어"라는 쿠퍼의 말이 지닌 초월적 힘 말이다. 이쯤 돼서 알랭 바디우의 말을 다시 살펴보면, 영화 <인터스텔라> 가운데 행해진 사랑의 기적은 "공간과 세계와 시간의 장애물을 극복하는 것"이라는 사유의 구체적 장면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거꾸로 말해, 공간과 세계와 시간의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사랑인 셈이다.
사랑이란 아직 우주만큼이나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사랑을 상투적 결말이라 폄하한다면 어쩌면 사랑의 위대함을 고민해보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랭보의 말처럼 사랑이란 삶을 재발명하려는 노력이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매일매일의 삶을 재발명하려는 사랑의 노력을 통해 새로워질 수 있다. 쿠퍼가 지구에서 불가능한 삶을 재발명하기 위해 다른 행성을 찾듯, 그렇게 사랑은 삶을 재발명하는 주요한 과정이자 목적이다.
사랑의 적은 경쟁자가 아니라 이기주의라고 한다. 결국, 사랑이란 지속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일 것이다. 순전히 우연한 특이성(singularity)을 보편적 가치의 요소로 끌어올려 주는 것, 우리가 살면서 웜홀을 여행하거나 블랙홀에 빠져들 수는 없지만 사랑을 통해 고독한 특이성에서 도약할 수는 있을 것이다. 사랑의 경험은 우리에게 일종의 도약을 허락해준다. 사랑이라는 우주, 우리는 아직 더 많이 경험하고, 탐구해야 할 것이다.
<강유정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 미디어다음, http://media.daum.net/editorial/column/newsview?newsid=20141109212606759
- 편집하는 말,
주말의 여행을 마치고 복귀한 사무실은 연신 회의 투성이요... 여전히 표류하기만 하는 내 입지의 형편인 데다, 정작 제 할 일들은 하나도 제 진도를 못뽑고 있는 중이니 말 그대로 악전고투의 연속일 뿐이니까.
최근 화제가 된 영화 한편에 관한 칼럼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알 수 없는 세상에서 무언가를 찾게 된다면 그게 바로 가장 소중하고도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하는 믿음, 과연 이 믿음은 타당한 것일까? 하는 생각인데,
어쩌면 '믿을백'을 찾는 그 수고에 비해 오히려 "미래를 예측하는 힘"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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