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인간은 기억의 동물이다"
- 오늘의 편지,
[전호림칼럼] 사라져가는 것의 애틋함
쌀이 모자라 도시락에 의무적으로 보리쌀을 섞어 와야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땐 정부가 강제로 '분식의 날'을 지정하기도 했다. 윤기 자르르 흐르는 이밥에 생선을 발라 먹는 밥상을 최고로 치던 시절이다.
어느 때부턴가 그 귀한 쌀이 남아돌아 처치 곤란이 됐다. 그에 비례해 밥상은 화려하게 변했다. 5000만 국민 대부분이 어떤 형태든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 그중 절대다수가 일터 근처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는다. 그렇게 마주하는 밥상은 옛날 임금님 수라상 못지않다. 그런데 왜 '집 밥' 타령이 나올까. 직장인은 물론이고 군대 간 아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자식들까지도 "집 밥이 먹고 싶다"고 토로한다. 그런 저런 수요를 반영해서 집 밥을 표방한 음식점도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다.
왜 집 밥일까? 그건 아마도 개성 없는 기성복 홍수 속에서 내 몸에 맞춤한 옷을 입어보고 싶은 욕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자동 생산라인에서 쏟아져 나오는 편의점도시락,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균일화된 맛, 정성과 손맛이 배제된 길거리 식당들. 말하자면 디지털식 상차림에 식상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디지털은 아웃풋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극단적으로 단축되고 생략돼 있다. 진지함도 결여돼 있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 자체가 그런 따분하고 무미건조한 방식의 연속이다.
그에 비해 어머니 밥상은 아날로그적이다. 집안에 따라 메뉴야 다르겠지만 어릴 적부터 요것조것 해 먹인 어머니의 손맛에 혀가 길들여져 있어서 기억이 훨씬 선명하고 시각적이다. 말하자면 어머니의 상차림은 맞춤식인 셈이다. 거기에 살가운 정은 덤으로 들어 있다. 그런 손맛, 정성이 깃든 맛에 대한 미련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공통으로 느끼는 애틋함이나 그리움 같은 감정이다.
사라져가는 것은 어머니 손맛이 담긴 집 밥뿐 아니다. '어머니상(像)'도 사라져가고 있다. 도시락을 싸서 골목길까지 따라 나와선 출근길 남편의 옷깃을 펴주고 괜히 등이랑 어깨를 토닥토닥 털어내며 하는 말들. "여보, 오늘은 술 잡숫지 말고 일찍 들어오세요" "차 조심하시고요." 자식도 아닌 남편을, 애정과 걱정이 넘치도록 담아 바래기 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이제 찾을 수가 없다. 그걸 그리워한다는 것은 어릴 적부터 보아온 그 달짝지근한 애정의 몸짓, 사랑이 담긴 목소리의 세례를 나도 한번 받아보고 싶다는 투정에 다름 아닐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아버지처럼 참한 색시 얻어서 저런 대접을 한번 받아봐야지 하는 바람이 무의식 속에 녹아들어 함께 성장해온 것이다.
그런 욕망은 이제 가당찮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어머니를 만들어낸 대가족이 사라지고 그만큼 살가운 여성이 없다. 그건 대가족의 왁자한 속으로 날아들어와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여름을 함께 나던 제비가 더 이상 오지 않는 것처럼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다.
어머니의 한결같은 바가지 "어이구, 대체 의리가 밥 먹여 준답디까?" 하는 소리도 이젠 못 듣는다. 역으로 말하면 먹을 것 입을 것 없는 시절에도 그만큼 의리가 두터웠고 사람 사는 정이 돈독했다는 반증이다. 그건 또 오늘의 우리 사회가 그만큼 얍삽해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도 사라질 것은 사라져야 한다는 반론이 나온다. 그래야 새것이 온다는 것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사라지면서 네안데르탈인이 등장하고, 그들 또한 크로마뇽인에 밀려 사라져갔다. 그러면서 지력이 깨고 문명이 발달했다. 요컨대 사라져야 할 것이 사라져야 새것, 더 나은 것이 온다는 얘기다.
그래서 필자도 이제 이 지면에서 사라지려고 한다. 그동안 자리를 펴고 광대짓을 해왔지만 이제 걷을 때가 됐다. 아니 자리는 펴둔 채 광대만 사라질 것이다. 역시 묵은 것이 사라져야 새로운, 문명한 것이 와서 새롭게 발전한다는 생각이다.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주간국장 horim@mk.co.kr]
* 미디어다음, http://media.daum.net/series/112751/newsview?newsId=20141103114304510&seriesId=112751
- 편집하는 말,
무언가를 기념한다는 날은 항상 그 어떤 '애틋함'을 동반하게 마련인 법... 오늘 역시 그런가 보구나,
연휴를 앞둔 출근길에 몇자 적는 느낌...
- 새벽에 내렸던 비는 잠시 멈춘 상태, 나머지는 다음에...
- 블로그의 글,
- [메모] 141105. [일상] 안부, 근황
- [메모] 141104. [일상] 마지막 '명동'의 안부
- [메모] 141104. [일상] 할 일
- [메모] 141103. [일상] 늦은 밤...
- [메모] 141103. [기타] 그나저나 여행의 끝은?
- [메모] 141102. [일상] 북한산, 진관사에서
- [메모] 141102. [일상] 장흥, 단풍
- [메모] 141031. [일상] 파주의 가을
- [메모] 141031. [일상] 시월의 끝, 아침
- [메모] 141030. [일상] 주말, 여행은?
- [메모] 141030. [일상] When October Goes
- [메모] 141029. [미술] 단풍, 여행의 절정
- [메모] 141029. [일상] 완연한 가을, 시월말
- [메모] 141028. [일상] 숙취
- [메모] 141027. [일상] 풍경, 몇장
- [메모] 141027. [일상] 단풍의 계절
- [메모] 141026. [일상] 단풍구경은커녕,
- [메모] 141022. [일상] 텅 빈 객석
- [메모] 141022. [일상] 길 위에 집
- [일기] 141027. [경제] 외길, 최악의 시나리오
- [일기] 141022. [기타] 뮤패드 10.1 (아이뮤즈)
- [일기] 141020. [경제] RRAA (Role, Responsibility, Authority, Accountability)
- [일기] 141016. [기타] 포트폴리오 전략
- [문학] 140829. 이명박근혜의 시대, 다시 읽는 조지 오웰
- [문학] 140602. 1960년 서울, 김수영, 1980년 광주, 황지우
- [문학] 140417. 딱 한편의 詩...
- [영화] 140816. '인상비평'의 장/단점, 그 실례...
- [영화] 140622. 영화, 얇게 정리한 "컨닝 페이퍼"
- [음악] 140801. 재미로 읽기, 팝송의 회고록들...
- [음악] 140622. 록, 교양으로서의 대중음악
- [미술] 140629. 현대미술, 조잡한 비평과 위대한 창작 사이
- [철학] 140707. 죽음, 예술 또는 인간/존재의 본질 (그렇다면 시간은?)
- [철학] 140706. "있는 것 아니면 없는 것"이라는 주장
- [철학] 140705. 현대철학, 또는 탈현대의 시초
- [경제] 140520. 유시민, 그의 만점짜리 '전공'책
- [기타] 140924. 갤럭시 노트3, 이제는 포기할 때?
- [기타] 140829. 자전거, '기계공학의 꽃'
- [기타] 140804. 두번째 자전거를 향한 탐독? 또는, (미니벨로!)
- [기타] 140629. Introduction to I&SE (Industrial and Systems Engineering)
- [글] 051128. 그해 여름은 이렇게 끝나버리고
- 인터넷의 글,
- [메모] [전호림칼럼] 사라져가는 것의 애틋함
- [메모] [사설] '아무도 책임 안 지는 일본' 꾸짖은 하루키
- [메모] 살기 좋은 나라 한국 25위..노르웨이 6년 연속 1위
- [메모] 산·공원 막바지 단풍 나들이 '북적'..고속道 정체 "오후 6시 절정"
- [메모] 가을 단풍 절정..2일부터 찬바람 불며 '쌀쌀'
- [메모] [사설] 미국 출구전략 대응 너무 느슨한 것 아닌가
- [메모] [손호철의 정치시평] 10월은 아직도 잔인한 달인가
- [메모] [사설] '비정규직 600만명 시대'가 던지는 메시지
- [일기] 선운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일기] 내장산 단풍산행 - 한국의 산하
- [문학] [시가 있는 아침] 지퍼
- [문학] [박범신의 논산일기] 소설보다 더 극적으로 변한 우리네 풍경
- [문학] 어느 시인의 죽음
- [문학] 다시 시를 읽다 (1) : 최영미, '선운사에서'
- [문학] 이문재 - 散策詩篇 1
- [문학] 고은 - 蟾津江에서
- [문학] 이문재 - 우리 살던 옛집 지붕
- [영화] 조안 "위안부 할머니의 눈물..잊지 말고 기억해야죠" (인터뷰)
- [영화] [정희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콤플렉스
- [음악] [김태권의 인간극장] 안녕, 마왕 신해철 (1968~2014)
- [음악] 신해철 별세, 밤새 SNS도 함께 울었다
- [음악] 에피톤 프로젝트 - 봄날, 벚꽃 그리고 너 (오늘의 싱글)
- [음악] 휘성 - I Am Missing You (2003)
- [음악] Bee Gees - How Deep Is Your Love (1977)
- [음악] [실용음악사] Rock, Afro-American Music
- [음악] 조현민 - 소주 한잔
- [미술] 미술관 내 영화관 '미디어아트'를 품다
- [미술] 서울박스에 정박한 배..실재와 환영의 결합
- [미술] [여행] 설악산 공룡능선, 백두대간이 풀어놓은 공룡 한 마리
- [미술] [여행] 기차의 낭만을 타고 떠나는 가을 단풍여행
- [미술] [여행] "이제 시작이여유~"..당일치기 단풍여행 최적지는
- [철학] [안희정의 내 인생의 책] (2) 지식인을 위한 변명 - 나의 뜨거웠던 청년기의 '밑불'
- [철학] [위키백과] 대한민국의 역사
- [경제] [이철호의 시시각각] 삼성이 애플을 못 이기는 까닭은
- [경제] 새 도서정가제 시행 눈앞..서점가 최대 90% 폭탄세일
- [경제] [이슈 앤 뷰] 아이폰6 대란으로 본 단통법의 한계
- [기타] [여행] 늦가을, 낭만과 사색을 걷다
- [기타] [여행] 서울, 가을로 물들다
- [기타] [여행] 가을, 그윽한 향기에 취하다
- [기타] [여행] 바다에도 산에도 가을이 들었구나, 설악과 속초바다
- [기타] [여행] 철새들이 노니는 수채화 풍경, 주남저수지
- [기타] [여행] 가을, 영화 '서편제' 따라 청산도를 여행하다
- [기타] [여행] 청명한 가을 하늘, 태안반도로 떠나보자
- 그밖의 말들,
- [트윗] 2014년 11월5일 Twitter 이야기
- [트윗] 2014년 11월4일 Twitter 이야기
- [트윗] 2014년 11월3일 Twitter 이야기
- [트윗] 2014년 11월2일 Twitter 이야기
- [트윗] 2014년 11월1일 Twitter 이야기
- [트윗] http://twitter.com/dante21net
- [페북] http://www.facebook.com/dante21net
- [구플] http://plus.google.com/114690883844766200297
'- 잡동사니 > 뉴스레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년 11월 10일 (월) (0) | 2014.11.10 |
---|---|
2014년 11월 7일 (금) (0) | 2014.11.07 |
2014년 11월 5일 (수) (0) | 2014.11.05 |
2014년 11월 4일 (화) (0) | 2014.11.04 |
2014년 11월 3일 (월) (0) | 2014.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