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동사니/뉴스레터

2014년 11월 6일 (목)

단테, 2014. 11. 6. 09:06

글 / "인간은 기억의 동물이다"                             


- 오늘의 편지, 

     

  

   

[전호림칼럼] 사라져가는 것의 애틋함

  

쌀이 모자라 도시락에 의무적으로 보리쌀을 섞어 와야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땐 정부가 강제로 '분식의 날'을 지정하기도 했다. 윤기 자르르 흐르는 이밥에 생선을 발라 먹는 밥상을 최고로 치던 시절이다.

어느 때부턴가 그 귀한 쌀이 남아돌아 처치 곤란이 됐다. 그에 비례해 밥상은 화려하게 변했다. 5000만 국민 대부분이 어떤 형태든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 그중 절대다수가 일터 근처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는다. 그렇게 마주하는 밥상은 옛날 임금님 수라상 못지않다. 그런데 왜 '집 밥' 타령이 나올까. 직장인은 물론이고 군대 간 아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자식들까지도 "집 밥이 먹고 싶다"고 토로한다. 그런 저런 수요를 반영해서 집 밥을 표방한 음식점도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다.

 

왜 집 밥일까? 그건 아마도 개성 없는 기성복 홍수 속에서 내 몸에 맞춤한 옷을 입어보고 싶은 욕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자동 생산라인에서 쏟아져 나오는 편의점도시락,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균일화된 맛, 정성과 손맛이 배제된 길거리 식당들. 말하자면 디지털식 상차림에 식상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디지털은 아웃풋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극단적으로 단축되고 생략돼 있다. 진지함도 결여돼 있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 자체가 그런 따분하고 무미건조한 방식의 연속이다.

그에 비해 어머니 밥상은 아날로그적이다. 집안에 따라 메뉴야 다르겠지만 어릴 적부터 요것조것 해 먹인 어머니의 손맛에 혀가 길들여져 있어서 기억이 훨씬 선명하고 시각적이다. 말하자면 어머니의 상차림은 맞춤식인 셈이다. 거기에 살가운 정은 덤으로 들어 있다. 그런 손맛, 정성이 깃든 맛에 대한 미련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공통으로 느끼는 애틋함이나 그리움 같은 감정이다.

사라져가는 것은 어머니 손맛이 담긴 집 밥뿐 아니다. '어머니상(像)'도 사라져가고 있다. 도시락을 싸서 골목길까지 따라 나와선 출근길 남편의 옷깃을 펴주고 괜히 등이랑 어깨를 토닥토닥 털어내며 하는 말들. "여보, 오늘은 술 잡숫지 말고 일찍 들어오세요" "차 조심하시고요." 자식도 아닌 남편을, 애정과 걱정이 넘치도록 담아 바래기 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이제 찾을 수가 없다. 그걸 그리워한다는 것은 어릴 적부터 보아온 그 달짝지근한 애정의 몸짓, 사랑이 담긴 목소리의 세례를 나도 한번 받아보고 싶다는 투정에 다름 아닐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아버지처럼 참한 색시 얻어서 저런 대접을 한번 받아봐야지 하는 바람이 무의식 속에 녹아들어 함께 성장해온 것이다.

그런 욕망은 이제 가당찮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어머니를 만들어낸 대가족이 사라지고 그만큼 살가운 여성이 없다. 그건 대가족의 왁자한 속으로 날아들어와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여름을 함께 나던 제비가 더 이상 오지 않는 것처럼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다.

어머니의 한결같은 바가지 "어이구, 대체 의리가 밥 먹여 준답디까?" 하는 소리도 이젠 못 듣는다. 역으로 말하면 먹을 것 입을 것 없는 시절에도 그만큼 의리가 두터웠고 사람 사는 정이 돈독했다는 반증이다. 그건 또 오늘의 우리 사회가 그만큼 얍삽해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도 사라질 것은 사라져야 한다는 반론이 나온다. 그래야 새것이 온다는 것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사라지면서 네안데르탈인이 등장하고, 그들 또한 크로마뇽인에 밀려 사라져갔다. 그러면서 지력이 깨고 문명이 발달했다. 요컨대 사라져야 할 것이 사라져야 새것, 더 나은 것이 온다는 얘기다.

그래서 필자도 이제 이 지면에서 사라지려고 한다. 그동안 자리를 펴고 광대짓을 해왔지만 이제 걷을 때가 됐다. 아니 자리는 펴둔 채 광대만 사라질 것이다. 역시 묵은 것이 사라져야 새로운, 문명한 것이 와서 새롭게 발전한다는 생각이다.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주간국장 horim@mk.co.kr]

 

  

* 미디어다음, http://media.daum.net/series/112751/newsview?newsId=20141103114304510&seriesId=112751 

                                                                                                                                                 


- 편집하는 말,   

    

무언가를 기념한다는 날은 항상 그 어떤 '애틋함'을 동반하게 마련인 법... 오늘 역시 그런가 보구나,

연휴를 앞둔 출근길에 몇자 적는 느낌...

 

- 새벽에 내렸던 비는 잠시 멈춘 상태, 나머지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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