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첫 출근과 아직도 미지수인 앞날들
- 오늘의 편지,
[박래용칼럼] 6등급 정치
손아래 처남에게 중2 아들이 있다. 명절에 처가에 가면 녀석에게 못 알아들을 질문을 하고 그 반응을 보는 게 재밌다. "6·4 지방선거에서 누가 이길 것 같으냐" "푸틴은 체첸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 "그게 뭐예요"라고 되묻는 녀석의 뚱한 반응에 식구들이 깔깔거리며 재밌어 한다. 이번 추석에는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을 줄지 말지를 물어 놈의 혼을 빼놓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집사람이 문득 "난 유족에게 수사권·기소권 주는 것에 반대"라고 했다. "민간인에게 그걸 주는 게 말이 되느냐"고도 했다.
아내에게 얘기해줬다. 수사권·기소권은 유족에게 주는 게 아니다. 진상조사위에 주자는 것이다. 진상조사위원은 여야 5명씩, 법조인 4명(대법원장·변협 추천 2명씩), 유가족 3명을 합쳐 모두 17명이다. 이 위원회에 강제권한을 줘 진상을 밝히자는 것이다. 안 나오는 관계자들을 강제로 끌어오고, 자료 요구에 뻗대는 기관은 압수수색을 해서라도 속도있고 효율적으로 조사하자는 것이다. 과거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에는 수사·기소권에 재판권까지 다 줬다. 독일·프랑스에는 피해자 개인이 직접 소추(訴追)할 수 있는 제도도 있다. 자력 구제 불가니, 위헌적 발상이니 하는 건 다 핑계다. 요는 진상규명을 위한 '진짜 특별법'을 만들 입법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집사람이 말이 없어졌다.
특검도 마찬가지다. 진상조사위가 하는 데까지 해보고 풀지 못한 미제를 넘겨받는 곳이 특검이다. '특별검사후보추천위'는 여야가 2명씩 추천하고 법무부 차관, 법원행정처 차장, 변협회장을 포함해 총 7명으로 구성된다. 추천위는 과반의 찬성으로 2명의 특검 후보를 추천하고, 대통령은 그중 한 명을 지명한다. 대통령이 친여 성향의 특검을 선택하면 수사는 흐지부지되고 말 것이란 게 유족들의 우려다. 과거 11차례 특검에서 이미 봤던 경험칙이다. 그래서 신뢰할 만한 전문가가 특검이 되게끔 안전장치를 만들어 달라는 게 유족들의 요구다. 아내가 말했다. "그렇게 쉽게 좀 써. 나 같은 사람도 알아듣게…."
더 쉽게 쓴 글이 있다. 단원고 2학년 학생의 아버지 최경덕씨는 '추석 편지'에 썼다. "자식의 죽어가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데 정작 부모는 제대로 된 설명 하나 듣지 못했습니다. 왜 자식의 죽음을 구경만 하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래서 진실을 알려달라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직후만 해도 이런 일은 생각지도 못했다.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고, 여당은 "한번만 살려달라"며 국민 앞에 진상규명과 국가개조를 약속했다. 그랬던 대통령과 여당은 두 번의 선거로 세월호 참사에 면죄부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세월호 심판'을 내건 야당의 실패한 슬로건이 잘못된 해석을 안겨준 면이 크다. 급기야 집권세력은 참사의 진상규명이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의 문제도 정쟁으로 바꿔놓아버렸다.
놀라운 탈출이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진상조사와 특검 수사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단식에도, 삼보일배에도, 천막 농성에도 특별법 협상에 배수진을 치고 물러서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이들에게 '세월호 외면'은 고도의 정치행위로 작동 중이다. 세월호 유족을 국민으로부터 분리하고 고립시키기 위한 최고의 작전은 진영싸움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대통령이 눈길을 돌린 때부터 자식 잃은 부모들을 향한 악마적 폭력이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권력의 소중함은 국민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데 있다"고 했다. 지금 대통령의 권력은 자신을 지지한 51% 국민을 위해 쓸 뿐 나머지 48% 국민에게는 한 뼘만큼도 없는 것 같다.
정치에도 등급이 있다. 1등급은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순리의 정치다. 2등급은 이익으로 백성을 이끄는, 백성을 잘살게 만드는 정치다. 3등급은 백성들이 깨우치도록 가르치는 훈계형 정치다. 4등급은 백성들을 일률적으로 바로잡으려는 위압 정치다.
사마천이 <사기(史記)>에서 한 얘기다. 사마천은 중국 3000년 역사에 등장하는 제왕의 통치 행태를 분석해 정치를 5등급으로 나눴다. 맨 아래 5등급, 가장 못난 정치는 백성들과 다투는 정치다. 백성과 다투는 제왕은 가장 비참한 지도자이며 그 백성은 가장 슬픈 백성이라고 했다.
사마천이 놓친 게 있다. 그는 백성과 다투는 정치 아래에 백성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짜증을 내는 6등급 정치가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박래용 정치에디터>
* 미디어다음, http://media.daum.net/editorial/newsview?newsid=20140910205006691
- 편집하는 말,
연휴 뒤 복귀한 회사 사무실에서 내내 이러쿵 저러쿵 말들도 많은 일들과 또 아직도 확정되지 못한 사안들을 놓고
내내 씨름하는 동안 이 뉴스레터도 반나절을 훌쩍 넘겨 늦은 오후에 비로소 펜을 들게 된다.
아직도 불확실한 미래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고, 그때 그때마다 매번 전전긍긍하며 지내기엔 내 남은 시절들 또한
딱히 넉넉치는 못한 형편이어서 앞으로는 어떻게든 매사에 최선을 다해 임해보고자 하는 노력만이 필요할 뿐...
그 첫 시도로 오늘은 하루종일 영문레터들을 작성했고 또 곧 이어 주간보고와 나머지 일들도 처리해야 하는 시각,
현장에서의 한달 가까운 기간 동안 과연 내게 무엇 무엇들이 남게 될까를 한번쯤 곰곰히 되짚어볼만한 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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