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일기

5주년, 바람이 분다... 20년전의 詩

단테, 2014. 5. 23. 22:04

   

   

...

 

    

동지들 남긴 술잔엔 

 

   

빈잔 위로 슬며시 비껴앉은 석양은 

뺨우에 달아오르고 취하지도 않아

비틀거릴 수 있던 자유는 어디에 

어눌해진 말솜씨가 자랑이 되는 시대 

그만큼 희망을 이야기하진 않아

나빠진 건 아냐

좀 더 진지해졌을 뿐이지 

진지하다는 말도 필요없는지 몰라

다만 우리에겐 한갓 치기도 정열도 아닌 

무언가 남아서 부여잡고 싶은 게 있지

그걸 말로 표현하지 못한대서 뭐 나빠 

어쩜 서로 등 다독거리는 기다림은 아닐까 

그것마저 낡아버린 시대 

그만큼 조급해지지도 않았어

아니 길이 너무 멀다는 깨달음

그 깨달음을 알기까지 우린 얼마나 많은 

先輩들을 잃어왔던가......

우리가 늘 비판하고 질시하던 그 노땅들

그들이 남겨논 건 없어 

땀냄새나 맡기 위해 모인 건 아니잖아 

위로도 필요없지 

때론 지겹기도 해 올바르지 않겠지 

다 마찬가지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렇지

저렇게 떠들던 녀석들 이제 보이지도 않아 

남아서 잔만 채우면 잔만 들어도 슬퍼지는 걸 

누군 안 그렇겠냐며 서로 믿을 수 있다는 힘

그 힘 때문에 사그러진 청춘들도 있었다는 것

그 청춘들 땜에 더더욱 죄의식 속에 살기도 해 

살아남는다고 위로받지도 못하는 치열한 시대 

서로 바득바득 우겨대던 알리바이는 없어 

옆에서 고개를 떨구던 이에게 왜 우린 왜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는가를 반성하고 있지 

며칠전의 안부로 위안삼기엔 괴로운 추억 

추억의 한줌 재를 털면 일어서는 얼굴들 

불우한 영혼들이여 이제 잔을 비우자 

성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성낼 줄 아는 

단호함까지 배운 우리들이기에 

이깟 슬픔쯤 거두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만, 

다가서는 기억들, 그 옆언저리에서 

지금 이렇게 어깨처진 육신들은 

왜 채워질 수 없는 그리움일까

고단하게 떠나는 자리에서 

석양이 남겨둔 속삭임은 

그 파리하게 떨고 있는 허공은

무엇으로 대답할 수 있을까

  

          

( 1994년 4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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