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시민, '거꾸로 읽는 세계사' (푸른나무, 1988/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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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세상에 나왔을 당시만 해도 이런 책이 널리 읽히는 풍토가 아니어서 누가 사서 보기나 할까 기대 반 의심 반 책을 내놓았다... 박종철씨 고문살해사건에서 6월 항쟁에 이르는 격동기에 군사독재정권 타도투쟁을 선동하는 유인물을 찍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곰팡내 나는 반지하 자취방에 숨어 지내면서 썼다. 하루종일 취루탄 가스를 마시며 돌을 던지고 돌아와 밤새워 했으니 점잖고 온순한 글이 나올 수야 없는 일이다... 그 사이에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꾸로 읽는 세계사> 같은 '지적 반항'을 낳았고, 제대로 역사 공부를 하지도 않은 얼치기 '역사학도'가 쓴 이 책을 꾸준히 잘 팔리게 만든 일그러진 법 제도와 사회 분위기는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사실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와 스탈린 체제를 욕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달리 없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세계에 대한 모든 정보가 정보기관의 검열을 거친 후에야 국민에게 전해지고 사회주의체제의 장점을 말하는 것이 감옥에 끌려가는 이유가 되는 사회에서 진정 양심 있는 지식인이라면 떳떳이 사회주의를 비판할 수 없다. 강요된 이데올로기에 맞서 누군가 소신껏 사회주의체제의 장점을 말할 자유를 박탈당할 때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함께 싸우는 사람만이 진정 거리낌없이 사회주의를 비판할 자격이 있다. 우리 사회를 비판할 자유가 보장되어있지 않고 사회주의를 연구할 자유조차 없는 사회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똑같은 무게로 비판한다고 해서 '공정한 역사'가 될 수는 없는 일이 아닐까. 짧게나마 소련 동유럽 사회주의 몰락에 대한 글을 실은 것은 그 거대한 실험을 정리해 볼 때가 되었기 때문일 뿐 그런 식의 '공정한 역사'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상과 견해를 자유롭게 토론함으로써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이는 민주주의를 가꿀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진짜 민주주의 사회에 살게 된다면 얼치기 역사학도가 쓴 <거꾸로 읽는 세계사> 같은 책이 서점에 나와 앉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책이 아직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을 진심으로 슬퍼한다. 역사를 쓰는 데 필요한 자료를 정치권력이 제멋대로 통제하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과 토론을 억압하는 그릇된 풍토가 사라져 아무도 이 책이 전하는 '지적 반항'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내가 진정 바라는 일이기 때문이다.
1995년 2월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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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얘기를 꺼내기 전에, 이 책을 잠깐 꺼내본다. ;
난 개인적으로 유시민의 지나치게 화려하기만 한 언변과 태도가 늘 마음에 안들었다.
무어랄까... 진정성 못지 않게 독선적인 듯한 그 태도는 늘 적한테 큰 약점으로 대두되는 법,
정치계에 몸담았던 기간 동안 내내 정적들에게 시달리면서 또 어쩌면 즐기듯 받아쳐온 그다.
개인적으로, 그한테서 진정성을 가장 크게 느꼈던 적은 2004년 탄핵 사태 때 쓴 글도 아니고,
보건복지부 장관 때 MBC '시선집중'에 나와 인터뷰하던 어조도 아니었다.
지난 2009년 5월 이맘때, 붉게 충혈된 두눈을 부릅뜬 그의 침통한 표정이 진정성 자체였다.
-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품위'를 보였다면, 유시민 전 장관은 '비탄'이었다...
비록 그한테도 숱한 비난과 비판의 화살들은 쏟아질 테지만, 적어도 역사와 사회 앞에서라면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얘기할 때는, 떳떳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으로 본다.
누가 내게 '친노'라는 단어를 정의하라면, 주저없이 문재인 전 후보가 아닌 유시민을 꼽겠다.
비록 그가 마음에 안들어도, 그가 뿌린 눈물들이... 현대사 앞에 내 가슴 속에 비수로 꽂힌다.
- 그한테서 무언가의 '심정적인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때때금 스스로 깨닫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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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머리말
편집자 머리말
드레퓌스사건-진실의 승리와 더불어 영원한 이름
피의 일요일-혁명과 전쟁의 시대가 열리다
사라예보사건-총알 하나가 세계를 불사르다
러시아 10월 혁명-세계를 뒤흔든 붉은 깃발
대공황-'보이지 않는 손'의 파산
대장정-중화인민공화국을 낳은 현대의 신화
아돌프 히틀러-벌버벗은 현대 자본주의의 얼굴
거부하는 팔레스타인-피와 눈물이 흐르는 수난의 땅
미완의 혁명4·19-자유의 비결은 용기일 뿐이다
베트남 전쟁-골리앗을 구원한 현대의 다윗
검은 이카루스,말콤X-번영의 뒷골목 할렘의 암울한 미래
일본의 역사왜곡-일본제국주의 부활 행진곡
핵과 인간-해방된 자연의 힘이 인간을 역습하다
20세기의 종언,독일 통일-통일된 나라 분열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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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후감은 1960년 4월 19일, 서울대학교 선언문으로 대신하자. ;
"긴 칠흑과 같은 밤의 계속이다. 나이 어린 학생 김주열의 참시를 보라! 그것은 가식 없는 전제주의 전횡의 발가벗은 나상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저들을 보라! 비굴하게도 위협과 폭력으로 우리들을 대하려 한다. 우리는 백보를 양보하고라도 인간적으로 부르짖어야 할 같은 학구의 양심을 강렬히 느낀다.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임을 자랑한다. 일제의 철퇴 아래 미칠 듯 자유를 환호한 나의 아버지, 나의 형들과 같이!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외롭지도 않다. 영원한 민주주의의 사수파는 영광스럽기만 하다. / 보라! 현실의 뒷골목에서 용기 없는 자학을 되씹는 자까지 우리의 대열을 따른다. 나가자! 자유의 비밀은 용기일 뿐이다.
우리의 대열은 이성과 양심과 평화, 그리고 자유에의 열렬한 사랑의 대열이다. 모든 법은 우리를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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