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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 시인, 은퇴선언

단테, 2014. 4. 13. 15:21

- 김선우,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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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 "시인으로 산 지 십 년이 되었다. 이 시집이 세상에 보내진 이후 어쩌면 나는 당분간 시를 떠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확하게는, 시를 청탁받고 발표하는 관행으로부터 떠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언제든 시는 돌아올 수밖에 없는 고향이다. 어디서든 시는 내 몸의 일부를 이루는 타향이다. 시로 와준 모든 그대들, 사랑한, 사랑하는 그대들께 바친다. 2007년 7월 김선우"

        

개인적으로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개인적으로는 또, 그의 말이 순 거짓말임을 안다... 시인은 

시를 떠나서 살 수가 없다. (작년에 내가 뽑았던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는 바로 그 증거다.) 그의 끊임없는 진화와 정진을 계속 기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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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아이 업은 사람이 

등 뒤에 두 손을 포개 잡듯이 

등 뒤에 두 날개를 포개 얹고 

죽은 새 

 

머리와 꽁지는 벌써 돌아갔는지 

검은 등만 오롯하다 

 

왜 등만 가장 나중까지 남았을까, 

묻지 못한다 

 

안 보이는 부리를 오물거리며 

흙 속의 누군가에게 

무언가 먹이고 있는 듯한 

그때마다 작은 등이 움찟거리는 듯한 

 

죽은 새의 등에 

업혀 있는 것 아직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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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첫사랑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가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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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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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시집은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 몇편의 눈에 띄는 소품들은 있어도 전편에 흐르는 일종의 기조 같은 게 영 내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까닭이기도 한데... 순전히 스타일 탓이다. 오히려 가장 주목한 건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 피해자 얘기를 담은 "열네 살 舞子"다. 그 전편에 흐르는 분노를 읽었고 그것에 슬퍼했으며 그것이 아직도 살아 숨쉬는 반역임에 또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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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저자
김선우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07-07-06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1996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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