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우,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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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 "시인으로 산 지 십 년이 되었다. 이 시집이 세상에 보내진 이후 어쩌면 나는 당분간 시를 떠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확하게는, 시를 청탁받고 발표하는 관행으로부터 떠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언제든 시는 돌아올 수밖에 없는 고향이다. 어디서든 시는 내 몸의 일부를 이루는 타향이다. 시로 와준 모든 그대들, 사랑한, 사랑하는 그대들께 바친다. 2007년 7월 김선우"
개인적으로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개인적으로는 또, 그의 말이 순 거짓말임을 안다... 시인은
시를 떠나서 살 수가 없다. (작년에 내가 뽑았던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는 바로 그 증거다.) 그의 끊임없는 진화와 정진을 계속 기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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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아이 업은 사람이
등 뒤에 두 손을 포개 잡듯이
등 뒤에 두 날개를 포개 얹고
죽은 새
머리와 꽁지는 벌써 돌아갔는지
검은 등만 오롯하다
왜 등만 가장 나중까지 남았을까,
묻지 못한다
안 보이는 부리를 오물거리며
흙 속의 누군가에게
무언가 먹이고 있는 듯한
그때마다 작은 등이 움찟거리는 듯한
죽은 새의 등에
업혀 있는 것 아직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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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첫사랑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2
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가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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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시집은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 몇편의 눈에 띄는 소품들은 있어도 전편에 흐르는 일종의 기조 같은 게 영 내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까닭이기도 한데... 순전히 스타일 탓이다. 오히려 가장 주목한 건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 피해자 얘기를 담은 "열네 살 舞子"다. 그 전편에 흐르는 분노를 읽었고 그것에 슬퍼했으며 그것이 아직도 살아 숨쉬는 반역임에 또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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