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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 심재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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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꽃잎이 지고
오늘은 비가 온다고 쓴다
현관에 쌓인 꽃잎들의 오랜 가뭄처럼
바싹 마른 나의 안부에서도
이제는 빗방울 냄새가 나느냐고
추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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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고 긴 대롱을 따라
서둘러 우산을 펴는 일이
우체국 찾아가는 길만큼 낯설 것인데
오래 구겨진 우산은 쉽게 젖지 못하고
마른 날들은 쉽게 접히지 않을 터인데
빗소리처럼 오랜만에
네 생각이 났다고 쓴다
여러 날들 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많은 것들이 말라버렸다고
비 맞는 마음에는 아직
가뭄에서 환도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너무 미안하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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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게도 이미 마음은
오래 전부터 진창이었다고
쓰지 않는다
우산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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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알게 된 심재휘 시인의 작품 두편을 나란히 놓아본다. 토요일의 늦은밤,
이제는 곧 자야 할 시각인데... 못다한 말들일랑은 내일 또 하도록 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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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디 짧은 사연과 안부, 가끔은 긴 침묵이 더 그리울 때가 많아지는 요즘...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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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골목 / 심재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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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넓은 곳에서
또다른 넓은 곳으로 건너가는
오늘은 골목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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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밤길 하나를 돌면
전봇대의 흐린 전등 하나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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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갈라지는 골목길 이리 저리
곧장 갔으나 지나간 길에 다시 와 설 때
문득 담벼락에 비밀의 문이 열려
나를 아주 멀리 데려가 줄 것만 같은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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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이 버려진 자전거처럼
하루쯤 메마르게 쉬고 싶은 오늘은
길인 줄 알고 들어갔던 막다른 골목에서
나 한없이 막막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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