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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자유로를 나서면 절망을 잠식하는 공기
드넓은 한강자락 펼쳐지니 마음이 훤하다.
오늘은 또 무슨 근심 바람 있었길래 차들은
저마다 줄지어 북으로 북으로 향하는 걸까
뒤따라 합류하는 마음 역시 못지 않은데
잠시 논두렁을 벗어던지는 마음이 헛헛함
쏜살같이 금세 닿은 출판도시 입구
고동색 길다랗게 늘어선 간판이 맞이하는
가로수 곳곳마다 드문드문 짝지은 커플은
오늘도 수채화같은 마음이 설레는 듯
귀에 익은 유행가가 들릴 때면 곧 도착
편의점 덩그러니 이웃한 카페 테라스는
장맛비에 젖은 손님들을 기다리는 채
삐걱삐걱 마루에 몇발자국을 남기고.
휘적휘적 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면
높다란 책장 켜켜이 쌓인 먼지가 반기고
아직 못자란 책들만 두둑히 쌓여가는 중
책따라 지난 세월도 먼지들의 추억일 뿐
"커피요." 하면서 캔커피 하나 사왔는데
책장 안의 책들도 가방 안에서 집어든다.
낯설지 않은 오후
고요함
익숙해지는 적막한 단어들도 함께
비 그친 일요일 저녁처럼 제법 한산했다.
어디만큼 흘러왔을까
도착할까
앞으로 갈 곳은 무언가 따위의 말도
시계 앞에선 말을 잃고 춤춘다.
세시간 남짓한 집으로 향할 때까지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로소 집에 갈 시각. 훌쩍 카페를 나선다.
드문드문 행적을 따라 도로 나선 파주는
연신 말없는 불빛으로 나를 배웅하는 채
아무 충고도 격려도 슬픔도 나누지 않는
낯설지 않은 저녁
고요함
다시 들어선 자유로 옆 아까 세워둔 절망도
부쩍 잦아진 늙음으로 귀향을 재촉하는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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