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테노트/문학노트

신인들을 바라보는 자세, 또는 심경

단테, 2011. 1. 9. 06:48

 

Jongno :


* 황지우

... 시낭송,

 

...

 

 

...

 

 

 

거인을 보았습니다

 

백상웅

   

 

방 한 칸의 옆구리를 터서 또 다른 방을 만든 집에 세를 들었습니다 그해 겨울 저는 양철 지붕을 밟고 다니는 수상한 거인이 집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번도 발자국을 본 적 없지만, 그는 지붕에 엉덩이를 대고 한참 쉬었다 가면서 처마 끝 고드름을 뜯어가곤 하였으니까요 해가 저물면 가로등마다 성냥불을 그어대던 놈도 거인이었습니다 저는 소란스러운 불빛 때문에 귀가 불편해서 잠들지 못했습니다 방은 외로운 기타 같았기에 저는 두 칸의 방에서 하루씩 번갈아 묵었습니다 방이 쓸쓸해지면 목소리가 금방 상할까봐 걱정했던 까닭입니다 멀리서 열차소리가 들리면 거인은 귀를 막고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휘파람 소리는 제 심장 속에 서늘한 골짜기를 팠습니다 거인은 분명 엉덩이가 매우 무거운 놈일 거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동네의 담벼락은 하루가 다르게 허물어지고, 대들보가 뽑혀갔으며, 지붕이 움푹 내려 앉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거인은 하릴없이 태양을 잡아당겨 어둠을 길어지게 하고, 태양에 얼음을 용접해서 눈발을 자주 마을로 불러 들였습니다 눈송이가 날리면 팽팽한 전깃줄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배고픈 새떼를 쫓아내기도 하였습니다 거인은 구름을 뒤집어쓰고, 어떤 날은 적막한 통장을 들여다보고는 창문에 성에를 가득 채워놓고 갔습니다 아마도 하늘 가장자리에 묻어둔 쌀독이 텅 비어버린 날이었겠지요 폭설이었습니다 거인도 잠을 뒤척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가 얼어붙은 나뭇가지를 뚝뚝 부러뜨려 이를 쑤실 때, 이미 하늘은 텅 비고 먹구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거인은 천장을 두드리고 처마를 움켜잡고 지붕을 열어보려고 하였습니다 저는 두려워서 함박눈처럼 울었습니다 지붕과 지붕을 잘못 겹쳐 올렸는지, 날이 풀리기도 전에 천장에서 거인의 녹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검은 벌레들이 방구석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와 젖은 벽지를 뜯어 먹었습니다 거인은 곰팡이 핀 벽에다 제 그림자를 걸어두고 또 어디에서 저의 낡은 기타소리를 뜯어먹고 있을까요?

 

 

- <창작과 비평> 겨울호

 

...

 

 

 

오동나무 아파트

백상웅

   

 

우리가 세든 이 아파트는 공교롭게도 계단이 없지만 옥상은 딱딱한 하늘과 이어져 있단다

이 동네에 정착한 주민들이 처음 한 일은 베란다 가득 꽃밭을 가꾸는 일
채송화가 자작자작 걸음을 뗐고 해바라기와 능소화가 한 줄기에서 피어났지
넝쿨이 치렁치렁 아래층 창문을 가리기도 하는 우리의 아파트는 한때 몇 그루의 오동나무였거든

우리가 건너 동에 걸린 얼굴만 넌지시 바라보는 건 서로를 보살필 수 있는 시간의 전부였기 때문
느닷없이 등을 돌려 떠나버리는 이들이 없었기에 주민들의 눈두덩은 젖을 일이 없지
나이테가 박혀 있는 단칸방에선 둥근 뼈가 항아리를 빚어 오동나무 숲에 걸어두었어
항아리가 식은 달처럼 둥둥 떠서 동강난 세상을 밝히면 우리는 꽃잎을 갉아먹다가 들킨 벌레 같았단다

오동나무 아파트가 층을 높여가자, 항아리의 배는 고치처럼 볼록하게 불러갔어
주민들은 뚜껑을 섣불리 열어보려 하지 않았거든
뼈가 익어가는 계절이 다가오면 아파트에 젖은 날개들이 기어다니고 꽃밭엔 더듬이가 앉아 있을 테니까
누구나 화로 속에 누워 꿈을 꾸다가 뜨거운 항아리를 안고 아파트에 올라와야 했단다 
 

 

 

...

 

  

  

스위치

 

백상웅

  

 

그는 왼쪽에서도 휘두르고 오른쪽에서도 휘두른다.

양손을 자유자재로 부릴 줄 아는 거다.

타석을 바꿔가며 타율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는

스위치 타자, 그야말로 생계형 투잡족이랄까.

습성을 바꾸면서까지 방망이질 하는 그에게

쉬는 날은 거의 없지만 그 또한 왼쪽과

오른쪽 중 한 곳은 버려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

이를테면 이런 거다, 평생 오른손으로만 일한

내 아버지가 팔을 굽히지 못하게 되었을 때,

멀쩡한 반쪽으로 일을 다시 시작하였다.

용접봉 대신 야구배트에 불꽃을 일으켰다면

아버지는 팬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을 일이다.

오른팔의 스위치를 내려도 노동을 하다니!

허나 가족들은 캄캄하게 암전된 팔을 그리워했다.

원래 좌우란 힘찬 스윙같이 훅훅, 슬픈 거다.

어느 쪽 타석을 선택해도 순식간에 날아오는

야구공을 향해 방망이를 돌려야 한다.

양어깨의 근육을 공평하게 부풀리는 그를 볼 때마다

그의 방망이가 허탕 치길 기대하는 건

생존에 대한 반동이랄까, 회색분자에 대한 질투랄까.

집안의 스위치를 내리면 아버지는 어둑해지고

이젠 내가 깜빡일 차례, 몸통을 좌우로 돌려 풀면서

한쪽으로 자빠진 타석을 이어받는다. 이 순간이

몸과 마음이 엇박자로 노는 때라서 방향을 쉽게 잃는다.

아버지에게 핸들을 좌우로 비틀며 자전거를 배우듯,

좌우를 가리지 않고 내가 방망이 들고 들어서야 할 곳은

아버지의 숨통이 아닌가, 노장이 떠난 그라운드에

딸깍딸깍 벼락같이 스파크가 일고 있다.

 

 

 

...

 

 

 

- <2009 신춘문예 당선시집>, 문학세계사

- <젊은 시 2010>, 문학나무

- <2009 신춘문예 당선소설집>, 한국소설가협회

 

...

 

 

 

모처럼 도서관에서 시집을 꺼내 읽던 하루, 몇가지 단상을 노트에 적다. :

 

2009년, 2010년 신춘문예 당선작품집을 보며 가장 크게 놀란 건 이미 그들 당선자 대부분이 1980년대를 전후로 태어난 전혀 다른 감각과 이성체계를 갖춘 일종의 이질감에 대한 발견이었으며, 더욱 놀랐던 건 2008년과 2009년에 연이어 터졌던 국내의 굵직굵직했던 정치/사회적 현상들과는 마치 유리된 듯한 세계를 살고 있다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조중동'이 주도하는 신춘문예의 한계일 수밖에 없는 걸까? <젊은 시 2010>를 띄엄띄엄 훑어보다가 가장 눈길에 쏠린 건 오히려 창비를 통해 등단한 백상웅이다. 그 역시 연배로는 이제 갓 서른일 법한 나이임에도 타고난 산문시의 재능과 부드럽게 읽히는 힘 등은 신선함과 노련함의 절묘한 융합을 보여준다. (진정한 신인의 모습을 발견하는 기쁨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확실히 소설에 의해 밀려나버린 우리나라 시단은 이제 관념과 감각에 파묻힌 채 대중이 아닌 매니아들만의 쟝르로 전락해버린 아쉬움이 더 크다. '시의 대중화'는 여전히 '통속화'의 그늘을 전혀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아예 3류거나 아니면 소통불능의 양자 중 어느 한쪽만을 집요하게 강요하고만 있다는 생각... 안타깝다. 어차피 밥줄조차도 못될 운명인데, 문학적 성취가 도외사당하고 있는 현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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