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테노트/철학노트

심상정

단테, 2010. 6. 2. 16:46

 

 

 

 

"저는 지난 30년 동안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나라와 정직한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를 위해 한 뼘,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싸워왔습니다. 어떤 망설임도 없이 당당히 앞장서 민주화 운동을 했고, 졸업 후에는

자욱한 실밥 먼지와 기름 냄새 가시지 않은 구로공단에서 이 나라의 딸들과 함께 노동운동을 해왔습니다.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는 하루하루 배우고, 노력하는 가운데 국민의 대표로서 최선을 다해 일했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 그 자신의 소개글 中 

 

......

 

 

 

지방선거가 치러지고 있는 오늘, 벌써 며칠이 지난 심상정 후보의 사퇴 기자회견 기사를 읽는다. 며칠전에

꺼내고자 한 얘기를 뒤늦게 꺼내는 기분 역시 남다르다. 신문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솟는다.

 

......

 

 

 


 

 

 

한국처럼 보수정치와 진보정치의 구분이 저마다인 사회도 없지만, 보수정치와 진보정치의 가장 보편적인 구분 지점은 역시 대변하는 계급이다. 보수정치는 부자들의 삶을 대변하고, 진보정치는 서민대중의 삶을 대변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부자들이 지배하는 사회이기에 서민대중의 처지에서 얼마나 살만한 사회인가는 대개 진보정치가 얼마나 센가에 달려 있다. 서민대중의 처지에서 한국이 참으로 나쁜 사회인 이유는 진보정치가 약하기 때문이고, 서유럽이나 북유럽 사회가 한국보다 살만한 사회인 이유는 진보정치가 세기 때문이다.


극우반공독재 정권이 지배하는 동안 진보정치는 아예 씨가 말랐다.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절차를 요구하는 김대중씨 같은 보수정치인이 간첩으로 몰리는 판이었으니 그럴밖에. 그런 사회, 즉 제도정치가 서민대중들의 삶을 대변할 수 없는 사회에선 주요한 사회적 변화는 결국 정치권 밖에서 인민들의 직접 행동으로 일어나게 된다. 4·19, 광주민중항쟁, 6월항쟁 등 한국 사회의 변화와 관련한 주요한 국면들이 모두 그랬다.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이 창당함으로써 비로소 한국에도 진보정당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진보정당(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의석수는 전체 296석 가운데 고작 6석이다. 부자의 삶을 대변하는 290명의 의원과 서민대중의 삶을 대변하는 6명의 의원이 만들어내는 정치가 ‘부자의 무한천국’을 만들어내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대중들의 사회의식은 갈수록 진전되고 있는데 여전히 진보정치가 이토록 미미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제도정치권 밖의 진보적인 정치세력들이 대거 보수정치로 투항했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에 있는 이른바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적어도 극우정치인들과 비교해서 훨씬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정치 역시 부자들을 대변한다. 그들의 정권 10년 동안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화하고, 농민은 국가로부터 버려졌고, 삼성은 한국 사회의 절대군주가 되었다.

 

둘째는 그나마 남은 진보정치의 세를 싹쓸이하는 ‘비판적 지지’라는 것이다. 비판적 지지는 ‘최악을 막기 위한 연대’다. 최악을 막는 일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어떤 일의 양면을 함께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비판적 지지는 최악을 막는 데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실재하는 진보정치의 씨앗을 보수정치로 흡수하는 진보정치의 미래를 없애버리는 굿판이기도 하다.

 

이번 지자체 선거에서 최악인가 차악인가, 이를테면 오세훈인가 한명숙인가 혹은 김문수인가 유시민인가는 허투루 볼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서민대중의 삶에서 노회찬과 심상정의 득표율은 최악인가 차악인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진보후보의 득표율은 그 자체로 진보정치의 세와 힘으로 작동하며 그게 얼마나 느는가에 한국 정치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당선과 무관한 표는 ‘사표’라거나 비판적 지지를 반대하는 건 근본주의적 태도라는 주장은 매우 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실은 사기다.

 

그래서 최악이 이겨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그거야말로 이미 우리가 잘 아는 문제다. 중앙정치든 지방정치든 그 안에서 도무지 해결이 안 되면 언제든 촛불을 들고 짱돌을 들고 나가면 된다. 나가서 직접민주주의의 뜨거운 맛을 보여주면 된다. 앞서 말했듯 한국의 진짜 정치는 오히려 제도정치권 밖에서 존재했으며 290 대 6의 정치구조를 가진 지금도 그럴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권의 패악질을 잠시나마 멈추게 한 건 한명숙도 유시민도 아닌, 촛불을 든 시민들이었다.

 

 

[야! 한국사회] 뜨거운 맛 / 김규항

 

......

 

 

 

심상정 경기지사 후보 사퇴…유시민 뒤집기 힘실리나 (한겨레, 5/30)

 

심상정 “내가 짊어질 짐” 눈물퇴장 (한겨레, 5/30)

 

 

 

......

 

다시 '큰 싸움'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하는 비상시기

 

시민운동에 오랫동안 함께 하면서 늘 바랐던 건, 작은 차이를 뛰어넘어 큰 틀에서 서로 아우르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진보의 넉넉한 마음이었다. 그렇잖아도 소수자(minority)인 진보가 갈라서서 더욱 소수자가 되어 스스로 사회적 배재를 심화시키는 꼴이니,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진보야말로 통합의 리더십과 연대의식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아쉬움을 늘 느꼈던 것이다. 특히 '공공의 적'을 목전에 둔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난해 다시 돌아왔을 때 우리 사회는 촛불시위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상태였고, 집권 2년차 MB의 정치행태는 벌써 퇴행적 파탄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87체제 논쟁이 차라리 낭만적으로 느껴질 만큼, 이미 87년 이전으로 죄다 되돌아간 현실을 보며 나는 다시 '큰 싸움'이 필요한 비상시기라고 판단했다. 6월항쟁 때와 같이 '공공의 적'을 향해 국민의 힘을 결집시킬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불행하게도 징조는 어김없이 현실이 되었다. 삽질에 의해 유린당하는 4대강에서, 전쟁불사를 외치는 남북현실에서,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로 치닫는 서민들의 생활현장에서, 전방위적으로 대재앙의 징조를 더해가는 MB의 비민주적이고 반생명적인 정치행태는 우리의 싸움이 어디로 가야할지를 너무나도 또렷이 보여주고 있다. 하기에 이번 선거의 '반MB 민주대연합' 움직임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건 진정 외면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여장부 심상정의 눈물은 척박한 진보 현실의 눈물

 

진보신당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가 유시민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전격 사퇴했다. 비록 '반MB 민주대연합' 움직임을 지지하고 있었지만, 'MB정권 심판'이라는 국민적 여망에 따라 중도하차를 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선택을 보며, 진보의 꿈조차 자유롭게 펼칠 수 없는 현실, 대의명분 앞에선 고유의 꿈마저 접을 수밖에 없는 현실, 참으로 이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하고도 가슴 아프다.

 

특히 지난 대선 과정에서 지지했고, 진보적 정치인 가운데 누구보다 가장 아꼈던, 전문성과 실천력을 겸비하면서 늘 외유내강의 탄탄함을 잃지 않았던 당당한 여장부 심상정. 

 

"저는 지난 30년 동안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나라와 정직한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를 위해 한 뼘,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싸워왔습니다. 어떤 망설임도 없이 당당히 앞장서 민주화 운동을 했고, 졸업 후에는 자욱한 실밥 먼지와 기름 냄새 가시지 않은 구로공단에서 이 나라의 딸들과 함께 노동운동을 해왔습니다.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는 하루하루 배우고, 노력하는 가운데 국민의 대표로서 최선을 다해 일했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 자신의 소개글에 눈시울이 적셔지는 까닭도 그러하다. 

 

진보정치에 대한 국민적 애정과 제도적 배려 필요

 

그러기에 이번 결단이 이 땅의 진보정치의 쇠락과 퇴보를 부르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본다. 오히려 '큰 싸움'을 통해 진보적 세상의 꿈을 담금질하여 더욱 숙성시키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의미를 지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심상정과 진보세력의 분투노력과 함께 '반MB 민주대연합'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는 민주세력, 더 나아가 국민 모두의 진보정치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과 제도적 배려가 요구된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심상정의 고뇌에 찬 결단과 뜨겁게 흘린 눈물은, 유난히도 진보에게는 척박했던 이 땅에 진보정치의 씨앗이 확고히 뿌리내려 큰 나무로 자라날 그날이 오면, 진보정당이 제1야당 더 나아가 집권당이 될 꿈만 같은 그날이 오면, 산고의 진주알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되리라.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의 적극적인 선거 참여는 더없이 중요하다.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의 말이 아니더라도 선거 결과는 결국 우리들의 정치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지표이다. 현명하고도 신중한 한 표 행사가 요청된다. 백욕이 불여일표(百辱이 不如一票)!

  

 

여장부 심상정의 눈물은 척박한 진보 현실의 눈물 (오마이뉴스, 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