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때, <소통 불능의 이론>이라는 화두를 혼자서 끄집어낸 적이 있다. 그만큼 "소통"이라는 화두는 내게 인생을 통틀어
가장 어려운 단어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심지어 이는 내 인사평가 결과에서조차 내 발목을 붙잡기도 한다.)
뜻하지 않게 '소통'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그래도 여전히 그게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는 의미이자, 또 한편으로는
과연 내 그토록 철저하기만 했던 고민의 그 마지막 지점 이후로부터 과연 얼마나 더 그것을 '계승' 및 극복해내느냐의
더더욱 어려운 문제와도 맞닿는다.
"말 또는 글을 건넨다는 건 그 자체가 곧 <사랑>을 건넨다는 뜻이다." - 단테,
단적으로, 내게 소통을 위한 모든 시도는 결국 <러브레터>에 가깝다. 상대방의 마음을 열고자 하는 모든 시도들, ...
그리고, 그것들의 대부분이 언제고 제 마음대로는 썩 잘 안되기 때문에 겪어야만 할 절망감, 이를 일컬어 어쩌면
'짝사랑'이라고까지 해야만 하는 것인지도 모를까?...... (그렇다면, 모든 사랑은 결국 '짝사랑'이다.) 아무튼간에,
내가 <소통 불능의 이론>이라는, 그 어줍잖은 자존심만 막강하기 짝이 없을 개똥철학 따위를 고집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도도하게 또아리를 틀고 앉은 <무관심>과 <냉소>에 대한 내 적개심에 가까운 반감의 경험들에 기초한다.
반대로 내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무언가의 새로운 생각들을 해내려고 한다면, 분명코 나는 그것들에 대해서 좀 더
정교한 논리를 개발해내어야만 하는 것 또한, 어렵겠지만, 엄연히 해야만 할 일인 것도 분명해 보인다......
퇴근길에 문득 한겨레 칼럼들을 읽다가 김별아가 쓴 글의 그 "소통"이란 단어에 대해서도 생각을 곱씹어 해봤다.
비록 유행어처럼 오염된 그 자괴감과 조소어린 어조의 '소통'일 뿐이겠어도, 누구한테는 여전히 절실한 단어이자
또 다른 가치와 판단의 기준이 될만한 내용으로 이를 채워야 할 몫이 분명히 자신의 것임도 결코 잊어선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만 본다면, 이 매우 가혹하고도 얄궂은 운명이란 다름아닌 그 불가능한 소통을 위한 시도들의 몫이다...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하는 생각들까지도 말이야...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들,
한편으로, ...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사랑"이라는 거, ... '아끼고 또 보듬어주고픈' 그 마음가짐과 행동이야말로 어찌 보면 "소통"이 가능해지기 위한
거의 유일무이한, 기초이자 시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
'사랑' 따위가 도대체 왜 중요하냐고?...
그게 전제로 되어야만, 비로소, 그 다음의 "소통"을, 이 불가능하기 짝이 없을 도전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
...... ; "관심"을 갖고, "존중"하고, 또 "이해"하며, "배려"하는 일들 따위, 등이 말이지... "측은지심"까지도?
- 매트릭스 2, 그 당시의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었다는 말도 역시, "동의가 곧 협업의 전제조건은 아니다."
법사회학의 아버지 루돌프 폰 예링(1818~1892)은 1868년부터 4년 남짓 오스트리아 빈대학 교수를 지냈다. 그의 강의는 어찌나 인기가 높았던지 매번 수백명이 몰려들었고, 수강생 중 한 사람이었던 러시아 황태자는 예링을 가리켜 “인류에게 법학의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라고 일컫기도 했다. 1872년 대학을 떠날 때 예링이 했던 고별강연이 저 유명한 ‘권리를 위한 투쟁’이다.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1년여의 법정투쟁 끝에 해임 무효 판결을 받고 다시 해임 효력 정지 결정을 끌어내 출근투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예링의 강연문은 14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꼭 대한민국의 오늘을 눈앞에 두고 낭독하는 선언문처럼 읽힌다.
예링은 법학자답지 않게 처음부터 끝까지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지만, 그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이다. 법은 들판의 식물처럼 아무런 고통도 노력도 없이 저절로 꽃피지 않는다. 정의의 여신이 왜 한 손에 저울을, 다른 한 손에 칼을 들고 있는가. 칼이 없는 저울은 무력하기 때문이다. 법의 생명은 투쟁이다. 예링의 모토는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당신은 투쟁하는 가운데 스스로 권리를 찾아야 한다.” 권리를 지키는 일은 단순히 이해관계를 다투어 내 몫을 챙기는 일이 아니다. 권리를 지키는 것은 모욕당한 인격을 되찾는 일이며, 공동체 전체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다. 자신의 권리가 불법적으로 침해당하고 있는데도 권리 위에 잠잘 경우, 자신의 권리만 침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상황에 처한 이웃의 권리까지 침해당한다. 그러므로 권리 침해에 저항하는 일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일 뿐만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예링의 권리투쟁은 숭고한 공동체적 사명이 된다.
일본의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는 예링의 명제,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은 보호받지 못한다”를 헌법의 차원에서 숙고해 좀더 일반적인 결론을 끌어내기도 했다. “국민은 주권자가 되었다. 그러나 주권자라는 사실에 안주해 그 권리의 행사를 게을리하면, 어느날 아침 깨어나 보니 이미 주권자가 아니게 되는 그런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자유도 마찬가지다. 마루야마는 말한다. “자유를 축복하는 것은 쉽다. 거기에 비해 자유를 옹호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자유를 시민이 매일매일 행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민주주의는 ‘자유의 실천’, ‘주권의 실천’을 통해서만 비로소 살아 있는 것이 된다.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민주주의적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 자유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도 끊임없는 ‘민주주의 실천’을 통해서 간신히 민주주의일 수 있다.
김정헌 위원장이 법정투쟁을 통해 해임 무효 판결을 이끌어내고 다시 행정소송을 벌여 해임 효력 정지 결정을 받아낸 것은 개인의 권익을 넘어 공동체의 권익을 지키는 ‘권리투쟁’의 사례이자 ‘민주주의 실천’의 생생한 본보기라 할 만하다. 김 위원장은 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장이 자신의 출근을 막고 사태의 원인을 김 위원장에게 돌리자 “왜 그렇게 깡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닙니까!”라고 나무랐는데, 여기서 말한 ‘깡’이야말로 예링이 강조한 ‘불법에 대한 투쟁 정신’일 것이다. 예링은 자신의 강연문을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빌려온 문장으로 맺었다. “지혜의 마지막 결론은 다음과 같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쟁취하는 자만이 향유한다.” 싸우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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