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단연 화제다. 40%를 훌쩍 넘는 지지율을 꿋꿋하게 이어가는 배경이 무엇인지를 두고 말들이 많다. 잇따른 패착에도 왜 지지율이 좀체 떨어지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내심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는 사람도 많다.
개인적으로는, 과거 정권 시절과 견줘 봤을 때 이 대통령(또는 엠비 정권) 지지율이라는 '가격변수'의 변동성은 상대적으로 작을 것이라고 보는 편이다. 지난해 촛불정국 때처럼 커다란 낙폭을 경험하는 일은 단발성 에피소드에 불과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보수 성향의 고정 지지층이 탄탄하게 지지율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의 중도실용 행보가 국민의 마음을 빼앗았기 때문만도 아니다. 그 비밀은 어떤 배경에서 엠비 정권이 탄생했는지를 찬찬하게 따져보는 데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
툭 터놓고 말해, 엠비 정권의 탄생은 일종의 '계약결혼'의 산물에 가깝다. 계약 상대방은 물론 후보자(이 대통령)와 국민(유권자) 다수다. 특히 이른바 중산층은 솔직히 특정 후보자를 '지지'했다기보다 그와 쿨하게 '거래'를 했다고 보는 게 맞다. 인품(도덕성)이나 매력보다는 상대방이 갖춘 '조건'을 우선시하는 게 계약결혼판의 불문율. 실제로 '그'에겐 그럴싸한 몇 가지 성과물도 있었고, 무엇보다 자산가치의 지속적인 상승을 바라는 중산층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겠다는 철학도 확고하지 않았나. 적나라한 증시판 용어로 바꿔보자면, 필(!)이 꽂혀 자기만의 가치주를 사들인 게 아니라, 불안정한 세파에 5년 동안 그럭저럭 기댈 경기방어주를 선택한 꼴이다.
이런 상황에서 엠비 정권의 지지율 변동성이 작은 건 너무도 자연스런 결과다. 과도한 기대나 실망, 한마디로 비이성적 충동에 의한 '쏠림현상'이 들어설 자리는 애초부터 없는 탓이다. 으레 지지율의 급등과 급락은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 마치 지지고 볶듯 할 일말의 '연애감정'이라도 웅크리고 있을 때나 나타나는 법 아닌가.
이제 남는 건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느냐의 문제뿐. 계약이 깨지는 건 대체로 두 가지 경우다. 첫째는 계약 당사자들이 뒤늦게 다른 마음을 먹고 나설 때다. 그런데 그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정치인'인 대통령이 일정한 여론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이상행동을 보일 리도 만무하고, 무엇보다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 다수가 하루아침에 철없는(!) 연애 모드로 바뀌지도 않을 테니.
또다른 경우는 '정황상' 도저히 계약이 이행되기 어려울 때다. 이 점에서 최근 이 대통령이 '필살기'로 들고 나온 '중도실용론'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중도와 실용이란 단어는 아무런 충돌이나 갈등 없이 한 묶음의 신상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엠비 정부의 행태를 경제적 잣대로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과연 둘의 궁합이 끝까지 이어질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엠비 정부의 '중도실용론'은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를 뿌리째 뒤흔들 재정적자의 대재앙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감세정책의 근간을 흔들지 않으면서 임시방편식 지출만 늘려가는 '실용적' 행태는, 일시적으로 '서민을 따뜻하게' 해줄지언정, 결코 지속적으로 '중산층을 두텁게' 만들지는 못하는 모르핀주사일 뿐이다.
물론, 당장 계약결혼이 깨지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을 게다. 중요한 건, 지지율 고공행진의 묘약에 취한 엠비 정부가 지금과 같은 방식의 '중도실용론'을 고집할수록, 결말을 파탄으로 이끌 위기의 싹은 지금 이 순간에도 움트고 있다는 사실 아닐까.
최우성 금융팀장 morgen@hani.co.kr
- 고래로 있어온 권력투쟁의 구도가 드라마에서도 전개되는 양상.
명분과 실리보다 더 큰 화두는 사실상 '역사적 평가'다. 늘 그걸 간과해선 안된다.
역사마저도 '상대적'일 수 있다는 게 다소 분통은 터지지만, 그럼에도 말이지......
P.S. 어찌 보면, 위정자들의 손에 의해 씌어진 역사보다도 더 진실한 게 바로
신실하게 작가들의 손에 의해 씌어지는 <문학>은 또 아니겠는지?...
- 그래서, 창조적 진실이자 허구적 진실은 비로소 정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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