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일기

선덕여왕과 민주주의,

단테, 2009. 10. 6. 22:13

 

 

 

[손석춘칼럼] 대통령의 가슴

 

 

[한겨레] 가슴. 사람의 고갱이다. 한 사람의 품격을 짚을 때 우리는 그가 얼마나 돈이 많은가, 높은 자리에 앉았는가를 따지지 않는다. 명성도 학력도 아니다. 가슴이다.

무릇 사람의 '그릇'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다. 아픔도 그렇다. 머리 아플 때와 가슴 아플 때가 완연히 다르다. 어려운 이웃에 가슴 아플 때, 그 가슴은 아름답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떠난 연대, 사랑이 배어나기 때문이다.
 

한가위에 "정말 가슴 아프다"고 토로한 이명박 대통령의 가슴은 어떨까. "일자리를 얻지 못해 부모님 얼굴 뵙기가 미안해서 차마 고향에도 못 가는 우리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그렇단다. 십분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 연설은 거기서 전혀 나아가지 않는다. "내년 추석에는 모두가 선물을 한아름 안고 고향에 갈 수 있도록 더욱 우리 함께 노력해 보자"는 '덕담'에 그친다. 막연하다 못해 한가하다. 선입견을 아무리 지우고 보아도 대통령 가슴이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는다. 자연인 이명박의 가슴은 어떤지 모르겠다. 가슴 아프다고 누군가 말할 때, 우리는 그 진실성을 판단할 길이 없다. 그의 가슴이 따뜻한가는 오직 자신만이 알 뿐이다.

그러나 자연인 아닌 대통령 이명박의 가슴은 명징하게 짚을 수 있다. 청년실업이 참으로 가슴 아프다면 얼마든지 그것을 해결할 권력을 대통령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대안도 있다. 가령 천문학적 순익을 내는 대기업과 공기업에 기존 인력계획과 별개로 '청년고용 할당제'를 도입할 수 있다. 청년 고용률 목표를 설정하고 일정 규모가 넘는 기업에 지역별로 배분한 뒤 일자리나 직업훈련을 의무로 삼아야 옳다. 현재 정부가 몇몇 기업과 펼치는 '청년 인턴제'는 일회성 생색내기다. 가슴 아프다며 올바른 해결에 나서지 않는 대통령의 가슴은 차갑다고 단언할 수밖에 없다.

차가운 그의 가슴은 중소기업 방문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내 경험에 의하면 눈 뜨면 일할 자리가 있다는 것이, 그리고 끝나면 퇴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참 대단한 '경험'이다. 물론, 명절에도 일하는 노동자들 '격려'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이다. '고용 빙하기'를 맞은 지금 대통령이 할 일은 명절에도 일하고 싶은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줄 정책과 실행이다. 얼마든지 대안도 있다. 사회적 일자리의 전면 확대나 전국민 고용보험제도의 도입이 그것이다.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 방문한다며 요란 떨 일이 아니다. 실제로 도울 정책 대안들이 즐비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납품단가 물가연동제도 선결과제 가운데 하나다.

대통령의 오지랖은 < 한국방송 > 이 생방송으로 방영한 '사랑나눔 콘서트'까지 펼쳐졌다. 사회자 소개로 무대에 오른 그는 텔레비전을 통해 "과거 자신이 어려울 때" 이야기를 언죽번죽 또 들먹였다. 이어 남을 도와주는 일은 돈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며 "시간 있는 사람은 시간을, 경험 있는 사람은 경험을, 능력 있는 사람은 능력을" 부르댔다. 좋은 말이다. 시간을, 경험을, 능력을 나눠 남을 도울 일이다. 다만 정녕 묻고 싶다. 대통령 이명박은 무엇을 도울 수 있는가. 방송인이 방송으로 돕듯이, 대통령은 정책으로 돕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어떤가. 정작 대통령으로서 성실하게 실천할 수 있는 일엔 눈감은 채 '쇼'만 하고 있다면, 가슴 아프다는 대통령의 말이 정치적 타산에서 나온 입발림이라면 명토박아 둔다. 그 쇼는, 그 입발림은 가슴에 대한 모욕이다. 아프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가슴, 그 가슴에 차라리 연민을 느끼는 까닭이다.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최근 시청률 46.7%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보이며 화제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선덕여왕>, 결코 옛날 얘기가 아닌... ;

 

"백성은 진실을 부담스러워하며 희망은 버거워 하고 소통은 귀찮아하며 자유를 주면 망설인다"는 미실의 말, 그리고

"처벌은 폭풍처럼 가혹하고 단호하게, 보상은 조금씩 천천히" 하는 것이 지배의 기본이라고 가르치는, 그녀의 무게...

 

마치 파시즘과 민주주의 사이에서 갈등하게만 되는 현대사의 질곡 역시 이 고전적 드라마를 통해 투영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