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이제니 / funnypen@hanmail.net
빨강 초록 보라 분홍 파랑 검정 한 줄 띄우고 다홍 청록 주황 보라. 모두가 양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양은 없을 때만 있다. 양은 어떻게 웁니까. 메에 메에. 울음소리는 언제나 어리둥절하다. 머리를 두 줄로 가지런히 땋을 때마다 고산지대의 좁고 긴 들판이 떠오른다. 고산증. 희박한 공기. 깨어진 거울처럼 빛나는 라마의 두 눈. 나는 가만히 앉아서도 여행을 한다. 내 인식의 페이지는 언제나 나의 경험을 앞지른다. 페루 페루. 라마의 울음소리. 페루라고 입술을 달싹이면 내게 있었을지도 모를 고향이 생각난다. 고향이 생각날 때마다 페루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아침마다 언니는 내 머리를 땋아주었지. 머리카락은 땋아도 땋아도 끝이 없었지. 저주는 반복되는 실패에서 피어난다. 적어도 꽃은 아름답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간신히 생각하고 간신히 말한다. 하지만 나는 영영 스스로 머리를 땋지는 못할 거야. 당신은 페루 사람입니까. 아니오. 당신은 미국 사람입니까. 아니오. 당신은 한국 사람입니까. 아니오. 한국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 사람입니다. 이상할 것도 없지만 역시 이상한 말이다. 히잉 히잉. 말이란 원래 그런 거지. 태초 이전부터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무의미하게 엉겨 붙어 버린 거지. 자신의 목을 끌어안고 미쳐버린 채로 죽는 거지. 그렇게 이미 죽은 채로 하염없이 미끄러지는 거지. 단 한번도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안심된다. 우리는 서로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고 사랑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한다. 길게 길게 심호흡을 하고 노을이 지면 불을 피우자. 고기를 굽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술을 마시자. 그렇게 얼마간만 좀 널브러져 있자. 고향에 대해 생각하는 자의 비애는 잠시 접어두자. 페루는 고향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스스로 머리를 땋을 수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양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말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비행기 없이도 갈 수 있다. 누구든 언제든 아무 의미 없이도 갈 수 있다.
- (200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글쓰기를 잘한다는 축은 대개 탈사회과학적인 언사라거나 혹은 특정 거장에 대한 깊은 찬미를 내포하곤 한다. 그게 단점이 될 순 없겠지만, 그게 또한 한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거장 세계를 내딛기 위한 발걸음으론 무언가 큰게 부족해보일만한 점이 하나 있다. 그게 이 작품을 통해 읽혀진다면, 그건 나만의 이데올로기 과잉이거나 또는 투박한 글재주로 인한 질시 내지는 특정한 취향에 대한 지극히도 주관적인 거부감 따위일 테지...
아무튼, 새로운 형식 실험의 한 전형으로 빼어난 재주를 보인 작품이므로 읽어둘만한 가치는 이미 충분하다.
'- 단테노트 > 문학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석영 옹한테 실망했던 실제 이유 (0) | 2009.05.16 |
---|---|
김남주 시인의 산문을 읽다, (0) | 2009.03.05 |
일상성과 진실, 가장 큰 기본이자 가장 큰 덕목 (0) | 2009.01.19 |
범상치 않은 시작詩作 (0) | 2009.01.19 |
동그라미의 여성성, 약관의 초심에 거는 환상 (0) | 2009.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