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
이장근 / chamgeul@hanmail.net
결혼을 코앞에 두고
여자는 한강에 투신했다
이유를 묻지 않았다, 물은
여자를 결과로만 받아들였다
파문을 일으키며 열리고 닫히는 문
물은 떨어진 곳에 과녁을 만든다
어디에 떨어져도 적중이고 무엇이 떨어져도 적중이다
투신한 죽음도 다시 떠오른 삶도
물은 과녁을 만들어 적중을 알렸다
적중을 알리며 너는 왔다
온몸에 파문처럼 돋던 소름
빗나간 너의 말도 떨어지는 족족 적중했다
사랑처럼 민감한 것이 또 있으랴
이유 없이 떠나도 결과는 적중이었다
이유 없이 너는 가고
나는 안개 같은 거짓말로 너를
미워했다, 그리워했다, 지웠다, 썼다
사랑처럼 가벼운 것이 또 있으랴
구름이 되어 제멋대로 문장을 만들다
지치면 낱글자가 되어 떨어졌다
지금도 비가 온다 몸에 소름이 돋는다
네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이 밤 이 세상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랑이 투신할 것인가, 투신하는 족족
파문을 일으키며 적중할 것인가
- (200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현직 국어교사인 한 신인의 범상한 작품을 높이 평가하고자 하는 연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가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무척 선량하며 그것을 통해 좀 더 보편적이고도 공통적인 정서, 내지
시대를 아우를 수 있을만큼의 거대한 시세계를 더 감히 기대해볼만하다는 욕심도 앞섰겠지.
아무튼 "맑고 깨끗한 시"라거나, "따뜻한 감수성으로 정의와 양심을 얘기할 줄 아는 지혜와 용기"
따위는 비단 시세계 뿐만이 아닌 모든 글쓰기에 있어서의 큰 그리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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