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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일상성>에 대해서는 이리도 태클만 걸까?

단테, 2008. 9. 5. 23:58

 

 

 

문태준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본 게 아마도 문학회에서 희경이가 물어보던 때였지 싶다.

(아마도 그때가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을 갔을 때였던 것도 같은데, 내 무지에 아마

그 녀석도 적잖이 실망했었을 거라고도 짐작을 해본다만)

 

지난 주말에 찾은 도서관에서 문태준의 시집들을 몇권 빌렸었는데, 일과가 바쁜 나머지

오늘에서야 퇴근길에 시집 <가재미>를 읽어냈다.

 

서정주로 대표될만한, 국어의 아름다움을 실천하고자 하는 시인들이 다수 있다. 내가 좀

적잖게 불만스러운 그 경우들이 일상적인 언어보다는 알듯 모를듯한 우리말의 현란함인

경우들도 더러 있는데, 이는 예를 들자면 '톺아본다'거나 '엉겅퀴꽃' 등에서처럼 <전문적>

국어의 구사인데... 게다가 우연찮게도 그런 유형들의 거개는 국어 내지 국문학을 전공한

경우들이더구나. 문태준 시인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가 국문학을 전공해서였을까?

시집에서 심심찮게 읽히는 뜻모를 국어의 생소함 덕분에 다소는 불편했고, 물론 이는 내

무지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작 더 불만스러운 부분은 지난 시절의 공지영에게서 가장 크게 표출되던 바로

그 <일상성>이다. 왜냐하면, 내 주장의 거개가 그 <일상성>의 극복이며 또 한동안은 그

<일상성에의 매몰>을 경계하자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인데... 문태준의 시집을 통해 다시

그 예전 기억을 떠올리게 되더구나.

 

아무튼 뛰어난 형상화의 노력으로 인해 그가 몇년전엔가 소월시문학상을 탔던 기억들도

있고 하여, 더더욱 이 뛰어난 재량을 가진 시인이 좀 더 거시적 통찰이거나 역사적 표현,

내지 철학적 담화 등과 같은 쪽에서도 기량을 발휘한다면 훨씬 더 좋을 텐데... 따위 등의

불만이라면, 이건 솔직히 시기 따위는 더더욱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나랑 동갑이기도 한,

그가, 말이지.

 

 

물론... 어려운 얘기겠지만서도,

 

 

 

* 관련 링크들,

 

시 작품 몇편 (자작나무님의 블로그 중에서)

 

소월시문학상에 문태준씨 (연합뉴스, 2006)

 

"시인들이 좋아하는 시인 문태준 신작시집 ‘가재미’" (동아일보,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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