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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원의 추억, 이제 또 다른 한걸음을 내딛을 때

단테, 2008. 10. 1. 22:23

 

 

회복기(恢復期)의 노래

 

宋  基  元

 

 

  1

 
무엇일까.
나의 肉體를 헤집어, 바람이 그의 길고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꺼내는 것들은.

肉體 중의 어느 하나도 許容되지 않는 시간에 차라리 무섭고 罪스러운 肉體를 바람 속

에 내던졌을 때, 그때 바람이 나의 肉體에서 꺼낸 것들은.

거미줄 같기도 하고 붉고 혹은 푸른 色실 같기도 한 저것들은 무엇일까.
바람을 따라 한 없이 풀려나며 버려진 땅, 시든 풀잎, 오, 거기에서 새어나오는 신음을

어루만지며 어디론가 날려가는 것들은.
저것들이 지나는 곳마다 시든 풀잎들이 軟草綠으로 물들고, 꽃무더기가 흐트러지고,

죽어있던 소리들이 이슬처럼 깨쳐나 나팔꽃 같은 귓바퀴를 찾아서 비상하고...

 

 

  2

 

누님. 저것들이 정말 저의 肉體일까요? 저것들이 만나는 事物마다 제각기 內部를 열어

生命의 싱싱한 초산(醋酸) 냄새를 풍기고 겨드랑이 사이에 젖을 흘려서, 저는 더 이상

쓰러질 필요가 없읍니다. 굶주려도 배고프지 않고, 病菌들에게 빼앗긴 組織도 아프지

않습니다. 저의 캄캄한 內譯마저 젖물에 녹고 초산냄새에 스며서, 누님, 저는 참으로

긴 시간 끝에 때묻은 視線을 맑게 씻고 모든 열려 있는 것들을 봅니다. 모든 열려 있는

것들을 노래합니다.

 

격렬한 苦痛의 다음에는 鮮明한 빛깔들이 일어서서 나부끼듯이
오랜 주검위에서 더없는 生命과 빛은 넘쳐오로지.
열린 밤하늘과 수풀 있는 언덕에서
깊이 묻혀 깨끗한 이들의 희생을 캐어내고,
바람의 부드러운 촉루 하나에도
돌아온 死者들의 반짝이는 古典을 보았어.
저것 봐. 열린 페이지마다 춤추는 句節들을.
溺死의 내 눈이 별로 박히어 빛을 퉁기는 것을.
모든 허물어진 關係위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秩序를.

 

내가 품었던 暗黙의 思想은 반딧불 하나로 불 밝히고
때묻은 活字들은 밤이슬에 씻어냈어.
수시로 자라는 번뇌는 銀盤의 달빛으로 뒤덮고
눈부신 구름의 옷으로 나는 떠오르지.

 

포도알들이 그들 가장 깊은 어둠마저 빨아들여
붉은 果液으로 融和하는 밤이면, 그들의 暗去來 속에서
나도 한알의 포도가 되어 세계를 融和하고.

 

 

  3

 
무엇일까.
밤마다 나를 뚫고나와 나의 全體를 휘감아도는 은은한 光彩는. 숨기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스며나는, 마치 寶石과도 같은 光彩는.
스스로 아름답고, 스스로 무서운 저 光彩 때문에 깊은 밤의 어둠속에서도 나는 한마리 夜

光蟲이 되어 깨어 있어야 하지. 저 光彩 때문에 내 모든 부끄러움의 한 오라기까지 낱낱이

드러나 보이고, 어디에도 감출 수 없던 뜨거운 목소리들은 이밤에 버려진 갈대밭에서 저리

도 뚜렷한 名分으로 나부끼지. 두려워 깊이 잠재운 한덩이 뜨거운 피마저 이밤에는 안타까

운 사랑이 되어 병든 나를 휩쓸지. 캄캄한 삶을 밝히며 가득히 차오르지.
무엇일까.
밤마다 나를 뚫고나와 나의 全體를 휘감아도는 은은한 光彩는. 숨기려해도 어쩔 수 없이

스며나는 마치 寶石과도 같은 光彩는.

 

 

                

     

-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19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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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가장 교범에 가까운 작품으로 추앙해오던 이 詩를 오랜만에 다시 꺼내본다.

송기원. 그의 이름을 기린 작품을 썼던 기억도 있고 하여... 이제 또 다시 詩作이라는

낯설기만 한 일들을 꺼내본다는 것은 그만큼 용기와 자기확신을 필요로 하게 만든다.

어느덧 이 詩 역시 추억의 한켠으로 꽂아둔 채, 묵묵히 내 길을 걸어가야만 할 테지.

 

벌써 시월, 이제 한해의 농사가 그 결실을 거두고 평가해야 할 때다.

물론 그건 비단 농사 뿐만이 아닌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사에서도 마찬가지일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