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3370

천로역정(天路歷程), 혹은

. . 천로역정(天路歷程), 혹은 : 서시(序詩) . 김정웅 . . 지난 날 내 그대를 자욱한 눈물 없이 사랑함은 거처 없이 떠돌던 내 가난한 영혼이 살[肉]을 빌어서 그런 저런 세(貰)들어 살던 집들같이 땀냄새 진한 까닭일지나 . 이제, 내 사랑은 겨드랑이 가볍고 살을 버려서 살을 얻음 같음이니 그 사이 모나고 답답했던 단칸방을 벗어나 욕심줄인 은단(銀丹)알 같은 집 한 채 찾아 아담히 홀로 먼저 이사함 같음이니 . 그곳, 푸르고 단단한 둥근 청기와 가없는 담장 너머 아직 싹트지 않은 별들이 까마득히 박혀 숨쉬는 그런 곳 . 그대여, 내 나가는 곳 지금은 모를지나 어린 날, 수학여행 떠나기 전날 그 신새벽처럼 그렇게 뜬 눈으로 가슴 설레이게 하는 곳, . 유성(流星)이 옛 할아버지 흰 턱수염처럼 바람 ..

- 단테공부 2021.03.19

부린이로 산다는 것은

... 주말 오후에 집앞 공원길 사진을 한장 찍었습니다. 청초하기만 한 여름의 끝자락도 이제 제법 가을의 문턱을 넘어 또 하나의 계절을 향해 치닫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몬테소리님의 글을 읽었고 궁금해하신 강선마을 앞 호수공원 사진을 댓글삼아 선물로 드렸습니다, 누구는 한탄을 하며 '유식함' 속에 머물겠지만 또 누군가는 정진을 위해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는 말. 정작 그럴듯한 변명 중 하나인 "부린이"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무려 수십년 동안을 사고 판 집들임에도 여전히 각자는 "부린이"라는 허울 속에서, 그저 공인중개사의 말 몇마디와 이 카페에서의 글 몇줄로 수억원도 넘는 남의 빚과 내 전재산을 걸고 위험하기까지 한 도박을 감행하곤 합니다. (운전처럼 면허 같은 게 혹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

[근황] 이사

이사 / 원동우 아이의 장난감을 꾸리면서 아내가 운다 반지하 네평 방을 모두 치우고 문턱에 새겨진 아이의 키눈금을 만질 때 풀석 습기찬 천장벽지가 떨어졌다 아직 떼지 않은 아이의 그림 속에 우주복을 입은 아내와 나 잠잘 때는 무중력이 되었으면 아버님은 아랫목에서 주무시고 이쪽 벽에서 당신과 나 그리고 천장은 동생들 차지 지난번처럼 연탄가스가 새면 아랫목은 안되잖아, 아, 아버지 생활의 빈 서랍들을 싣고 짐차는 어두워지는 한강을 건넌다 (닻을 올리기엔 주인집 아들의 제대가 너무 빠르다) 갑자기 중력을 벗어난 새떼처럼 눈이 날린다 아내가 울음을 그치고 아이가 웃음을 그치면 중력을 잃고 휘청거리는 많은 날들 위에 덜컹거리는 서랍들이 떠다니고 있다 눈밭에 흐려지는 다리를 건널 때 아내가 고개를 돌렸다, 아참 장..

일산, 도시와 이미지 6

... 일산의 가장 큰 약점, 다름아닌 "자족성" 문제만큼은 이제 일산테크노밸리와 방송영상밸리 같은 지역적 호재들로 조금은 개선될 기미가 보인다는 뉴스들이 요즘 자주 등장합니다. 한차례 재검토 결정이 내려져 시끌시끌했어도, 창릉신도시와의 역할분담을 통해 어떻게든 관철시키겠다는 노력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재심사를 기다리는 중이죠. ... 사실 1기 신도시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핸디캡인 '베드타운'의 극복은 엄밀히 말해 교통 문제입니다. 결국 부족한 '자족성'을 대체할만한 구호로 "강남까지 몇분"이 갖는 수사학은 위성도시의 한계를 자인하는 꼴이겠죠. 메가시티로서도 충분치 못한 지방세수와도 직결될만한 이 문제로 결국 다수 지자체들이 분양사업에만 골몰하게 된 부작용도 영 만만치가 않습니다. ... 부족한 '자족..

일산, 도시와 이미지 5

... 현재 가장 활발한 상업지역인 웨스턴돔, 또 앞으로 가장 유망할 것 같은 킨텍스 주변의 상권들을 굳이 놔둔 채 가장 부진해져버린 옛 상권, 라페스타를 꺼내봅니다. 일산신도시에서 제일 먼저 생긴 보행권 중심의 쇼핑지역이기도 하고, MBC의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과도 얽힌 추억이 꽤 많이 있었죠. (원래는 2002년 월드컵을 목표로 건설되었는데, 막상 준공은 한발 늦은 2003년이었죠.) ... 한동안 정발산의 롯데백화점과 함께 원톱 위치를 형성하다가 2007년에 새로 생긴 웨스턴돔이 비오는 날을 배려한 지붕까지 얹으면서 새로운 트렌드에 맞는 가게들과 함께 일약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됩니다. 몰락해버린 상권에는 공실들이 넘쳐나고, 유흥가는 빽빽해지기만 하고 가장자리에 있는 술집들에선 왁자지껄한..

일산, 도시와 이미지 4

... 광장, 그리고 화두. 작고하시기 전까지 살았던 도시에 대해 갖는 큰 호감은 한겨레 인터뷰를 보면서 처음 느꼈던 감정인 듯합니다. 소설 '화두'에도 등장하던 서울예전 문창과 교수 시절의 에피소드들과 당대 최고라는 타이틀한테 사숙하면서 꿈을 그려본 시절들도 벌써 수십년전입니다. ... 몇년전엔가, 비로소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겨우 겨우 완독했던 겨울의 밤들이 또 있습니다. 이제는 '화두'가 아닌 '토지'를 자연스레 제 인생의 첫권으로 꼽게 되겠지만, 그래도 지난 청춘들의 방황과 사색 속에는 늘 광장, 그리고 화두가 함께 했다는 기억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 역시 작고하신 김현 선생은 '행복한 책읽기'에서 그를 "사상적 리얼리스트요, 문학적 모더니스트"로 평하기도 했습니다. 분단과 자본의 첨..

일산, 도시와 이미지 3

... 연희동, 상도동, 일산신도시와 명륜동, 다시 가회동 또 강남... 그리고, 구기동. 역대 대통령들을 배출한 동네들 중 단연 압권은 종로입니다. 전현직과 당적을 막론해 모두 네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이 '정치 1번지'가 공교롭게도 저한텐 그저 '직장'입니다. 출근길에 문득 대통령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 2002년 대선 때도 숱한 인파들 틈에서 검은 코트를 입고 연신 손을 흔들며 빌라촌을 나선 노무현 당선인의 모습을 TV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매번 당선인의 자택에서 첫 연설을 하는 장소까지 이동하는 경로가 핫한 생중계로 잡히다보니, 이젠 제법 익숙하고도 시들해진 풍경이기도 하네요. (흥미롭게도,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아직까지 아파트 단지를 나서는 대통령을 본 적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