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역사'의 배반과 '전망'의 배신을 겪더라도
- 오늘의 편지,
유엔 "역사 교과서는 하나가 아니어야"
[한겨레21]박근혜 대통령 연설한 그곳에서 2년 전 “과거를 ‘황금기’로 그리는 현상은 우려의 대상… (어떤 경우라도) 주입화는 용납 안 돼” 권고 나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월29일 유엔 총회에서 평화와 인권 등을 주제로 연설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연설을 마무리하며 “대한민국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유엔과 국제사회의 위대한 여정에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년 전인 2013년 10월, 박 대통령이 연설한 그곳에서 유엔은 총회를 열어 ‘문화적 권리 분야 특별조사관의 보고서’를 채택했다. 역사 교과서 서술과 역사교육의 방향을 집중적으로 다룬 이 보고서는 “하나의 역사 교과서만을 승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다양한 출판사에서 나오는 다양한 교과서들이 승인됨으로써 교사들이 그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특히 “정부는 필수적이고 투명한 기준들을 충족하지 못하는 교과서를 거부할 권한이 있지만 하나의 역사 교과서를 유지하는 것은 다른 시각까지 독점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보고서 67항)고 밝히고 있다. 이런 보고서의 권고안을 수용한 유엔의 ‘여정’과 동반하는 대신 박 대통령은 최근 역사 교과서를 하나로 통일(국정화)하기로 결정했다.
특별조사관 파리다 샤히드가 작성해 2013년 8월 제출한 이 보고서는 총 27쪽 93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보고서는 “국가가 역사 교과서를 하나로 줄이는 것은 퇴보적(retrogressive) 조처이며, 국가가 후원하는 교과서는 매우 정치화할 위험이 있다”(66항)고 우려한다.
<한겨레21>은 이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역사교육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과 우리 정부의 국정화 방침 사이의 간극을 살펴보기 위함이다. 이와 함께 이 보고서의과을 <한겨레21> 홈페이지 등 온라인에 함께 싣는다.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와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보고서 해석에 참여했다.
“정권의 목적으로 활용될 위험성”
“역사학은 세계적으로 교육체계에 필수적으로 포함되는 몇 개 과목들 중 하나”일 만큼 중요하다면서, “역사교육이 학생들에게 미칠 잠재적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을 보고서는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역사 교과서는 정부의 메시지를 최대한 광범위하게 전달하기 위한 결정적 도구로 여겨지게 된다”(66항)고 했다. 역사 교과서가 정권의 목적으로 활용되면 학생들의 잠재적 영향력에 미칠 결정적 도구가 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역사 서술을 하나의 교과서로 단일화하는 것은 다양한 시각과 논쟁의 공간을 축소시켜 학생들이 자기 나라와 지역, 세계의 복잡한 사건들이 품고 있는 미묘한 맥락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배제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보고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역사 교과서로 단일한 시각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보고서는 “역사교육은 비판적 사고를 촉진하고 다양한 관점을 수용해야 한다는 원칙에 바탕을 둬야 한다”(7항)고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이어 보고서는 “역사 교육은 비판적 사고, 분석적 학습, 토론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또 역사의 복잡성을 강조함으로써 다양한 시각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역사교육이 애국심 강화, 국가적 정체성 강화, (그 정부의) 공식적 이념이나 (그 사회의) 지배적인 종교가 이끄는 가이드라인에 맞춰 젊은이들을 길들이려는 목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88항의 a)고 권고한다.
그래서 보고서는 역사 서술을 하나의 교과서로 단일화하는 것은 “다양한 시각과 논쟁의 공간을 축소시켜 학생들이 자기 나라와 지역, 세계의 복잡한 사건들이 품고 있는 미묘한 맥락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배제시키는”(29항)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우려했다.
이런 위험이 있는데도 역사 교과서가 하나로 통일되는 것은 정부가 역사를 독점해 관리하겠다는 태도를 떨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진단했다. 보고서는 “권력자들이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학문 연구를 허용하지 않을 때 역사가 정부의 통제 아래에 있게 된다”(34항)며 “(역사에 대한) 연구 결과의 출판·보급을 제한하는 현상은 독재정권이 집권한 국가에서 흔히 나타난다”(49항)고 지적했다.
이런 국가에선 “특정 그룹의 역사학자들에게만 정부가 명성을 부여해 역사 서술을 독점하기도 한다”(50항)면서, 이렇게 되면 “국가가 역사 연구와 서술의 전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를 통해 정치적 색채가 들어간 단일한 역사 서술이 강요되기도 한다”(36항)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역사 교과서에서 벌어지는 특정 역사의 조작을 특히 경계했다. 교과서가 “광범위한 정보를 매우 제한된 공간에서 표현해야 하고, 몇 문장으로 내용을 서술해야 하기 때문에 조작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조작은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층에게 이념적 메시지를 고취시키는 데 효과적이지만, 그래서 역사 교과서가 아주 위험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선호하는 결론을 위한 서술”은 조작
보고서는 역사 교과서의 조작 방법(70항)으로 우선 “선택적으로 사실을 기술하는 것”을 꼽았다. “역사를 기술하려면 어떤 사실을 선택적으로 할 수밖에 없지만 고의적인 남용은 의도적으로 자기 목적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호하는 결론을 내는 방향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것, 특정 메시시를 전달하기 위해 사진 자료를 사용하는 것, 과거 사건에 대한 특정한 인식을 전달하기 위해 ‘해방전쟁·정복·반란·혁명’ 등의 특정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극적으로 묘사하는 것 등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미지 조작의 방법으로 소개했다.
특히 보고서는 “역사교육이 과거에 대한 적절한 정보 전달보다는 현재 지배적인 구조(권력)의 역사적인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과거를 ‘황금기’로 그리는 현상은 우려의 대상”(57항)이라고 밝혔다. 이는 “학문적 분야인 역사학의 특성에 부합되지 않는다”면서, “역사교육은 역사학을 하나의 학문 분야로 이해하는 것에 기초해 이뤄져야 한다”(87항)고 했다. 어떤 경우라도 “주입화는 용납되어선 안 된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보고서는 “역사교육에 있어서 다양한 관점의 접근법을 발전시키는 여러 방법들이 (결국) 정부의 손에 달려 있다”면서 역사교육을 위한 유엔 차원의 권고안을 이렇게 정리했다(52항과 88항 참조).
1. 역사교육의 적절한 목표를 세울 것
2. 국가, 지역, 세계 역사 간의 적절한 비율을 정할 것
3. 역사가 정치사에만 국한되지 않도록 할 것
4. 다양한 종류의 역사 교과서 중에 교사가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교사가 보충교재를 사용할 수 있는 자유를 줄 것
5. 역사 교과서를 조작하거나 그것을 남용하지 않도록 의식을 높일 것
6. 암기식의 교육보다는 분석·통합·비판적 사고를 장려하는 평가제도를 갖출 것
7. (역사) 교사들의 학문적 자유와 단체 결사의 자유를 존중하고, 그들을 공격과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것
8. 교사들이 역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다양한 관점의 접근법을 학생들에게 소개할 수 있도록 역사 교사들의 교육과 훈련을 보장할 것
9. 역사 교과서를 쓸 때 다양한 공동체·그룹과 상의해야 하지만, 역사 교과서 저술은 역사가들에게 맡길 것
“보충교재를 교실에서 사용하도록”
보고서는 다양한 역사 교과서를 보장해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교사와 학생들은 기존의 역사 서술을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따라서 단 하나의 교과서만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 보충교재 사용을 허용하고 역사 자료들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동체는 언제나 다양한 세력이 존재하고, 이는 역사 서술이 획일적으로 이뤄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을 뜻한다.”(54항)
“정부 권위자들의 허락 없이도 보충교재를 교실에서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역사교육이 정치적 노력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곳에서 특별히 중요하다. 교사들은 보충교재를 사용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정치사 이외의 역사 영역을 소개할 수 있고, 이는 정치사라는 좁은 영역보다 (역사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더 끌 수도 있다.”(71항)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방침 발표 이후 반대 여론이 일자 “올바른 역사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우리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올바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고 자라나도록 가르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서 중요한 일”이라고 국정화를 추진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또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가치관을 확립해서 나라의 미래를 열어가도록 하는 것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우리가 필연적으로 해주어야 할 사명”이라고 말했다. 국가가 주도하는 하나의 역사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겠다는 뜻이다.
2013년 유엔이 총회에서 채택한 이 보고서에는 ‘올바른 역사관’이란 말 대신 ‘역사에 대한 다양하고 비판적 시각’이란 표현을 주로 쓰고 있다. 그것이 역사교육의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편협한 민족주의, 인종주의 등을 극복할 수 있도록 초국가적 관점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역사교육은 역사가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일이다.”(54항)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의 서술을 정부가 주도하면 인권적 시각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정치적 의제 혹은 기득권의 단일한 시각을 촉구하게 되면 역사교육은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문화적 다양성과 역사 서술의 다원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86항)
송호진 기자dmzsong@hani.co.kr
* 한겨레21, http://media.daum.net/zine/newsview?newsid=20151020174108713
- 편집하는 말,
온갖 악정들을 작심한듯 쏟아내는 현 정부가 '노동개악'에 이은 핵폭탄급 뉴스들이 도대체 이 시대, 산적한 현안들과 더 불투명한 경제정책 등에 과연 무슨 보탬이 될까? 참 회의적 시각을 갖고 본다. 하물며 그 일련과 과정과 절차들은 결코 민주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음험한 '쿠테타'의 잔향을 짙게 풍기고 있으니... 이 시절을 통탄해야 할까, 투쟁의 전선을 감행해야 하나 고심스럽기만 하구나.
이는 비단 사회에서뿐만이 아닌 소소한 회사생활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생기곤 하는 일. 얼마전에도 연초에 구상한 개인 CDP (Career Development Program)이 몇몇 의사결정권자들에 의해 훼손되고 무시되는 사례를 알게 됐고, 이러한 일들이 횡행할수록 회사의 미래 또한 더더욱 어두워질 것임을 잘 알고 있기에 또 한번 직장인들의 비루한 삶을 목도하는 편. 미국 오바마 대통령 말대로 "모두들 노조에 가입해야" 할 때인지도 모르지...
절치부심 끝에 내 거취 또한 잠정적 해답들을 찾고 있는 요즘, 이 암중모색의 과정도 불과 며칠밖에 남지 않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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