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동사니/뉴스레터

2015년 2월 1일 (일)

단테, 2015. 2. 1. 10:34

글 / 2월이구나...  


- 오늘의 편지, 

   

   

    

[양정훈의 Vive o 호주 ③·끝] 한국 축구의 미래는 밝다 

    

    

(베스트 일레븐=시드니)
  
위기의 대표팀

한국 축구의 월드컵 본선 도전 관련 기억을 돌이켜 보면 2014 FIFA(국제축구연맹) 브라질 월드컵만큼 거센 후폭풍 맞은 적도 드물었던 것 같다. 이전까지 홈 4강과 원정 16강 위업 뒷면으로 몇몇 대회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충격 수준은 실망 정도에 그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브라질은 악몽이었고 한국 축구는 암흑기를 맞이하는 듯 했다. 대표팀과 그 주변을 둘러싼 제반 요소들이 몽땅 신뢰를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조롱의 대상으로까지 전락했다. 일부 선수들에겐 놀림의 수식어가 호칭처럼 붙어버렸으며, 한국 축구의 레전드였던 감독은 명예롭지 못하게 물러났다. 이상 조짐은 뜻밖의 곳에서도 곪아 터졌다. 신뢰를 향해가는 건전한 의심이 아니라 제 몸을 부수고 깎아 내리려는 정치적 의도의 표적 꼴을 면치 못했다. 악의를 지닌 자들에게 약점 잡힌 추한 모습에까지 직면한 것이다.

 

월드컵은 일시적으로나마 국민 전체를 축구팬으로 흡수하는 강력한 이벤트다. 금방 식어버리는 월드컵 열기를 '냄비'라 비꼬아 표현하기도 하지만, 결국 축구판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보듬고 함께 가야 할 대다수의 체온이기도 하다. 신뢰 상실의 계기가 월드컵인 것이 더욱 뼈저린 까닭이다. 신뢰는 믿음이고, 믿음 없이는 사랑할 수 없다. 다른 논리는 차치하고 '사랑하기에 사랑한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우리 축구가 더 많은 사랑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려거든 잃은 신뢰를 돌려놓아야 했다. 사랑으로 이어갈 단서를 마련해야 했다.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책무이며, 그래서 그라운드 위 격렬함을 직접 경험한 이들이 내는 자성의 목소리는 더 높았을 것이다. 이벤트성 프레월드컵 대회인 컨페더레이션스컵을 논외로 하면 대륙의 챔피언을 가리는 아시안컵은 월드컵 다음가는 최고 권위 대회이다. 신뢰를 회복하려 한다면 다시금 관심이 집중되는 2015 AFC(아시아축구연맹) 호주 아시안컵이 시기상으로도 절호의 기회였다.

선수들의 의지

그라운드 위 선수들이 신뢰를 상실한 이유는 단순히 패배라는 결과물 때문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강한 승리 의지를 가지고 사력을 다해 시합에 임했을 때 비록 패했더라도 결과와 무관하게 격려가 보태져 더 커진 박수를 받았던 적도 있다. 무더웠던 1994년 여름 독일과 맞서 장렬히 산화한 FIFA 미국 월드컵이 좋은 본보기다. 석패했지만 월드컵 도전사에 레전드 매치로 기록돼 있을 만큼 자랑스러운 경기로 기억에 남았다. 브라질에서는 등에 짊어진 국가대표로서의 영광스러운 부담감을 너무 쉽게 여긴다는 오해를 샀다. 어쩌면 오해가 아닌 실제였을지도 모른다. 리더의 부재, 팀 관리의 허술함, 기후적응의 실패 등 내외의 환경적인 요인 또한 변명거리가 될 수 없었다. 전통적으로 정신력을 강조해온 '대한민국'다운 플레이는 스타디움에서 종적을 감췄다. 이기겠다는 모두의 의지가 합해져 표출되는 조직의 생기와 조화되는 개인의 헌신은 한국과는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호주 아시안컵을 치르면서 점점 우리의 이야기가 돼갔다. 피상적인 느낌이 아니라 전술로 구현되는 모습을 목격했다. 축구는 "볼이 없는 곳에서 승부가 결정된다"라고 단언하는 저명한 축구 평론가의 주장이 있다. 축구의 본질에 상당히 근접하기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선수에게 볼이 없는 상황을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승리를 향한 강력한 의지 표출의 관점에서는 '볼을 빼앗긴 직후 상황의 수비 가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당한 하드워킹을 요구하는 고난도 작업이며 의지가 집중과 헌신으로 표출되는 현상이다. 포지션에 구애 없이 볼을 빼앗긴 후 다시 빼앗아 오기 위해 몸싸움을 불사하고 자기 골문을 향해서라도 수십 미터를 전력 질주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박지성을 위대한 선수로 만든 바로 그러한 움직임들이 이번 대회 공격의 빌드업을 담당했던 선수들에게 자주 비춰졌다. 멀뚱히 서 있거나, 따라붙는 시늉만 하던 지난 월드컵 때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또 하나를 들자면 상대 진영부터 수행하는 적극적 '프레싱'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압박'이라 통칭하고 있는 플레이에는 여러 형태의 플레이가 혼재해 있다. 최전방 공격수가 볼을 소유한 상대 최종 라인의 기점 선수를 단독으로 따라붙는 '포어 체킹'도 흔히 압박라 부른다. 하지만 압박이 '체이싱'이 아니라 '프레싱'의 의미라면 반드시 2인 혹은 그 이상의 동료와 연동하는 움직임이 나타나야 한다. 공간을 메우면서도 라인 간 폭과 라인 내의 좌우 간격을 유지해 나가며 상대 공격을 방어하는 조직적 움직임이야 말로 의도의 동기화로 표상되는 의지의 집합체다. 마음이 맞아야 하고 목표를 공유해야 가능한 높은 수준의 플레이다. 조금만 가다듬으면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어설픈 '프레싱'이 난무했던 몇 개월 전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예와 같은 단서만으로도 의지를 의심하며 등 돌렸던 팬들의 신뢰를 되찾기에 부족함이 없다. 국가대표라는 명예로운 자격을 보다 깊게 이해한 선수들은 충분히 의지를 표출하려 애를 썼고, 그 노력은 보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감동으로 전달됐다.

 

합리적 감독

지금까지의 성과만으로 슈틸리케 감독의 성패를 거론하기엔 분명 이르다. 그가 한국에 이식하고자 하는 '본질'은 다소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영역에 해당한다. 시스템 담론이 축구팬들 사이에서 과장되게 횡행하는 이유는 가장 접근하기 쉬운 표피여서일지도 모른다. 껍데기만을 논하는 감독은 2류나 3류다. 축구의 본질은 상대적으로 간단명료하지만 사고와 심리, 나아가서는 철학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말로 또는 글로 다루기가 제법 까다롭다. 하물며 그 본질에 대한 개념을 한 나라 축구 전반에 옮겨 심으려고 전력투구하는 감독의 작업은 난해할 뿐만 아니라 꽤 오랜 시간이 요구되는 일일 것이다. 사고체계를 변화시킨다는 일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일희일비를 경계하며 여유를 가지고 진중히 지켜보아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의 길이 옳은 방향임을 확신한다. 대표팀의 근간이 되는 K리그를 신중히 살피는 행보, '시스템'등 지엽을 다루는 질문에 본질적 답변으로 대응한 일화, 국내 지도자들을 상대로 한 강연의 내용, 불필요한 요인을 배제하는 선수 선발 과정, 팀원 전체의 승리 의지를 고취시키는 하이파이브 입장 세리모니 등등 여러 사례를 종합해 보면 전술과 테크닉 피지컬과 심리, 즉 축구의 본질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조화시키는 균형 감각이 절묘하다. 감독이 지닌 합리성의 기반 위에 확고히 뿌리내리고 있는 감각이기에 흔들림도 덜할 것이다. 현재 세계 축구의 패권을 쥐고 있는 독일을 위시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높은 수준의 남미, 유럽 축구와도 상통하는 바다. 홈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었던 히딩크가 족집게 과외 교사였다면, 슈틸리케는 교과서를 중시하는 정통파 선생님에 가깝다. 진득하게 믿고 맡긴다면 우리 축구에 오랜 밑거름을 마련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운과 때도 잘 맞아 들어간다. 새 감독 부임 전부터 이미 선수들을 중심으로 꿈틀거리는 재생의지가 느껴졌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신태용 코치가 팀을 임시로 지도할 때에 보여준 의지 표출의 성과가 시사하는 바대로다. 발전을 채찍질하는 긍정의 자극을 겸허히 수용할 자세가 돼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논리로 팬들을 설득하지 못해 신뢰를 박탈당하는 사건이 재발할 일도 없지 않을까 싶다. 의심이 남았다면 신뢰를 향한 과정으로 전환시키고, 이미 신뢰한다면 더욱 폭을 넓혀 지지할 필요가 있다.

미래는 밝다

결승에서 다시 만난 호주는 피지컬의 우위를 주무기로 삼던 낡은 향취의 팀이 아니었다. 유려한 볼터치와 정교한 방향 전환 그리고 패스를 통해 얻어지는 점유율 우위를 장착하니 명실상부 아시아 최강자로서 손색없었다. 좌우를 넓게 사용하는 공격 전개를 벌이다 직선 방향 패스로 빠르게 전환하는 움직임과 볼을 향한 강한 집중력은 준결승까지 무실점을 자랑하던 대한민국의 수비를 뚫어 낼만한 예리한 창이었다. 경기 내용과 승패가 반드시 이어지지는 않는 게 축구라지만, 결승전은 잘한 팀이 이긴 결과가 나왔다.

연장 접전 끝에 호주에 1-2로 패했지만 후반 종료시간 따라붙은 집중력은 승리 의지를 강력하게 표출한 훌륭한 결과물이다. 좁은 공간에서 시간에 쫓기면서도 침착하게 득점을 만들어낸 한국영·기성용·손흥민의 콤비네이션은 맥없이 무너졌던 지난 월드컵의 잔상을 말끔히 지워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감독의 역량도 주목을 받은 대회였다. 대회전부터 이어진 부상, 질병으로 정예 스쿼드를 꾸리지 못했단 걸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고도 볼 수 있다. 비록 우승 문턱을 넘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참 잘했다. 2등도 괜찮다는 위로 섞인 칭찬이 아니다. 선수와 감독 등 팀 전체가 팬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잘했다는 의미다. 신뢰는 믿음이고 믿음은 사랑으로 이어진다. 커진 사랑의 범위가 대표팀에서 K리그를 위시한 축구 전반으로 자연스레 번져나가길 기원한다. 이런 선순환의 시발이 이번 아시안컵이 된다면 우리 축구의 미래는 밝다.

글·사진=양정훈 칼럼니스트(derutan@officelfp.com)
 

 

* 베스트일레븐, http://sports.media.daum.net/sports/soccer/newsview?newsId=20150201094503295 

                           


- 편집하는 말,   

     

55년만의 아시안컵 결승 무대는 여러모로 참 아쉽지만 또 현재 위치와 형편에서 우승이라는 값진 선물을 얻기엔 아직도 꽤나 가야 할 길이 멀리 있음도 동시에 일깨운다는 점에선 준우승이라는 성적에 크게 낙담할 일도 없이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한다. 어느덧 2월... 아이들의 방학이 곧 끝나 개학과 함께 등하교길마다 다시금 물밀듯 터져나올 함성들도 그리울 법한데, 내 주변 역시 새로운 본사에서의 생활 또 새로운 팀에서의 적응 등으로 한동안은 꽤나 정신없이 흐를 전망이다.

 

최선을 다하는 자만이 축배를 들 자격이 있다.

 

일요일 오전, 모처럼 여행을 떠나볼까 하는 차례. 올해 들어 첫 여행일까? 기분도 전환하고 맛난 음식도 구경하며 재미있게 마지막 주말을 가져보려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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