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미생'에서 '완생'으로
- 오늘의 편지,
미생(未生)이지만 생물(生物)이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대신, 실시간 살아 움직였다. 2013년 완간된 만화가 2014년 드라마로 되살아났다. 만화 속 캐릭터는 움직임과 목소리를 얻었다. 10월부터 방영된 tvN 드라마 <미생>은 거의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시사IN>이 꼽은 '올해의 인물' 문화 분야는 가장 뜨거운 논의를 거쳤다. 결국 평소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던 기자조차 유료 결제를 통해 다운받게 만든 <미생>에 힘이 실렸다.
<미생>은 간단히 말해, '낙하산 계약직이 버티는' 이야기다. 프로 바둑기사 입문에 실패한 고졸 출신 장그래가 대기업에 '낙하산' 인턴으로 들어가 계약직이 된 뒤 영업3팀의 오 과장, 김 대리와 일하며 성장해간다. '이왕 들어왔으니까, 어떻게든 버텨봐라. 여긴 버티는 게 이기는 데야.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아간다는 거니까.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드라마 속 대사처럼 출퇴근 시간 만원 지하철과 버스를 견디고, 박봉과 야근을 견디는 직장인들의 폭풍 공감을 샀다. 누리는 삶보다 버티는 삶을 사는 현대인의 이야기다.
↑ ⓒtvn : 드라마 <미생>은 고졸 장그래(왼쪽·임시완 분)가 대기업에 들어와 겪는 일을 실감나게 그린다.
<미생>의 미덕은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루는 데 있다. 사실적인 묘사와 설정이 설득력을 지닌다. 오랜 취재를 바탕으로 한 원작의 힘이기도 하다. 회사를 배경으로 연애하거나 싸우는 작품은 수도 없이 많다. <미생>은 배경이던 회사를 중심에 둔다. 좁게는 회사원, 넓게는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 모두 장그래였거나 장그래다. 오 과장과 김 대리처럼 품성과 능력 면에서 거의 완벽한 상사를 찾기는 어려워도 영업3팀 자체는 있을 법하다. 조직에 소속돼 가끔은 '먼지 같은 일을 하다 먼지가 되어버린 느낌'을 받지만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는' 것처럼 우습게 볼 일만도 아니다. '대책 없이 파이팅' 같은 섣부른 충고도 없다. 대신 말한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만화도 200만 부 돌파
또 하나의 공감 요소는 비정규직이다.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의 경비원도, 영화 <카트>의 모델이었던 이랜드 파업 당시 마트 노동자도 계약직이었다. 전국 5만여 커피숍의 직원도 비정규직이고 수많은 청년들의 미래 또한 장그래다. 그런 면에서 판타지와 현실이 적절히 섞여 있다. 고졸 출신의 장그래가 학벌 좋은 동기들을 물리치고 신입사원에 뽑힌다. 현실에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실감나는 건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의 벽이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만 경계는 명확하다. 그건 현실이다.
웹툰을 기반으로 했지만 <미생> 열풍은 '드라마'라는 매체의 특성에 힘입은 바 크다. 만화 <미생>은 드라마의 인기와 큰 할인 폭에 힘입어 11월25일 판매부수 200만 권을 돌파했다.
<미생>을 전후해 예능 프로그램에도 회사가 등장한다. tvN <오늘부터 출근>과 KBS <투명인간> 역시 직장을 소재로 한다. tvN은 신년 특별기획으로 <미생>의 패러디물 <미생물>을 준비 중이다. 우리 모두가 미생이라고 했다. 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인 하루를 사는 우리 모두 '올해의 인물'인 셈이다.
임지영 기자 / toto@sisain.co.kr
* 시사IN,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1230131407788
- 편집하는 말,
연말을 전후한 모든 화제와 화두의 중심에는 드라마 "미생"이 있다. 영업3팀이 펼쳐나가는 이야기 중심에는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많은 다수를 이루는 이른바 '을'의 세계가 펼쳐진다. 늘 '일' 얘기만 강조해도 실상으로는 늘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공간, 직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에피소드들은 사회상 전반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리얼리즘의 성취가 이런 식일까... 그 생각을 해보았다.
계약직 신분을 극복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보인 장그래, 가장 평범한 직장동료이자 가장 쉽게 감정이입을 해 동화될 수 있는 또 그래서 가장 정이 많이 가는 김대리, 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시대의 돈키호테이자 패배자인 오차장이 그 이야기의 중심이자 곧 이 사회의 가장 전형적이고 또 문제적인 인물들인 셈이다. 여전히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되지도 않았고, 또 순수한 청년들이 단지 일만으로 승부를 걸기엔 직장이라는 사회도 비정할만큼 정치적이기만 하고, 오로지 책임감만으로 그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낼 재간 또한 없기 때문일까. 그래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세사람을 향하던 내 시선 또한 한없이 측은함과 동질감과 회한 섞인 그리움 따위로 정리되곤 했나 보다.
어쨌든 연휴도 끝나가는 무렵, 다시 직장에 출근해야 할 새로운 한주도 코앞인데 내 일상적 삶 또한 이 드라마와 그리 크게 다르진 않아고도 본다. 나 역시 '미생'이요, 언젠간 '완생'을 향해 문 하나를 매일같이 열고 또 여는 일상이 지배하리라. 또 그 과정을 통해 무언가는 깨닫고 배울 테지...
단 한번, 정의가 살아 숨쉬고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시대를 꿈꾸었나. 아니다. 이는 여전히 꿈이 아닌 현실적 목표이어야 하며 현재는 아직도 그 과정 한가운데다. 그러므로, '미생'은 단지 드라마 한편이 아닌 삶 자체이자 구체적 승리 또 성공의 의미에 대한 본질적 추구를 해야 한다. 그 대상이 비단 한 공간이나 조직 또는 사회, 더 나아가 역사의 한 과정이 되기 위한 의미를 갖기 위함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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