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미생'의 결말을 예감하며
- 오늘의 편지,
[심사직설] 땅콩 회항과 미생
유년기 과도한 충족은 이해ㆍ공감력 저하로 이어져
'욕구 충족'과 '좌절'의 균형 찾기가 중요.
땅콩 회항, 당사자의 성찰이 뒤따르길
한 사람의 인격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기질'과 자라는 과정에서 경험하여 축적된 '성격'으로 구성 된다. 타고난 특징인 기질은 바꾸기 어렵다. 타고난 기질도 중요하지만 이후 성장과 발달의 과정에서 어떻게 양육되고 어떤 관계를 형성하며 자랐는가도 매우 중요한 인격 형성의 과정이다.
인격의 성숙한 발달을 위해서 먼저 욕구에 대한 충분한 충족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리 분별을 할 수 없고 그저 자신에 대한 분화되지 않은 존재감을 어렴풋이 느끼는 신생아의 경우, 울면 먹이고, 달래고, 빨리 기저귀를 갈아 주어야 한다. 바깥 세상으로부터 제공되는 자신의 욕구에 대한 충족으로 인하여 아이는 세상은 믿을 수 있는 곳이고 또한 세상은 나를 위해서 돌아갈 수 있다는 신뢰감을 몸 전체로 느끼게 된다.
이처럼 세상에 대한 긍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경험은 자신에 대한 존재감을 더욱 확고히 하지만, 계속 욕구 충족만을 경험할 수는 없다. 한 예로 아이가 한 살이 되면 자연스럽게 용변 처리에 대한 세상의 강력한 요구에 직면하게 된다. 소변이 마려울 땐 화장실에 가겠다는 의사표현을 하라는 요구를 받고 이를 수행 못하면 꾸중을 듣는다. 이후 점점 어머니는 아이에 대한 강도 높은 훈육을 시작하고 자식의 문제 있는 행동에는 야단을 친다. 아이가 커감에 따라 아이는 자신의 욕구 충족과 더불어 적절한 좌절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탐나는 장난감을 요구하고 막무가내로 요구해도 어느 순간에는 어머니의 단호한 거부로 아이는 결코 장난감을 가질 수가 없다.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적절한 좌절을 경험해야 아이는 세상은 쉽지 않은 곳이며 남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고 현실의 벽은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론, 과도한 좌절 경험 역시 좋지 않다. 좌절이 많으면 자신감을 잃고 세상과 담을 쌓거나 세상을 증오하게 된다. 반대로 욕구 충족이 과도해도 문제가 된다. 즉각적인 충족 경험만을 한 사람은 미성숙한 자신감으로 인해 안하무인이 되거나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지하는 '마마보이'나 '마마걸'이 될 수 있다. 좌절 없이 계속 욕구 충족이 된다면 자신에 대한 부풀려진 존재감은 극대화되고, 그래서 세상을 얕잡아 보게 된다. 그 결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무뎌진다. 다른 사람은 그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하수인이자 소모품일 뿐이다. 그래서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결여된다. 나의 주장이 항상 옳고 나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남들이 보기에 그의 행동은 건방지고 미성숙하지만 자신은 자신이 대단하고 특별하다고 느낀다. 자신의 말이 먹히지 않거나 비난을 들으면 과도하게 분노한다. 이런 인격 성향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자기애적 인격'이라고 한다.
한 단면만을 보고 정신의학적인 진단을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이른 바 '땅콩 회항'과 인기 연속극 '미생'이 대비적으로 보이면서 더욱 자기애적 인격 성향이 자꾸만 떠오른다.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발달 과정에서 적절한 좌절의 경험이 없고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과도한 자신감이 부풀려 졌다면 비극이다. 돌고 돌아 자신에게 가장 큰 비극이며 돌고 도는 동안 상처받았을 수많은 미생들의 그 자괴감은 또 어쩌란 말인가? '이번 일이 재수 없이 걸린 일이고, 신이 나서 떠들어 댄 언론 탓이며, 나의 지적과 비판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 없다.'라고 만에 하나라도 생각하고 있다면 단언컨대 더 큰 비극이 온다. 부디 이번 사건이 계기가 되어 당사자에게 큰 성찰과 발전이 있기를 바란다.
진정으로 위로하고 싶은 이들은 현재 이 땅의 수많은 미생들이다. 세상이 그들에게 험난할 지라도 한 순간 자괴감과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있을 지라도 결코 증오를 키워서는 안 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막연한 충고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그 과정을 나의 큰 도전으로 인식하고 해결 과제로 삼아 돌파하든 우회하든 피하던 간에 소중한 인생 공부를 하길 바란다. 부정적인 감정을 키우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될 뿐이다. 땅콩 회항도 미생도 현재 우리나라 양극의 단면이며 그 책임은 우리 기성세대에게 있다.
기선완 국제성모병원 기획조정실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욕구 충족'과 '좌절'의 균형 찾기가 중요.
땅콩 회항, 당사자의 성찰이 뒤따르길
한 사람의 인격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기질'과 자라는 과정에서 경험하여 축적된 '성격'으로 구성 된다. 타고난 특징인 기질은 바꾸기 어렵다. 타고난 기질도 중요하지만 이후 성장과 발달의 과정에서 어떻게 양육되고 어떤 관계를 형성하며 자랐는가도 매우 중요한 인격 형성의 과정이다.
인격의 성숙한 발달을 위해서 먼저 욕구에 대한 충분한 충족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리 분별을 할 수 없고 그저 자신에 대한 분화되지 않은 존재감을 어렴풋이 느끼는 신생아의 경우, 울면 먹이고, 달래고, 빨리 기저귀를 갈아 주어야 한다. 바깥 세상으로부터 제공되는 자신의 욕구에 대한 충족으로 인하여 아이는 세상은 믿을 수 있는 곳이고 또한 세상은 나를 위해서 돌아갈 수 있다는 신뢰감을 몸 전체로 느끼게 된다.
이처럼 세상에 대한 긍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경험은 자신에 대한 존재감을 더욱 확고히 하지만, 계속 욕구 충족만을 경험할 수는 없다. 한 예로 아이가 한 살이 되면 자연스럽게 용변 처리에 대한 세상의 강력한 요구에 직면하게 된다. 소변이 마려울 땐 화장실에 가겠다는 의사표현을 하라는 요구를 받고 이를 수행 못하면 꾸중을 듣는다. 이후 점점 어머니는 아이에 대한 강도 높은 훈육을 시작하고 자식의 문제 있는 행동에는 야단을 친다. 아이가 커감에 따라 아이는 자신의 욕구 충족과 더불어 적절한 좌절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탐나는 장난감을 요구하고 막무가내로 요구해도 어느 순간에는 어머니의 단호한 거부로 아이는 결코 장난감을 가질 수가 없다.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적절한 좌절을 경험해야 아이는 세상은 쉽지 않은 곳이며 남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고 현실의 벽은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론, 과도한 좌절 경험 역시 좋지 않다. 좌절이 많으면 자신감을 잃고 세상과 담을 쌓거나 세상을 증오하게 된다. 반대로 욕구 충족이 과도해도 문제가 된다. 즉각적인 충족 경험만을 한 사람은 미성숙한 자신감으로 인해 안하무인이 되거나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지하는 '마마보이'나 '마마걸'이 될 수 있다. 좌절 없이 계속 욕구 충족이 된다면 자신에 대한 부풀려진 존재감은 극대화되고, 그래서 세상을 얕잡아 보게 된다. 그 결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무뎌진다. 다른 사람은 그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하수인이자 소모품일 뿐이다. 그래서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결여된다. 나의 주장이 항상 옳고 나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남들이 보기에 그의 행동은 건방지고 미성숙하지만 자신은 자신이 대단하고 특별하다고 느낀다. 자신의 말이 먹히지 않거나 비난을 들으면 과도하게 분노한다. 이런 인격 성향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자기애적 인격'이라고 한다.
한 단면만을 보고 정신의학적인 진단을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이른 바 '땅콩 회항'과 인기 연속극 '미생'이 대비적으로 보이면서 더욱 자기애적 인격 성향이 자꾸만 떠오른다.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발달 과정에서 적절한 좌절의 경험이 없고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과도한 자신감이 부풀려 졌다면 비극이다. 돌고 돌아 자신에게 가장 큰 비극이며 돌고 도는 동안 상처받았을 수많은 미생들의 그 자괴감은 또 어쩌란 말인가? '이번 일이 재수 없이 걸린 일이고, 신이 나서 떠들어 댄 언론 탓이며, 나의 지적과 비판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 없다.'라고 만에 하나라도 생각하고 있다면 단언컨대 더 큰 비극이 온다. 부디 이번 사건이 계기가 되어 당사자에게 큰 성찰과 발전이 있기를 바란다.
진정으로 위로하고 싶은 이들은 현재 이 땅의 수많은 미생들이다. 세상이 그들에게 험난할 지라도 한 순간 자괴감과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있을 지라도 결코 증오를 키워서는 안 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막연한 충고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그 과정을 나의 큰 도전으로 인식하고 해결 과제로 삼아 돌파하든 우회하든 피하던 간에 소중한 인생 공부를 하길 바란다. 부정적인 감정을 키우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될 뿐이다. 땅콩 회항도 미생도 현재 우리나라 양극의 단면이며 그 책임은 우리 기성세대에게 있다.
기선완 국제성모병원 기획조정실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미디어다음, http://media.daum.net/editorial/all/newsview?newsid=20141214210706303
- 편집하는 말,
주말마다 드라마 '미생'을 보면서 느낀 먹먹한 기분은 실제 직장에서 겪는 다수의 느낌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소위 '전망'을 얘기할 때면 우린 어쩌면 이 미세한 떨림보다도 단지 거대한 담론 또는 묵직한 권력 따위를 염두에 둔 지나친 희망고문이었거나, 혹은 가진 자들이 더 갖기 위한 이데올로기의 상찬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작 한 개인이라는 존재가 갖는 직장인의 '믿을백'은 회사보다도 오히려 '동료'다. "미생"은 그것을 일깨운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평가받을만한 작품. 현실계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일 뿐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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