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화살같은 첫 한주의 안부
- 오늘의 편지,
[야 한국사회] 애비는 종이었다 / 이라영
[한겨레]
삶의 지겨움 중 하나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순간을 매번 겪는다는 점이다. 간단한 자기소개부터 내 정서의 구석구석을 설명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지겹다. 설명은 늘 오해를 낳고 불확실한 '나'는 설명되는 순간 확실한 정체로 빚어지기 위해 싹둑싹둑 잘려진다. 그러니 실체보다는 역할에 충실한 인간으로 사는 게 편할 수도 있다.
예술가들은 각자 자신이 가진 언어로 '나'를 설명한다. 나에 대해 쓰고, 나에 대해 그린다. 나에 대한 지독한 탐구는 쓸쓸한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끝나지 않는 예술의 주제다. 궁극에 인간이 알고자 하고, 또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나'일지도 모르겠다.
"애비는 종이었다." 서정주의 시 '자화상'은 애비의 신분으로 시작한다. "종이었다"는 그 한마디에 많은 맥락이 함축되어 있다. '나'의 출발점, 애비의 신분이란 바로 나의 신분을 구성하는 중요한 정체성이다. 내 삶의 가능성은 부모의 신분에 따라 다르다. '종의 자식'에게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할 뿐이며 '애비'가 대통령이었던 딸은 망설임 없이 대통령이 된다.
더 이상 '종'은 없으나 신분사회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대에 발맞춰 변모되었을 뿐이다.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진 않았지만 몇몇 나라의 묘지에서 시적인 글귀를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 묘소에 갔다가 넓은 공원묘지 사이를 산책하며 묘비명을 훑어봤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죽은 자들의 생전 직업이었다. 무수한 '학생부군신위' 틈에서 꽤 적지 않은 '사무관'과 '교장'이 보였다. 살아서만 자기소개가 지겨운 줄 알았는데 죽어서도 명패를 하나씩 얹고 누워 있어야 한다. 결국 자기소개란 신분 소개일 때가 태반이며 인생은 역할 수행에 가깝다.
불확실한 '나'는 신분으로 확실해진다. 부모와 본인의 직업과 더불어 특히 한국 사회에서 '너'를 알아내는 간단한 방식은 거주지(출신지), 그리고 학벌을 파악하는 것이다. 사람을 알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 이 세 가지를 알면 마치 그 사람의 기본적인 정체를 파악한 듯 여긴다. 여기에 물론 나이도 빠지지 않지만.
거주지와 출신지는 서울과 지방(시골!), 강남과 강북, 자가 주택과 임대 주택, 아파트의 브랜드 등으로 세분화되어 한 인간의 자산까지 파악할 수 있어 유용하게 활용된다. 게다가 아파트가 '캐슬'과 '팰리스'가 되더니 귀족 작위를 받은 분들이 넘쳐난다. 임대 아파트 아이들은 노골적 차별의 대상이 되어가고, 같은 아파트에서조차 분양 세대는 임대 세대와 분리되려 애쓴다. 한 아파트의 분양 세대가 당당히 임대 입주자에게 놀이터와 경로당 이용을 금지시킨다는 뉴스를 보고 해가 저문 묘지보다 더 오싹한 기운을 느꼈다.
아파트의 브랜드화는 이 위험한 욕망을 더욱 자극했다. 쭉쭉 올라간 그 높이만큼이나 점점 인간을 내려다본다. 아파트의 '명예훼손'은 나의 성(城)을 침범하는 일, 이는 '나'의 브랜드를 훼손하는 일이나 다름없어졌다. 이들의 자화상은 바로 아파트다. 애국심, 애향심, 애사심도 지겨운데 이제 아파트까지 사랑해야 하나? 사람만 빼고 사랑이 넘치는 사회다.
아파트의 명예를 위해 '계약 해지'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해고될 위기에 처한 경비원들이 있다. 기업의 '경영상 필요'에 의해 노동자 대량해고는 적법해지고, 아파트가 명예를 움켜쥐기 위해 경비노동자에게 계약 해지 통보를 한다. 분신한 경비노동자의 산재가 인정되었음에도 모욕의 가해 집단으로서 정말 깨달은 바가 없을까.
오늘날 아파트보다 더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수많은 '나'의 자화상은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애비는 비정규직이었다, 애비는 해고되었다, 세상의 얼굴은 가도 가도 뻔뻔하기만 하더라.
이라영 집필노동자
* 미디어다음, http://media.daum.net/editorial/newsview?newsid=20141203190011403
- 편집하는 말,
벌써 목요일이구나... 정신없는 하루 하루가 지나간다. 현장에서의 첫 한주는 이렇듯 아비규환 그 자체요,
어찌 보면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주 화끈한 신고식이기도 하구나... 공휴일 근무란 말 그대로 '멘붕'인데...
치열한 일상 속, 또 어떤 다른 삶이 존재할까를 생각해보는 기회라고도 본다. - 바쁜 일과 중에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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