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불안하기만 한 '입지'... 정공법만이 해답
- 오늘의 편지,
[야 한국사회] 타락한 능력주의 / 박권일
[한겨레] 자식을 잃고 곡기마저 끊은 사람들 앞에서 피자와 햄버거를 씹으며 '폭식투쟁'을 벌인 무리가 있었다. 단지 몰지각한 행동을 넘어선, 가학적 폭력이었다. 많은 이들이 경악하고 분노했다. 그런 짓을 일종의 유희로 즐기고 있다는 게 더 놀라웠다. 그들을 공감능력 없는 소시오패스라 규정하면 편하다. 어디에나 괴물은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본디 별종들은 그렇게 많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낙오자들의 일탈이라 분석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러기에 그들은 너무 '멀쩡'해 보였다. 물론 이들이 체제를 쥐락펴락하는 엘리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밑바닥 인생'인 것 같지도 않다. 한마디로 평균적 한국인에서 크게 벗어나 보이지 않았다. 일본의 신흥 극우단체 재특회를 수년간 추적·기록해온 야스다 고이치는 재특회 회원들이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반이주노동자 커뮤니티나 일베의 구성원들 또한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일베를 포함한 넷우익 다수도 사회 전체에서 보면 약자이다. 즉, 지금 벌어지는 일은 '약자의 약자를 향한 증오'의 산물이다. 따라서 던져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왜 약자가 약자에게 (공감은커녕) 증오와 혐오를 퍼붓는가? "안 그런 사람이 더 많다"는 낙관주의와 "원래 인간은 비열한 존재"라는 비관주의는 올바른 답이 아니다. 여기서 핵심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증오와 폭력이 점점 확산되는 현상의 사회적 배경이다.
'약자를 혐오하는 약자'의 심층 동기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강자 선망'과 '피해자 되기'다. '강자 선망'은 강자에 대한 상상적 동일시이면서 동시에 약자와 자신의 분리다. 과거 종부세 부과 대상도 아닌 서민들이 종부세에 반대했던 해프닝의 근저에도 이런 심리가 있었을 것이다. '피해자 되기'는 쉽게 말해 '무능한 너 때문에 내가 피해를 본다'는 인식이다. 넷우익, 군대폭력, 다른 나라 극우담론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이 피해자 서사는 약자를 향한 증오를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로 탁월하게 작동한다. 이 논리회로 속에서는, 약자·소수자를 위한 손톱만 한 사회적 배려와 혜택조차 약자·소수자가 내 몫을 부당하게 착복하는 가해자임을 보여주는 증거로 단죄된다.
'강자 선망'과 '피해자 되기'는 강자가 되려 하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되려는 꼴이니 얼핏 모순으로 들린다. 그러나 모두 능력주의의 변종이라는 점에서 같은 뿌리를 지닌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말 그대로 '능력에 따른 지배'로서, 능력에 따른 보상의 차등을 정당화할 뿐 아니라 당연시한다. '강자 선망'과 '피해자 되기'는 능력에 따른 차등대우에 찬성한다는 점에서 능력주의와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게 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기본 인식이 허물어져 있다는 점이다. 평등의 토대가 무너진 능력주의, 그것은 타락한 능력주의이며 스스럼없이 인종주의와 흘레붙는 능력주의다. '강하고 아름다운 존재는 추앙해 마땅하다. 하지만 약하고 못난 존재는 벌레 취급을 해도 좋다!'
능력주의와 인종주의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다. 실은 우리와 일베 사이의 거리도 생각만큼 멀지 않다.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나지 않는 사회, 할아버지의 재력이 손주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회, 보통 사람들의 좌절이 일상화된 승자독식 사회에서 능력주의는 끝내 인종주의로 타락한다. 그리고 이 지옥도를 만들어낸 진짜 적들은 까마득한 꼭대기층에 앉아 아랫것들의 처절한 '배틀 로얄'을 흐뭇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박권일 칼럼니스트
* 미디어다음, http://media.daum.net/editorial/newsview?newsid=20140915184010156
- 편집하는 말,
세상살이는 점차로 각박해진다.
더 이상 약자에 대한 배려라곤 찾아볼 수 없는, 뻔뻔하기 짝이 없는 '승자독식'의 시대다. 오로지 다 제 잘난 탓이다.
'패자는 말이 없다'는 주술만 암기한 채 게임의 룰과 공정성 따윈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승리 뿐, 그것만을 위해 산다.
이보다 더한 지옥이 있으려나 싶을 세태는 그렇게 흘러만 간다. 인간성 상실의 시대다.
제대로 된 답안지를 찾지 못한 채 겨우, 고작 '휴머니즘'과 '도덕' 따위를 운운하기에도 벅차다. 벅찬 일이다.
한번도 그것들로 승리한 적이 없기 때문일까? 대부분의 사람들도 심정적으로는 동의할 일임에도 방관자가 될 뿐이다.
괜시리 잘못 편을 들었다 제 앞가림조차 못할까봐 두려운 까닭. 전쟁의 상흔이 남겨놓은 남한사회의 문화유산이다.
'괜히 나서지 말라, 너만 다친다' '불의를 보면 항거하지 말고 순순히 응하고 살아남으라'는 말들...
이 시대의 거의 유일무이한 격언이요 행동지침으로 이따위 말들을 주워삼켜야 하는 현실이야말로 비극이다.
아이들한테 과연 무엇을 가르치겠는가?
나서자. 오로지 정공법 뿐이다.
현실에서의 '승리'는 그 가능성이 희박할수록, 더 거세게 도전하여 성취하여야만 할 것이지 포기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방법론에 있어서도 결코 물러섬이 없는 떳떳한 태도가 필요할 일이다. 결과에 승복할 일? 그런 건 없다.
애시당초 과정이 잘못된 경우는 그 결과 역시 부정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과정과 결과가 함께 바로서야 한다.
후대에 대한 가르침은 오직 그 경우에만 한해 가능해진다.
친일의 현대사라고 해서 후대한테 '친일'의 정당성을 가르치겠는가? 아니다. 그건 아니다.
무조건 이겨야만 하는 이 혹독한 싸움은 그래서 힘겹다. 그래서 더 가치있는 일이다. 그 길만이 유일한 살 길이다.
하물며 세상살이가 이러할진대
구체적인 현실에서도 그 원리는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겪고만 있는 이 힘겨운 '포지셔닝'의 표류는 결코 남 탓만을 할 일이 아니지 않나? 스스로 극복해야 할 일,
그래서 어떻게든 스스로 "자리"를 창출하고 또 그렇게 해냄으로써 비로소 가치를 증명하는 길 뿐이다.
억울한 것도 없다. 오히려 그렇게 하여 스스로를 바로새기는 일만이 스스로의 진정한 '경쟁력'이기도 하니까...
결코 운이나 남 탓을 할 얘기가 아닌 것 같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오로지 나다.
논평은 오로지 비평가의 몫일 뿐이다. 논평은 결코 대안을 생산하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은 '대안'을 생산해내는 일이요, 이 일만이 유일하게 가치가 있기도 하다.
- 자고로, '창작'을 뛰어넘는 '비평'은 없는 법이므로...
주변의 마뜩찮은 일들 또 그런 사람들 모두 결국 문제의 근본원인은 '내편'이 아니라는 까닭이 아니겠는가?
내가 편을 잘못 선 탓이지, 그걸 나무랄 일도 아니다. 아니, 내 편이 옳고 맞음은 스스로 증명해내야 맞다.
내 문제고, 내가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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