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메모

아! 쥐닭민국

단테, 2013. 3. 21.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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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가 된 인간 / 장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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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잡지 못할 것 같았으면 몽둥이 휘두르지 말 것을

그만큼 정확한 나의 겨낭 피할 수 있었다니

달아난 새앙쥐는 틀림없이 왕이 될 재목이야

어느 날 금단추 자랑하는 근위병 거느리고

눈 밖에 난 반역자를 잡으러 올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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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급히 구원의 수화기를 들어보지만

문명은 통화중만 알릴 뿐

점점 나는 세계와 거리 멀어지고

이제 너는 갇혔다. 상상할 수 없는 어둠 속에

그리고 이곳에서는 주사위마저 운명

가르쳐주길 망설인다. 뻔뻔스레 너는

왕에게 불경했고, 그때 이미 죽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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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깊은 곳에서 너의 시집은 금지되고

그들의 왕이 자신에게 대적한 인간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벌주는가 찬양하며

저녁 쥐들이 춤을 춘다. 장작불 곁에서

처녀쥐의 경쾌한 박자에 밟히며

꿇어앉은 나의 그림자도 춤춘다

그리고 나는 저 쥐를 안다

그는 이 구멍 속에서 제일가는 노래꾼

나는 형이상학적인 그의 고뇌도 안다

가인의 입술은 하나, 그는 무슨 재주로

사형수의 죽음 위로하며 어떻게 형장의 칼

함께 찬양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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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끝나고 나팔수의 볼이 찢어질 때

누군가 소리쳤다. 잔뜩 공포와 전율에 부풀어져

왕이시여 궁휼히 여기시길! 그날 제가

당신의 척추 잘못 내리친 것처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왕들은 모두 용서할 줄 안다

하여 나는 지금껏 흘려본 일 없는 진한 염분의 눈물로

죽음의 왕 발 씻겨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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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를 찍어내는 주형 속에 들어가, 오늘

만물 영장이 무섭게 짓밟히실 때

불필요한 사색과 지혜는 마구 잘리며

기름진 털은 숭숭  돋아나 또다시 평민인 쥐

네 발로 다니며 하나의 창공, 여덟 개 부엌

그 높은 삶의 문턱을 넘나들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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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하게 째진 눈과 슬픈 꼬리를 달고

어머니 제가 돌아왔답니다

그러나 예전에 그를 기습한 굵은 몽둥이로

내리치지 마세요!

놀랍게도 이 왜소한 노래꾼에게도

아버지를 기다리는 자식이 생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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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장정일의 시를 꺼내 읽었다. 내가 시장이 된 첫 토론의 시집이기도 한, 그의 데뷔시집이자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 역시 1987년에서야 나왔다. 예술은 결코 사회적 산물이자, 미래를 향한 잠언의 성격이다. 세상의 모든 순수한 예술은 순수하지 않게 읽힌다. 그런 차원에서 이는 종교를 대체한다. - 바벨탑을 꿈꾸는 자들의 영혼이여, 부디 행복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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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스 정권이 물러나고 정보망 마비가 벌어진 새 정부는 아직도 국정원이라는 공기관의 불법 선거개입으로 그 정통성마저 인정받지 못한 채 점점 더 흉칙한 파시즘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보잘 것 없는 시민들이 한낱 인터넷의 댓글 따위로 재판을 받거나 감옥에 보내지는 수상한 세월들, 인간들의 정권이 아닌가 보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지극히 소설적이기만 한데, 어째 현실이 자꾸만 이를 닮아간다. 무섭다. 아니, 진작에 알았으므로, 슬프다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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