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메모

평화시장, 는개... 봄

단테, 2013. 3. 18.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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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 김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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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꽃피지 않았다고

봄 소식은 먼 곳에서나 떠도는데

바람이 옷자락에 붙어 짧은

치마를 입은 처녀들의 허벅지를 훤하게

들춰낸다, 바라보면 건너편 근린공원의 나무들

여전히 헐벗은 가지를 뻗고 섰지만

가까이 가보면 어느새 참새 혓바닥 같은

뾰루치 움텄어라!

햇빛도 분명히 어제의 엷은

햇볕이 아니다, 심술궂은 바람도 그렇다

내 져다버린 겨우내의 슬픔 한없이 받아들인

바다도 웅숭깊어져

얼음을 이긴 바다다, 물결 한층 푸르게 출렁이며

이랑마다 하얗게 반짝거리는 소금들 내다 말린다

저리 눈부신 아지랑이니

삶의 불편한 뿔 하나가 뽑혔다고

그게 사월인 거라고

이곳에서도 곧 꽃소식 전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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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강아지와 놀다>,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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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정호승의 시를 꺼낸 거라면 응당 김명인의 시집부터도 상책이지, 언젠가 문학회에서 두 시인 중 누가 더 좋냐는 설문을 했던 적 있었는데... 압도적인 김명인의 승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만 해도 난 '서울의 예수'를 꼽았었지만) 벌써 봄이다. 봄을 노래한 제목부터 찾아보니 대뜸 이 작품이 눈에 띈다. 복잡한 전철 안에서 생뚱맞은 시 한편일 테지만, 어김없이 세월은 흐르고... 어제 마주친 평화시장에도 평화의 그날도 밝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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