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메모

기억의 상대화, 현재와 존중

단테, 2013. 3. 15.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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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예수 /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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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 있다.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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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술 취한 저녁. 지평선 너머로 예수의 긴 그림자가 넘어간다. 인생의 찬밥 한 그릇 얻어먹은 예수의 등뒤로 재빨리 초승달 하나 떠오른다.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는 있었을까.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의 빵과 눈물을 생각하며 예수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사람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모래를 씹으며 잠드는 밤. 낙엽들은 떠나기 위하여 서울에 잠시 머물고, 예수는 절망의 끝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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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목이 마르다. 서울이 잠들기 전에 인간의 꿈이 먼저 잠들어 목이 마르다. 등불을 들고 걷는 자는 어디 있느냐 서울의 들길은 보이지 않고, 밤마다 잿더미에 주저앉아서 겉옷만 찢으며 우는 자여. 총소리가 들리고 눈이 내리더니, 사랑과 믿음의 깊이 사이로 첫눈이 내리더니, 서울에서 잡힌 돌 하나, 그 어디 던질 데가 없도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운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눈 내리는 서울의 밤하늘 어디에도 내 잠시 머리 둘 곳이 없나니,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술잔을 들고 어둠 속으로 이 세상 칼끝을 피해 가다가, 가슴으로 칼끝에 쓰러진 그대들은 눈 그친 서울밤의 눈길을 걸어가라. 아직 악인의 등불은 꺼지지 않고, 서울의 새벽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한 인간의 귀는 풀잎에 젖어, 목이 마르다. 인간이 잠들기 전에 서울의 꿈이 먼저 잠이 들어 아, 목이 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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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람의 잔을 마시고 싶다.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소주잔을 나누며 눈물의 빈대떡을 나눠먹고 싶다. 꽃잎 하나 칼처럼 떨어지는 봄날에 풀잎을 스치는 사람의 옷자락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나라보다 사람의 나라에 살고 싶다. 새벽마다 사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서울의 등잔에 홀로 불을 켜고 가난한 사람의 창에 기대어 서울의 그리움을 그리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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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를 섬기는 자는 슬프고, 나를 슬퍼하는 자는 슬프다. 나를 위하여 기뻐하는 자는 슬프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는 더욱 슬프다.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워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은 불행하고, 내 이름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은 더욱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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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상대화' 또 현재와 '존중'에 대하여 잠시 말을 꺼낸다. 누구한테는 아련한 추억의 '70년대가 누구한테는 끔찍한 살육과 피비린내만 나는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고, 이는 '80년대를 겪으며 자란 세대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함께 공존하여야만 할 21세기도 역시 이는 마찬가지고,

관점의 다양화라는 말 역시 같은 맥락에서다. 민주주의가 다당제와 일당독재 사이에서 숱한 논쟁을 했음에도 여전히 다원주의 형태에 입각한 정당정치가 가장 깊게 뿌리를 내린만큼 서로 다른 정당에 대한 기본적 예의와 존중 역시 어쩌면 필수일 게다. 또 이는 지극히 이념적인 것들에서 출발한 진보나 보수 따위와는 전혀 근본부터가 다를 전범과 친일/친미 또 독립운동 따위를 가르는 기준부터가 어쩌면 그 출발점이 될 수가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본적인 전제조건은 늘 고루하고도 낡은 논쟁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와 정통성 측면만 따져놓고 본다 하면 오히려 가장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논점의 출발이 된다.

여하튼, 다른 숱한 인문/사회과학적인 담화들을 꺼내놓기보다는... 다만 그 어떤 대화의 시도 내지는 화두라는 것들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항상 인간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점. 그리고 그 '인간'이라 함은 늘 그 어떤 고귀함이나 가치관들로부터 함께 형성해나가야 할 공동체의 이상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논의부터가 먼저다. (심지어 그게 '경제적 동물'이거나 '약육강식' 또는 '인류의 보편적 도덕' 등등 실로 다양할 수 있다는 기본적 전제에 대한 일말의 존중부터를 접어두고 시작한다 해도)

단 한편의 詩를 읽는 마음가짐과 태도 역시 이와 크게 다를 바 없겠지, 왜냐하면 그 근본부터가 애시당초 사랑이나 자비, 보편, 박애와 이상주의 내지 또 다른 무엇의 도덕인가로부터 시도된다는 점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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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의 나머지 못다 한 말들은 또 중략)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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