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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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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번동 / 이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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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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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오래전부터 내 몸을 기어다녔다 문 걸어 잠근 며칠, 산이 가까워 지네가 나온다고 집주인이 약을 치고 갔다 씽크대 구멍도 막아 놓았다 네모를 그려 놓은 곳에 약 냄새 진동하는 방문이 있다 타오르는 동심원을 통과하는 차력사처럼 냄새의 불똥을 넘는다 어둠 속의 지네 한 마리, 조정 경기처럼 방바닥을 저어간다 오늘은 평일인데 나는 百足으로도 밖을 나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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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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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슬퍼 보일 때가 있다 희끗한 뼈마디를 드러낸 절개지, 자귀나무는 뿌리로 낭떠러지를 버틴다 앞발이 잘리고도 언제 다시 발톱을 세울지 몰라 사람들이 그물로 가둬 놓았다 아물지 않은 상처가 곪아가는지 파헤쳐진 흙점에서 벌레가 기어나온다 바람이 신음소리 뱉어낼 때마다 마른 피 같은 황토가 쏟아져 내린다 무릎 꺾인 사자처럼 그물 찢으며 포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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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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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지붕을 내다 넌다 한때 담수의 흔적을 기억하는 산속의 염전, 소금꽃을 피운다 옷가지와 이불이 만장처럼 펄럭이며 한때 이곳이 물바다였음을 알린다 흘러내리지 못한 빗줄기를 받아내는 그릇들,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방안에 고인 물을 양동이로 퍼낼 때 땀방울이 빗물에 섞였다 오랫동안 산속에 갇혀 있던 바다가 제 흔적을 짜디짠 결정으로 남긴다 장마 끝 폭염이다 살리나스*처럼 계단을 이룬 집들을 지나 더 올라서면 산봉우리다 계단 끝에 내다 넌 내 몸 위로 햇살이 기어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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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루 고산의 계단식 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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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관문은 여전히 신춘문예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 이제는 아마도 경향신문이거나 아니면 일부 몇몇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는 부분은 있겠어도 젊고 패기 찬 문청들한테 이 문호만큼 가슴벅찬 행운이 과연 있을까도 싶다. 벌써 한달이 넘게 지난 신춘문예 당선작을 모처럼 꺼내보는 일은 그래서 한편으로는 부러움이요 또 한편은 기념을 하기 위함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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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설날, 2013년의 한해를 더 나이먹게 되는 날. 일산에서 처음 맞는 설이기도 하고, 또 어쩌면 오늘은 서울을 나가보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새해 첫날인만큼, 의미있는 행사들도 준비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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