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메모

51.8%의 詩, 여섯

단테, 2013. 2. 9.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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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시 2 / 마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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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지 않는다.
있는 힘을 다하여 잔을 쳐든다.
흰 팔이 어둠 속에서
굽혔다 폈다 하며 바람을 풍기며
떠나라. 떠나라.
가늘게 외친다.
이 둥그렇게 열린 저녁에
도피뿐인 자유를
몇 권의 낡은 책을
가방에 집어 넣고
집을 옮긴다. 어둠 속에서
떨어지는 땀은 깊이 빛나고
젖은 셔츠로 얼굴을 문지를 때
바람은 붕긋붕긋, 열린 가슴으로
곱추의 비가를 부르게 한다.
나는 드디어 도달한다.
하수구에는 구겨진 달빛
찢긴 하늘엔 박쥐의 날개.
옛 낡은 집은 기다리고 있어,
먼지를 털면 빛날 것이다.
어두운 지하실의
커튼은 흔들리고
버린 장신구와 구두
저 낡은 악기는 나의 것이다.
오, 나를 끌고가 다오.
나는 일찌기, 저 지하실의 창을 부수던
바람의 높은 음을 알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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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직전의 형과 나눈 짧은 통화, 12일에나 귀국할 거라는 전갈. 대전에 계신 부모님한테도 전화를 드려야 할 텐데... 어느덧 또 오후다. 책장을 둘러보다가 문득 마종하 시인의 '파냄새속에서'를 발견했다. 나남출판사... 아마도 책이 예전에 절판돼 구할 수 없었던 차에 지금은 아예 없어져버린 종로서적까지 찾아가 이 책을 구했던 기억이 난다. 추운 겨울, 도서관에 홀로 앉아 철 지난 창비의 영인본들을 읽다가 그의 연작시를 찾아 복사를 하고 다시 읽곤 하던 그 시절도 있었더랬지... 또 다시 추운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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