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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단테, 2011. 9. 5. 21:33

        

Jongno school :  


* 영화 도입부,

... 가장 마지막으로 본 게 어언 몇년전인가...

- 이제 또, 다시 볼 차례?

  

"티끌 세간에 먼지와 때를 벗고 피 안에 완전함을 갈망하는 마음에서 산객이 되었지만 실은 생애 오탁과 먼지와 쓰레기 심지어 생애 고뇌마저도 사랑하지 않고는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완전이란 만유를 다 포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영화 대사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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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아니 혹은 지금도, 마음이 심히 번잡스러울 적마다 이 영화를 떠올렸다.

그만큼 관조적인 입장을 견지한 영화의 태도가 그랬고, 또 내 영화의 취향 또한 그랬나 보다.

(기실 박광수의 "그들도 우리처럼"을 유일하게 이에 필적하는 걸작으로 꼽곤 했는데, 요즘은

부쩍 이 영화를 더 거론하는 걸 보면 확실히 내가 늙어가긴 늙어가는 모양이다.)

 

속칭 '충무로 시스템'을 완벽하게 파괴해버린, 희대의 센세이션도 그랬거니와 당시만 해도

해외 영화제 수상 따윈 꿈도 못꿀 시절의 놀라운 뉴스 또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게 만든 셈,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독하게 재미없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는 건 딱 그만큼 우리 관객들의

수준이었기도 하다. (좀 더 자세한 추억의 편린은 인터넷 영화평 등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꿈속에서 달마를 만난 까닭은 (오마이뉴스 기사 中)

 

나 역시 (아마도 '90년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최초로 이 영화를 비디오로 빌려본 기억은 전혀

머릿속에 없다. 동자승인 해진이 실수로 연못에 떨어지던 장면까지만 딱 보고 도로 반납했던

것도 같은데... 그후로 몇년, 어느해 크리스마스를 즈음한 겨울밤에 혼자서 다시 본 이 영화는

전혀 다른 감흥으로 내게 몇번이고 다시 보게 만든 기억이 되어 남아 있구나, (그때 쓴 일기를

뒤적이다 보면 꽤 많은 구절들은 심지어 대사를 내 일기에 옮겨 적기도 했었던 기억)

  

'음악수첩'에 '100대 명곡' 시리즈를 쓰다가, 영화 생각이 나 대뜸 떠올린 영화제목은 이렇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 배용균 각본/감독/촬영/조명/편집/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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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의 評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영화 評이다.

1989년 로카르노 영화제는 세 사람의 신인감독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해 그랑프리는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은표범상은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동표범상은 박광수 감독의 <칠수와 만수>에 돌아갔다. 그 뒤 세 감독은 서로의 길을 향해 나아갔다. 아마도 앞으로도 서로의 길이 교차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만들어낸 배용균은 한국영화 속에서 UFO같은 존재다. 그는 인터뷰하지 않으며, 제도권 영화와도 거의 교류가 없으며, 5년에 한번씩 자신의 영화를 갖고 느닷없이 돌아온다. 그는 앙드레 바쟁의 표현을 빌리면 '완전작가'다. 언제나 감독과 각본, 촬영, 편집, 기획을 그 혼자서 해낸다.

유머라고는 거의 없으며, 형이상학적인 주제와 관념적인 대사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진지한 믿음은 거의 노이로제처럼 보인다. 바로 이러한 강박관념은 사실은 그의 영화정신이 흔히 알려진 것과는 반대로 신비주의가 아니라 리얼리즘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진심으로 영화가 리얼리즘의 산물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배용균의 영화적 계보는 로베르토 로셀리니(또는 오즈 야스지로의 일상생활의 리얼리즘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시적 리얼리즘)에 닿아 있다.

배용균은 (필자와의 매우 개인적인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화세계를 '일요일의 리얼리즘'이라고 이름 지었다. 모두들 평일의 리얼리즘을 다룬다면 자신은 모든 규칙이 하루동안 쉬는 세상의 일상생활을 다루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것은 자신의 영화 속에서 그 어떤 다른 변형을 가하지 않으려는 자연의 풍경과 한번도 연기경험이 없는 아마추어 연기자들의 표정 속에서 끌어내려는 마음으로부터 그의 영화가 시작한다는 점에서 정말 그러하다. 그래서 배용균의 영화는 풍경과 표정 사이의 자기성찰로 이루어져 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산사에서 수도생활하는 세 사람의 스님에 대한 영화다. 노스님 혜곡은 스스로 자신이 입적을 앞두고 있음을 알고 있다. 젊은 스님 기봉은 사바세계에 두고 온 눈 먼 어머니가 주는 번민으로 괴로워하면서도 도를 깨치기를 갈망한다. 동자승 해진은 고아로 태어나 산사에서 자라난다.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혜곡 스님이 이 세상을 떠나자 거기서 얻은 작은 깨달음을 안고 두 사람은 서로의 길을 간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은 화두로 남는다. 계속 질문하고,  의심하고, 대답하고, 번민하고, 그리고 다시 질문하는 독백과 방백의 화법이 이어지면서 영화 전체는 선문답의 삼천대천세계로 펼쳐진다.

배용균은 우주처럼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본다. 그리고 풍경과 표정 사이에서 번뇌의 입구를 본다. 바로 이  순간 리얼리즘의 찰나찰나에 모더니즘의 형식이 끼어들고, 카메라가 담아내는 광경 속으로 영화의 수사학이 펼쳐진다. 천변만화하는 세상의 표정은 수도자들의 번뇌가 된다. 이것은 세상을 표상하는 것과 자기 성찰 사이의 싸움으로 밀고 나아간다. 그래서 이 한편의 영화는 보이는 것과 말하는 것 사이의 경계의 긴장으로 가득차 있다. 수많은 선화로부터 영향받은 것이 분명한 화면들은 그런 의미에서 번뇌이며, 그가 넘어서려고 하는 차안과 다가서려고 하는 피안의 경계를 타고 물어보는 공과 색의 넘나듦이다.

지나치게 중생으로부터 멀리 있다고? 그러나 잠깐. 여기서 배용균이 대답하지 않지만 그의 질문이 끝난 것은 아니다. 두번째 영화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95년)은 화두에 이은 그의 사바세계의 밤으로의 산책이다. 그는 우리의 세계 속으로 비행하고 있으며, 한국영화는 배용균을 통해서 또 하나의 리얼리즘의 계보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세번째 영화까지 다시 5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잔인한 일이다.


재미있는 사실들

1. 배용균 감독
당시 대구 효성여대에서 미술을 가르치던 교수로 연출, 시나리오, 제작, 촬영, 조명, 미술, 편집등을 혼자서 다 했단다. 이런 영화는 처음 본 듯 하다. 단편 영화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예술성이 없는 영화도 아니고(물론 나는 예술을 모른다. 다만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이라니 그렇게 표현하는 것일 뿐)

2. Award
1989년 제42회 로카르노 영화제 황금표범상 수상(그랑프리다.) 이 영화제는 스위스 영화협회에서 주관하는 대회로 2편 이내의 신인감독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제다. 배용균 감독이 그랑프리를 수상한 해에 박광수 감독이 "칠수와 만수"로 동표범상을 수상하였다.

3. 촬영지
이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은 경북 안동시의 봉정사의 영산암이라고 하는 암자인데 봉정사를 아는 사람들도 영산암을 보지 않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암자란다. 그도 그럴 것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봉정사와 떨어져 있기 때문.

봉정사의 특징은 대웅전 앞에 마루가 있다는 점(봉정사가 유일)과 봉정사 극락전은 현재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점이라는 것.

  

 

http://lsk.pe.kr/entry/대화로-풀어나가는-불교-사상-달마가-동쪽으로-간-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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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 감독 : 배용균
  • 출연 : 이판용, 신원섭 더보기
  •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는 노스님 혜곡(이판용), 그의 가르침 아래 동자승 해진(황해진)과 젊은 스님 기봉(신원섭)은 절에서 생활하고 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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