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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반] 4. 김광석, 안치환, 장필순... 그리고 조동익, 이병우

단테, 2011. 8. 12. 22:12

  

Riff & Cafe :


* 어떤날 - 오후만 있던 일요일 (1960·1965, 1986)

... 이름만 들어도 거룩한 두 대가의 이십대가 낳은 걸작,

  

※ 위키백과에서 찾은 링크 하나, (경향신문 기사 포함)

http://ko.wikipedia.org/wiki/%EC%96%B4%EB%96%A4%EB%82%A0_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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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의 데뷔앨범에 수록된 이 노래를 이 앨범에서 다른 목소리로 듣는 오늘... 비 오는 밤,

개인적인 애청곡으로 이병우의 "우리" (Guitar solo)를 꼽는다면 이 역시 단 두장의 앨범만을

내놓았던 이 '어떤날'의 스펙트럼 중 하나였을진대,

 

훨씬 더 역량있는 소개글로 이 어눌한 말솜씨야 감출 순 있겠지만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내

추억들이야 여전히 감춰질 수 없는 일들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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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100대 명반] 어떤날 ‘1960 1965’-조용한 울림      

    

▲4위 어떤날 '1960 1965'(1986/서라벌레코드) 조동익(b, key, perc, v), 이병우(g, perc, v) 
 

 

이젠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지만 앨범 커버에 쓰인 1960과 1965란 숫자는 밴드의 두 멤버, 조동익과 이병우가 태어난 해를 적어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 앨범을 만들 당시 조동익은 스물여섯 살이었고 이병우는 스물한 살이었다는 얘기이다. 대부분의 음악천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두 명의 청년 역시 20대 초반의 나이에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영원히 빛날 '마스터피스' 한 장을 탄생시켰다. 핑크 플로이드와 팻 메스니를 좋아하던 두 청년은 처음 만난 날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은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레 팀을 결성하였다. 그 팀의 이름은 어떤날이었다.

음악적인 면으로 볼 때 80년대는 다양함의 시대였다. 주류 시장에선 조용필,
전영록, 송골매 같은 스타들이 TV 무대를 장식하고 있었고, 반대 편에선 들국화, 김현식, 신촌블루스 등의 다양한 뮤지션들이 신촌과 대학로의 언더그라운드 무대를 지키고 있었다. 또 한편에선 이문세, 유재하 등이 한국 팝의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린 명반들을 발표했으며, 시나위, 부활 등으로 대표되는 헤비메탈 뮤지션들 역시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렇게 질적·양적으로 풍요롭던 시기에도 어떤날의 존재는 특별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례를 받아온 포크와 퓨전 재즈, 록 등을 앨범에 고루 담아냈지만 그렇다고 딱히 어떤 장르로 나눌 수 있는 음악은 아니었다. 차라리 조금 억지스럽게 말한다면 그들의 장르는 '고요한 전율'이나 '고요한 파장' 같은 것들이었다.

그들은 사춘기 소년 같은 감수성으로 "창밖에 빗소리에도 잠을 못
이루는 너, 그렇게 여린 가슴"이라 노래하기도 하고, "너무 아쉬워 하지마, 기억 속에 희미해진 많은 꿈"이라며 조용조용 위로해주기도 하지만, 그 조용한 소곤거림 속에는 말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힘같은 것들이 담겨있었다. 단순히 '그날'에서 이병우가 들려주는 강렬한 기타 연주 때문만이 아니라 모든 노래, 모든 소절마다에는 어떤날만이 들려줄 수 있는 울림이 있었고 그 울림은 지금껏 경험할 수 없던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하늘' '그날' '너무 아쉬워 하지마' 등 대부분의 노래들이 바로 그런 '조용한 울림'과 '고요한 파장'을 전해주는 노래들이다. 또한 '지금 그대는'과 '겨울하루' 같은 소품들은 기타리스트가 아닌 보컬리스트 이병우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우면서 서늘한 노래들이다.

이 앨범은 발매 당시 들국화나 김현식의 앨범들처럼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가끔씩 라디오 전파를 통해 몇몇 노래들이 흘러나왔을 뿐이었고, 그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앨범에 대한 얘기들이 전해졌을 뿐이다. 하지만 앨범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높아져갔다. 또한 후대의 음악인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들국화와 김현식 그 이상이었다. 이 앨범은 따로또같이의 앨범 등을 통해 서서히 인식되기 시작한 편곡과 세션의 개념을 완전히 정립시킨 앨범이었고, 전문 보컬리스트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노래를 들려줄 수 있음을 보여준 거의 최초의 앨범이었다. 20년 전 그 때의 젊은이들이 어떤날의 음악을 들으며 감동했던 것처럼, 2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꼭 그 만큼의 나이를 먹은 새로운 세대들 역시 어떤날의 음악에 위로를 받고 감동을 받는다. 언젠가 마이 앤트 매리의 리더 정순용은 조동익을 가리켜 "옆에 있어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는 분"이라고 표현했다. 이 앨범 역시 바로 그런 앨범이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되어주는 앨범. 한 장의 앨범을 표현함에 있어 그것만큼 위대한 가치는 없다.

▲조동익·이병우의 만남…편곡·세션 개념 완전히 정립

조동익은 한국 포크계의 거장인
조동진의 동생이다. 조동익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집안에는 수백장의 레코드판이 있었고, 형의 영향으로 기타도 배우게 됐으며, 형이 밤새 음악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음악에 대한 동경을 키워갔다. 그런 환경에서 조동익은 혼자 음악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고, 후배였던 가수 최진영의 소개로 이병우를 만나게 됐다. 공통적인 음악 취향을 갖고 있던 두 사람은 빠른 시간에 친해질 수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날을 결성하게 된다.

이들의 1집은 따로또같이에서 시도됐던 편곡과 세션의 개념을 정립시킨 앨범이었고, 고요함 속에서도 어떤날만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앨범이었다. 그 후 발표한 2집 앨범은 1집과는 사뭇 다른 성격을 띠었는데, 1집에서의 다소 소박했던 느낌 대신 보다 프로페셔널해지고, 보다 스튜디오 지향적인 말쑥한 음악을 담고 있었다.

어떤날은 2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사실상의 해체 상태로 접어들었지만 활동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이병우는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航海(항해)'란 제목의 솔로 앨범을 자체 제작하며 본격적인 기타리스트로서의 행보를 시작하였고, 조동익은 90년대 가장 잘 나가는 스튜디오 세션맨이자 가장 뛰어난 편곡자로서 명성이 높았다. 93, 94년 각각 발표한 이병우의 '
생각 없는 생각'과 조동익의 '憧憬'(동경)은 비록 이들이 떨어져 있을지라도 음악적인 지향점은 여전히 비슷하다는 걸 보여준 흥미로운 앨범들이었다.

이후 이병우는 개인 앨범보다는 영화음악에 더 많은 열정을 쏟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음악가가 되었고, 조동익은 김광석의 앨범부터 안치환,
장필순의 앨범에 이르기까지 명작들을 연속해 만들어낸 최고의 음악감독이 되었다. 어떤날의 1집 때부터 이들은 이미 젊은 거장들이었고, 20년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사실은 전혀 변함이 없다.

김학선|웹진 가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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