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ff & Cafe :
* 산울림 - 문 좀 열어줘 (산울림 새노래 모음, 1977)
... "아니 벌써"라는 히트작을 대신할만한
충분히 훌륭한 싱글 한컷을 고르다,
※ [대중음악 100대 명반] (기사 목록)
...
엘리트들이 모여 만든 그룹이라는 점이 눈에 띄지만, 음악사적으로도 훌륭한 족적을 남긴 그들이
훨씬 터프한 매력을 발산하는 이 데뷔작을 역대 최고로 꼽는다는 점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마치 신춘문예로 갓 데뷔한 한 詩人의 역대 최고작이 그 당선작인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일 텐데,
그건 아무래도 역사적인 '파괴성'을 갖는 의미 내지는 의의가 그 신선함과 새로움에 주로 기인할
테니까 그렇다고 본다. (이는 정희성, 송기원은 물론이고 곽재구의 작품에서도 거의 대표적이다.)
"아니 벌써"를 모처럼 다시 들어본다. 해설판의 얘기처럼 단순하고도 명료한 건반이 인상적인 밤,
...
...
또 한곡 더,
* 산울림 -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9060942511&code=900307&s_code=at031
산울림의 데뷔앨범을 섹스 피스톨스의 그것과 연관시키는 평자들은 흔히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하곤 한다. 두 앨범이 같은 해에 발매되었으며, 아마추어리즘을 바탕으로 주류 음악계를 뒤흔들어놓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같은 외적 조건의 유사성만으로는 이 앨범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가장 중요한 측면을 왜곡시킬 가능성마저 내포하고 있다. 요컨대 이 앨범은, 정치적 이념은 말할 것도 없고, 미학적 이론으로부터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산울림의 음악은 이데올로기 따위와 무관할 뿐만 아니라 아예 무관심하다. 특히, 이 데뷔작은 무엇보다 즐거움에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록 앨범이라는 점에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예술가적 자의식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와 순진한 열정이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성공을 만들어낸 극히 보기 드문 사례였던 것이다. 수록곡들이 앨범을 제작하기 수년 전에 이미 완성된 상태였다는 사실은 그 증거 가운데 하나다. 그들의 벼락 같은 등장이 대마초 파동으로 쑥대밭이 된 음악계의 상황을 배경으로 했다는 시대적 조건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이 앨범은, 굳이 서양의 경우와 비교하자면, 60년대 초반 미국의 개러지 록과 함께 논의되어야 마땅하다. 비틀스의 정제된 록 사운드가 세상을 뒤덮기 직전, 오로지 즐거움을 위해 연주된 로큰롤의 거친 순박함이 그것이다. 그 분방한 자유로움 속에서 혁신이 탄생한 것이 우연이었던 것처럼, 이 앨범이 가져온 파격 또한 의식적으로 연출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동시대 가요의 통속적 감상주의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선율로 이루어진 곡들이 상당수임에도 이 앨범이 그들과 완전히 다르게 들리는 이유도 거기 있다. 보다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2집이 정형화의 대가를 치른 반면, 이 앨범의 발랄한 도발은 기존의 무엇에도 빚진 게 없는 만큼 완전히 신선했고 여전히 신선하다.
천편일률적인 사랑타령에서 탈피한 노랫말(김창완은 1982년의 8집에 이르러서야 산울림의 노래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고 말했다), 동요를 반주하는 듯 또박거리는 오르간과 심하게 일그러진 퍼즈 톤 기타의 극적인 사운드 대비, 묵묵하게 전진하는 드럼과 굽이치며 꿈틀대는 베이스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그루브까지 이 앨범의 내용물은 그 전과 후를 통틀어도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독자적이다. 그래서, 당대의 히트곡으로 자리매김했던 ‘아니 벌써’도 그렇지만, ‘문 좀 열어줘’의 인트로와 노랫말은 오늘 발표된 신곡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공시성의 생생함으로 다가온다. 민요를 모티브로 한 가장 창조적인 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청자(아리랑)’, 변형된 론도양식의 리프가 시종일관하는 기이한 사랑노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등도 그 못지않다.
산울림의 데뷔앨범은 구도자적 이미지와 혁명적 메시지로 포장된 록 음악 신화를 해체해버렸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점이 바로 그 비결이었다. 그건 결코 아이러니가 아니다. 오늘의 록 음악이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그 모순적 논리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박은석|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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