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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반] 5. 아마추어리즘의 진정한 롤모델, 산울림

단테, 2011. 8. 12. 23:46

      

Riff & Cafe :


* 산울림 - 문 좀 열어줘 (산울림 새노래 모음, 1977)

... "아니 벌써"라는 히트작을 대신할만한

충분히 훌륭한 싱글 한컷을 고르다,

    

※ [대중음악 100대 명반] (기사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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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들이 모여 만든 그룹이라는 점이 눈에 띄지만, 음악사적으로도 훌륭한 족적을 남긴 그들이

훨씬 터프한 매력을 발산하는 이 데뷔작을 역대 최고로 꼽는다는 점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마치 신춘문예로 갓 데뷔한 한 詩人의 역대 최고작이 그 당선작인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일 텐데,

그건 아무래도 역사적인 '파괴성'을 갖는 의미 내지는 의의가 그 신선함과 새로움에 주로 기인할

테니까 그렇다고 본다. (이는 정희성, 송기원은 물론이고 곽재구의 작품에서도 거의 대표적이다.)

   

"아니 벌써"를 모처럼 다시 들어본다. 해설판의 얘기처럼 단순하고도 명료한 건반이 인상적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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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곡 더,

* 산울림 -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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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9060942511&code=900307&s_code=at031

       

산울림의 데뷔앨범을 섹스 피스톨스의 그것과 연관시키는 평자들은 흔히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하곤 한다. 두 앨범이 같은 해에 발매되었으며, 아마추어리즘을 바탕으로 주류 음악계를 뒤흔들어놓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같은 외적 조건의 유사성만으로는 이 앨범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가장 중요한 측면을 왜곡시킬 가능성마저 내포하고 있다. 요컨대 이 앨범은, 정치적 이념은 말할 것도 없고, 미학적 이론으로부터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산울림의 음악은 이데올로기 따위와 무관할 뿐만 아니라 아예 무관심하다. 특히, 이 데뷔작은 무엇보다 즐거움에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록 앨범이라는 점에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몇 년 전의 인터뷰에서 김창완은 자신의 작품들 가운데 동요앨범을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서 함양이라는 음악의 원초적 기능에만 충실한 것이 동요다. 거기에는 전복적 사고나 이념적 가치와 같은 ‘불순물’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산울림의 데뷔 앨범은 록음악이 동요의 단순한 직선성에 가장 근접했던 순간이다.

예술가적 자의식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와 순진한 열정이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성공을 만들어낸 극히 보기 드문 사례였던 것이다. 수록곡들이 앨범을 제작하기 수년 전에 이미 완성된 상태였다는 사실은 그 증거 가운데 하나다. 그들의 벼락 같은 등장이 대마초 파동으로 쑥대밭이 된 음악계의 상황을 배경으로 했다는 시대적 조건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이 앨범은, 굳이 서양의 경우와 비교하자면, 60년대 초반
미국의 개러지 록과 함께 논의되어야 마땅하다. 비틀스의 정제된 록 사운드가 세상을 뒤덮기 직전, 오로지 즐거움을 위해 연주된 로큰롤의 거친 순박함이 그것이다. 그 분방한 자유로움 속에서 혁신이 탄생한 것이 우연이었던 것처럼, 이 앨범이 가져온 파격 또한 의식적으로 연출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동시대 가요의 통속적 감상주의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선율로 이루어진 곡들이 상당수임에도 이 앨범이 그들과 완전히 다르게 들리는 이유도 거기 있다. 보다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2집이 정형화의 대가를 치른 반면, 이 앨범의 발랄한 도발은 기존의 무엇에도 빚진 게 없는 만큼 완전히 신선했고 여전히 신선하다.

천편일률적인 사랑타령에서 탈피한 노랫말(김창완은 1982년의 8집에 이르러서야 산울림의
노래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고 말했다), 동요를 반주하는 듯 또박거리는 오르간과 심하게 일그러진 퍼즈 톤 기타의 극적인 사운드 대비, 묵묵하게 전진하는 드럼과 굽이치며 꿈틀대는 베이스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그루브까지 이 앨범의 내용물은 그 전과 후를 통틀어도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독자적이다. 그래서, 당대의 히트곡으로 자리매김했던 ‘아니 벌써’도 그렇지만, ‘문 좀 열어줘’의 인트로와 노랫말은 오늘 발표된 신곡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공시성의 생생함으로 다가온다. 민요를 모티브로 한 가장 창조적인 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청자(아리랑)’, 변형된 론도양식의 리프가 시종일관하는 기이한 사랑노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등도 그 못지않다.

산울림의 데뷔앨범은 구도자적
이미지와 혁명적 메시지포장된 록 음악 신화를 해체해버렸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점이 바로 그 비결이었다. 그건 결코 아이러니가 아니다. 오늘의 록 음악이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그 모순적 논리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박은석|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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