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연대의 멱살을 거머쥔 채 흐르는 강물로 흐르지 않는 풍경을 적시며 지금 섬진강은 골고루 노을 빛으로 깨어나고 있다.
사랑하는 정아, 저 징검다리 건너 몇구비 물목을 지나 희고 둥근 조약돌들이 모래 무지 처럼 살아 있다. 그리하여, 하류에서 상류까지 물장구치며 파닥인다, 뛰쳐오른다,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균형을 취하며 정확히 목표물에 내려 앉는다. 바로 이게 사랑의 시작이다. 그런대로 모난데 없이 안정된 형상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람과 함께 떠 다녔으며, 또 얼마나 수고로운 인욕과 침묵이 필요했던가 물으며 돌을 집는다.
사랑은 늘 그런 아픔과 그리움을 한 없이 낮은 곳으로 이동시키는것. 잊지 말자, 한 인간이 태어나 죽기까지, 우린 저 어둠 속에 박힌 익명의 별처럼 외로워하고 쓸쓸해 하며 더 기다려야 한다.
끝도 시작도 불투명한 이 시대의 싸움처럼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채 묵묵히 봄 강 언덕에 자운영을 띄우며 첫아기 처럼 예쁜 조약돌 하나 내게 안겨주는 강변을 따라 흐르며 너를 가만히 불러본다.
정아, 이제 세상을 향해 보채지 말자. 제 임자를 기다리다 끝내 풍덩, 물살 센 강물 속으로 다시 빠져드는 돌이거나, 혹은 정에 목마른 신의 손바닥 체온을 받아 남빛 물망초로 이 지상에 또 다시 소생하는 것 모두 하늘과 세월의 뜻인 것. 우린 저 물바람 속의 저녁 안개 처럼 망가지며 아름다워지는 법을 배워가야 할는지 모르겠다. 마치 물때 썰때 마다 강물은 새로운 태양을 되돌려 주 듯, 우리는, 바위 같은 미움의 덩어리를 조약돌로 다듬고, 모래알 같은 기쁨의 알갱이로 일어서는 조국을 위해 헌신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섬진강은 물 흐르는 소리만 남기고 일제히 숨을 고루며 나뭇가지 위의 새처럼 잠들고 있다.
- 임동확, <섬진강의 돌> ......
<지상의 가을날>이란 詩가 있었지... '98년이던가, 인터넷 신문을 통해 처음 접했던 그때의 기억,
개인적으로 임동확 시인의 서정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만한 이 작품을 모처럼 꺼내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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